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광인

사이먼 윈체스터

by 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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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와 광인 ] 사이먼 윈체스터




나는 이 책을 아주 오래전에 사놓고 그냥 묵혀두고 있었다. 이미 대충의 내용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뻔하게 여겼던 것 같다. 책은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만드는 과정에 한 정신병자가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골자로 삼고 있다. 그런 지적인 작업에 어쩌다 정신병자가 도움을 주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그 정신병자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호기심에 이 책을 구입하기는 했지만 대단한 기대를 가졌던 건 아니었다. 신변잡기적인 정보만이 나열되어 있거나 그저 변변치 않은 도움을 준 것을 가지고 침소봉대하면서 이야기를 과장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사회 낙오자들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신파조의 교훈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책의 표지 탓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시 보게 될 사진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유발하지 않는 밋밋하고 고루한 흑백 인물 사진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일단 이 책을 펼쳐 든 나는 거의 첫 페이지부터 끝페이지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망설이고 지체하면서 책을 읽는 버릇이 있는데도 이 책은 며칠 만에 거뜬히 완독 했다. 책이 어땠냐고? 이 책은 재미있다.

나는 때때로 픽션보다 논픽션이, 그것도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 인물은 상징도 아니고, 합리적이지도 일관되지도 않으며, 모순이 넘쳐나고, 의외의 선택을 강행하는 등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내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인물의 삶은 이야기의 든든한 출발점이자 기반이 되어 주지만 동시에 이미 결정되어 있는 꼭짓점들이 벗어날 수 없는 틀을 만들어버린다. 거기다 그 틀 안에는 공백이 있기 마련인데, 그 공백을 텅 빈 채로 놓아두자니 이야기가 엉성해지고 상상력으로 채워 넣자니 자칫 왜곡이 되어 버린다.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성긴 그물과도 같은 인물 안에 갇혀 헤매는 모습을 자주 보아왔다. 그들은 이 인물에게 현미경을 들이대야 할지 망원경을 들이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주인공에 대한 것인지 작가 자신에 대한 것인지 모를 핑계를 잔뜩 늘어놓기 일쑤다. 결국 진실하지도 않고 사실적이지도 않으며 재미있지도 않은 싱겁고 미지근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진부한 교훈이나 위로를 짜내려고 하는 경우겠지만.

그에 비하면 이 책의 작가는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그러나 이야기에서 이야기를 뽑아내는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한 이야기꾼이 아니라 독자를 태우고 우거진 숲 위로 비행기를 모는 진득한 기장과 같은 이야기 꾼이다. 그는 영리하고 침착하며 균형 감각이 뛰어나고 겸손하다. 그는 숲도 나무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는 숲과 나무를 함께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고도를 유지하며 비행한다. 그는 비행기를 위아래로 혹은 좌 우로 흔들어서 승객들의 감탄과 흥분을 자아내는 대신에 세심하게 항로를 계획하고 풍경을 연구하고 시간대를 계산한다. 그래서 그와의 비행은 쾌적하고 안정되며 유익하면서도 다채롭다.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무심하지 않은 그의 글은 한 문장 한 문장이 신중하게 선택된 것이다. 나는 몇 페이지를 읽기도 전에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으며 독서를 끝낼 때까지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이 책에는 크게 두 가지 축이 있는데, 촉망받는 의사이자 군의관이었지만 광기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른 미국인 의사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가 그 한 축이고, 옥스퍼드 영어 사전과 그 사전의 편집자인 제임스 머리가 또 다른 한 축이다. 구도가 이렇다 보니 제임스 머리는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에 비해 비중이 다소 적은 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 옥스퍼드 영어 사전, 제임스 머리, 이렇게 세 가지 축으로 이야기를 엮었다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조금 들지만 그랬다면 분명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에 대한 집중력이 한결 약화되었을 테니 작가의 선택이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찾아보니 이 책의 저자가 쓴 [영어의 탄생]이 있기에 곧바로 구입했다. 아마 이 책이 내 아쉬움을 보충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는 흥미로운 사람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그의 삶을 탐냈을 것이다. 그는 미국의 유복한 귀족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선교에 뜻을 둔 아버지를 따라 싱가포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성장하여 미국으로 돌아와 의대에 들어갔으며 군의관이 되어 남북전쟁에 참전한다. 그러나 남북 전쟁 중 정신병이 발병, 정신병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지만 나아지지 않아 결국 장래가 촉망받던 이 젊은이는 강제 전역을 당하고 만다. 병원에서 나온 마이너는 새로운 삶을 꿈꾸며 영국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결국 망상에 시달리다 총으로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게 되고, 그는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다시는 사회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 정신병원 안에서 서신으로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에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이 삶을 그대로 풀어놓기만 해도 재미있는 책 몇 권이 뚝딱 나올만하다. 그러나 내가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마이너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편찬 과정에 대한 것이었다.

