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래리 벨

by 곡도


Larry_Bell,_Untitled_Trapezoid_Improvisation,_1983..jpg

Untitled 무제 / Larry Bell 래리 벨 (1983)





영리함


혹은 교활함.


모든 기준에서 장인 정신을 내팽개친


뻔뻔함.


관객에게 앞자리를 양보하는 척하면서


실은 관객 머리 꼭대기 위에 서려고 하는


무뢰함.


유리 몇 장을 이리저리 늘어놓고는


대단한 성찰이라도 되는 것처럼 으스대는


비열함


혹은 비범함.


예술가는 더 이상 환상의 창조자가 아니다.


창조에 대한 경외는 창조주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 예술가는 (아마 이 명칭도 바뀌어야 할 것인데)


일상의 단면에서 환상을 드러내는 폭로자이다.


(혹은 폭로자일뿐이다?)


유리 몇 장으로 쪼개는 공간.


아니, 쪼개지는 건 시각.


아니 아니, 실은 아무것도 쪼개지는 건 없었나.


아니 아니 아니, 원래부터 모든 것이 쪼개져 있었다면?


유리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적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적시는 유리처럼 투명하고 단단하고 순진해서


환상의 부재 또한 확신하게 한다.


남은 것은 환상에 대한 (혹은 예술에 대한)


피상적인 추억뿐.


궁금한 것은


과연 이런 비슷비슷한 작품을 계속 만들 필요가 있을까?


유리의 위치나 형태를 조금씩 바꾸어 가면서?


과연 이 작품들을 보러 전시관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유리 한두 장이면 자기 집 거실에서도 똑같은 걸 볼 수 있는데?


영리함


혹은 교활함.


글쎄, 그건 또 다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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