에셔
Maurice Cornelis Escher 에셔 / Day and Night 낮과 밤 (1938)
우리의 영혼은
(그냥 간편하게 영혼이라고 하자.)
본능적으로 태초와 최후를 쫓는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딪혀 돌아오기 위해서.
그 극단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진동을
우리는 존재라고 믿는다.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돌연 태초와 최후의 벽이 열리더니
부딪혀 돌아올 경계도 진동할 공간도 없이
그저 무한함.
벽을 이루고 있던 모든 기준들이 쏟아져 내려와
태초와 최후가 뒤섞이고,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이고,
낮과 밤이 뒤섞이고, 빛과 그림자가 뒤섞이고,
2차원과 3차원, 거기에 4차원이 뒤섞이고, 주체와 객체가 뒤섞이고,
환영과 현실이 뒤섞이고, 이미지와 이미지가 뒤섞이고,
대립과 타협과 화해와 질서가 뒤섞이고,
뒤섞이다가,
이 모든 게 한꺼번에 가라앉더니
서서히 어떤 무늬가 만들어진다.
어느 유명한 말처럼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조화.
마치 마법처럼, 그림자처럼, 그림처럼
현실의 뒷면처럼
그저 무한함,
그것은 텅 빈 공허가 아니라
비존재들의 영원한 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