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여기에 그 누구도 맞출 수 없는 수수께끼가 있다.
심지어 저 그림을 그린 화가조차 맞추지 못할 것이다.
과연 저 그림 뒤의 창밖에도 저 나무가 서있을까?
세상에, 그 누구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아, 저 이젤을 치워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젤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때 이젤 뒤에 숨어있던 진짜 수수께끼가 덥석 우리의 손을 잡는다.
과연 이젤의 [뒤]라는 것이 있을까?
혹은 창 [밖]이라는 것이 있을까?
혹은 그림 [속]이라는 게 있을까?
이것은 유머, 하지만 실은 공포가 아닌가.
마치 화장을 고치기 위해 거울을 보았는데
우리의 뒷모습과 마주하게 된 것만큼이나 우리를 놀라게 한다.
텔레비전 화면 속 우물에서 기어 나온 여자는 왜 우리를 소름 끼치게 하는가.
그녀가 내내 그 우물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뒤]는 어디이고 [밖]은 어디이고 [속]은 어디이고 [안]은 어디인가.
대체 뭐가 [이젤]이고 [창]이고 [그림]이고 [우물]이라는 걸까.
그럼 저게 [이젤]이 아니고 [창]이 아니고 [그림]이 아니고 [우물]이 아니라고?
세상에, 우리는 미쳐버린 것일까? 애초에 미쳐버린 채로 태어난 것일까?
물감이 묻어 있는 평면의 캔버스를 도저히 물감이 묻어 있는 평면의 캔버스로 볼 수 없다면
그 캔버스 안에서 틀림없이 [이젤]과 [창]과 [그림]과 [우물],
[뒤]와 [밖]과 [속]과 [안]을 찾아내고야 만다면
우리는 정신병원의 작은 침대에 묶여서도 벽에 걸린 네모난 거울 속으로 빠져나와
지금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자신이 바로 그림으로 가려진 저 창밖의 나무인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애써 모른 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