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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Apr 18. 2022

너바나


Nirvana 너바나 (1997) 





자아의 근원이나 본질, 정체 같은 건


따지지 않기로 하자. 어쨌든 중요한 건, 혹은 당면한 문제는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


세상을 향해 하나의 시선이 뚫리고


허허벌판에 중심 점이 생기고


세상의 내면과 만나고자 하는 나의 내면이 있다는 것.


우리는 그것만을 믿을 수 있을 뿐이다.


자아自我, 우리가 기도드리는 유일한 신.


그러나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자아의 근원이나 본질, 정체도 모르면서.


더구나 죽음이라는 뻔한 신비 앞에서


어찌할 바도 모르면서.


결국 우리는 필연적으로 


모든 종교를 잃는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현상.


다분히 우연적이고 다분히 물리적인


우주적인 안목에서 전체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한 밤 중에 쏟아지는 눈보라 속 한 개의 눈송이 같은 것.


이 눈보라가 영원히 계속된다면 조금은 위로가 될까?


혹은 그 반대일까?


어쨌든, 결국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오래된 이야기조차도.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하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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