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음 눈을 떴을 때
빛이 있어서 빛을 보고
어둠이 있어서 어둠을 보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몰랐을 때
오직 두려움만이 간신히
내 자신에 대한 실마리였을 때
(심지어 그 마저도 불분명했을 때)
거기에는 이미
어떤 예감이 있었다.
태초의 무에서 가장 먼저
존재보다 더 먼저 솟구쳐 오른
어떤 예감.
이 세상은 혼돈이 아니며
무의미가 아니며
허무가 아니라는
막연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압도적인 예감.
그리하여 우리는 그제야 길고 가느다란 다리로 똑바로 서서
세상을 둘러보며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 태초의 예감은 바로 우리의
태어났거나 앞으로 태어날 인류 전체의
바램이었음을.
우리는 혼돈이 아니며
무의미가 아니며
허무가 아니라는
막연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압도적인 바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