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브 아돌프 모사
Elle 그녀 / Gustav Adolf Mossa 구스타브 아돌프 모사
속된 기쁨.
우리에게는 속된 기쁨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사실 우리는 속된 기쁨을 너무 많이 빼앗겼다.
지적인, 고급의, 컨셉추얼하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디지털적인, 가상의, 트랜스휴머니즘적인, 양자역학의
평등주의적인, 상대주의적인, 페미니즘적인, 다문화적인 어쩌고 저쩌고
그래, 특히 그 갈갈이 해체하는-되는 미술들에게.
(끊임없이 해체하다가-되다가 나중에 다시 조립하려고 하면 아차, 꼭 부품 한두 개가 없기 마련이지.)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여전히 끈질긴
속된 기쁨이 있다.
아아, 나도 알아.
모든 속된 기쁨이란 편협하고, 유치하고, 진부하고, 천박하기 마련이지.
우리는 그것을 깔보며 아닌 척 힐끗힐끗 곁눈질하지만 실은
늘 누군가 내 면전에다 대놓고 크게 외쳐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
이 그림처럼.
어린 소녀, 젖가슴('젖통'이 더 나을까), 싸구려 장신구, 작고 앳된 손가락, 창백한 엉덩이, 시체, 욕망, 순결, 살육, 죽음, 검은 고양이와 까마귀, 해골, 주술과 미신, 강간하고 싶은 욕구와 강간당하고 싶은 욕구, 성녀와 창녀와 마녀, 여성 혐오, 얄팍한 상징과 신비주의....
온갖 구태의연하고 잡스러운 것들이 여기 다 모여있다.
그러나 이 그림과 맞닥뜨렸을 때 (확신하건대)
과연 첫눈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입으로는 짐짓 이런저런 냉소를 뱉어내며 체면을 차릴 수도 있겠지만
두 눈만은 분명 노골적인 만족으로 번쩍일 터이다.
뇌 변두리 뒤쪽 혹은 아래쪽 어딘가에는
조잡하게 빛나는 어린애 같은 기쁨이
바로 그녀의 새하얀 허벅지 위에 찍혀있는 붉고 조그만 손자국처럼
선명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