이 책에는 마이너의 삶과 함께 영어 사전의 역사가 펼쳐지는데, 그것이 그 어떤 인간의 삶보다도 더 흥미진진하다. 사전이 없는 언어를 상상할 수 있을까? 사전은 단순히 뜻풀이를 모아놓은 책이 아니다. 그것은 그 언어의 중심과 한계를 정함으로써 언어에 형상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그 언어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시대상과 사회 구조를 반영한다. 영어란 무엇인가. 영어는 왜 영어인가. 영어가 프랑스어나 독일어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언어에 대한 이런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만으로도 대단한 진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영국의 영어 사전은 거기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다. '영어의 역사'까지도 사전에 담으려고 한 것이다. 마치 영어가 하나의 생물이기라도 하듯 그 진화의 과정을 모두 사전에 포착하려 한다. 이 단어의 태생과 근원은 어디인지, 이 단어가 언제 영어에 편입되었는지,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한 영어 텍스트가 무엇인지, 시대마다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였으며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낸 텍스트의 문장은 또 어떤 것인지, A ~ Z까지 이 세상에 존재했던 영어로 된 단어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말이다. 그들은 가히 천지창조를 모두 기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모래알 하나부터 우주 끝의 행성 하나까지 이 작은 책 안에 빠짐없이 담으려 하다니, 그들은 성경을 대체하기라도 하려고 했던 걸까.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편찬되는 데 무려 70년이나 걸렸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세상에, 그들은 미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광기의 위대함이다. 그 미친 사람들의 광기가 결국 영어의 위대함이 되었다.

마이너가 이 위대한 광기에 이끌렸던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역시 옥스퍼드 사전처럼 지성과 광기의 합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분명 극적이고 감상적인 구석이 있다. 삶의 고통의 본질을 엿보는 듯하기도 하다. 인간은 날개가 있기에 추락한다. 날개는 오직 추락하기 위한 것이다. 작가라면 이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연민이나 동정, 교훈 등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과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위험이 다분하다. 그러나 이 책의 작가는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한 이 책에서 작가가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 건 단 한 번뿐이다. 그것도 맨 마지막에 [에필로그]라고 따로 분리한 장에서,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에 대해서도 아니고 제임스 머리에 대해서도 아닌, 이 책의 맨 앞 장에서 윌리엄 체스터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등장했던 조지 메리트에 대해서다. 조지 메리트는 빈민층의 노동자로 어느 새벽 출근을 하다가 망상에 사로 잡힌 마이너의 총에 사망했다. 그는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사람일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를 살해함으로써 마이너가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고, 또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기 때문에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찬을 돕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그는 중요한 사람 이지만, 그게 꼭 그일 필요는 없었다는 점에서 그는 전혀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마이너나 머리는 결코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지만 조지 메리트는 그가 아니라 다른 그 누가 그의 역할을 맡았다고 해도 이야기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 작가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리고 사실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는, 한마디로 별 볼 일 없는 조지 메리트에게 이 책 내내 참아왔던 동정과 연민을 - 마이너와 머리의 몫까지 - 모두 바치고 있다. 솔직히 나는 그것이 불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메리트는 그저 불행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다른 다수의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오래 참아왔다. 그러니 마지막에 한 번쯤 감회에 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비행 내내 침묵을 지키던 기장도 착륙하기 전에는 마이크를 들고 승객들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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