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시 도자기

by 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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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issy Ware 팔리시 도자기 / Bernard Palissy 버나드 팔리시(1570-90)






당신은 지금 여기


하얀색 식탁보가 정갈하게 깔려있는 대리석 식탁 앞에 앉아 있다.


식탁 한가운데에는 신선한 과일이 가득 쌓여있는 접시 하나가 놓여있다.


사과는, 아니, 사과는 너무 식상하니


자두라고 하자.


노란빛이 촉촉하게 맴도는 붉은색 자두는 마치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보기에 좋았더라, 절로 감탄할 만큼 아름답고 생기 있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삶의 정수가 아닌가.


당신은 눈이 시리고 어느새 입안에 침이 고여서


자신도 모르게 접시를 향해 손을 뻗는다.


입안에 한 입 가득 베어 문 자두가 얼마나 시고 달큼한지


설사 이것을 훔쳐먹고 벌을 받는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한 입, 또 한 입, 한 개, 또 한 개


마침내 당신은 마지막 자두 한 알까지 탐욕스럽게 움켜쥔다.


아, 그때 자두 밑에서 똬리를 틀고 조용히 숨어 있다가


가만히 고개를 쳐드는 뱀 한 마리.


그제야 당신은 의도치 않게 지극히 의도적으로


이 접시를 완성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접시는 작품이 되고


식사는 예술이 되며


당신은 관객이 된 것이다.


당신은 마지막 자두를 손에 꼭 쥐고서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겠지.


자신이 이 접시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혹은


접시가 당신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계시적인 운명.


사과 한 알로 모든 이야기를 시작했던 어느 고대의 신처럼


자, 이래도 작가가 신이 아니란 말인가.


사과들이 남김없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


당신은 접시까지 싹싹 핥아먹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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