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스 반 복셀
요즘 읽지 않고 오랫동안 처박아두었던 책들을 꺼내서 읽고 있는데 의외로 재미있는 책들이 많아서 놀라고 있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거의 놀라 자빠질 정도였다. 정말이지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내 잘못만은 아닌데, 우선 책 제목부터가 이게 뭐냔 말이다. 이제껏 '백과사전'이나 '사전' 운운하는 책 치고 괜찮은 책을 본 적이 없다. 그저 가나다 순으로 정보를 기계적으로 나열하거나, 쓸데없이 잡다한 것까지 닥닥 긁어모아 책 두께를 늘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 일쑤였다. 그런 책들은 질적 결핍을 양적 과다로 메우려는 쓸데없는 성실함에 도취되어 있기 마련이었고, 내가 중고책 사이트에서 이 책을 골랐던 것도 그 성실함에 기대어 그나마 어리석음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라도 몇 개 건질까 해서였다. 거기다가 나의 선입견을 더욱 부추겼던 건 상품 페이지 아래 달린 독자들의 평이었다. 평가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거의 가위로 난도질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빨리 읽고 어디로 치워버릴 생각으로 이 책을 골라 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연속으로 2번 정독했다.
엄마, 나 이 책 좋아하네. 하고 외쳐야 할 판이다. 이 책은 가나다 순으로 정보를 기계적으로 나열하거나, 쓸데없이 잡다한 것까지 닥닥 긁어모아 책 두께를 늘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책이 결코 아니었다. 물론 나 역시 마음만 먹으면 이 책에 대한 비난거리를 얼마든지 끄집어낼 수 있다. 무엇보다 '어리석음'이라는 단어를 너무 방조하고 과용한 부분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어리석음'이라는 단어는 작가의 '어리석음'을 담기에는 너무 세속화되고 희화화되어있기 때문에 작가는 다른 단어를 발굴하거나 새로운 단어를 창조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아니면 하다 못해 한 단원 정도 할애해서 '어리석음'에 대한 정의와 범위를 규정해 주는 것도 좋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작가는 그런 좀스럽고 시시콜콜한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어리석음'이라는 단어 하나만 달랑 들고 곧바로 이 책 안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책 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처음에 독자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몰라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우선 이 무모한 작가를 구해내기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 아마도 직접 물에 뛰어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마치 뒤에서 누가 떠다밀기라도 한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말이다. 그러나 물은 겨우 가슴까지 올뿐이다. 어리석게도! 이미 작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보기 좋게 당했다. 물에 흠뻑 젖은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그것은 비웃음이 아니다. 그저 물이 생각보다 시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애초에 이 책에서 풍자적이고 희화적인 것을 기대했었지만 이 책은 풍자적이지도 희화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기이할 정도로 진지하고 집요하다. 그것이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랄까.
어리석음에 대한 이 책은 사실 어리석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얼핏 무계획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매우 치밀하게 계획되었다. 여기저기서 잡다하게 인용한 구절들도 매우 신중하게 선별된 것이다. - '바보 멍청이들의 가계도'나 '모든 사람의 시간과 머리 좋은 포르투나' 같은 인용에 나는 열광해다 - 앞에서 말했듯이 이 책이 혼란해 보이는 건 오직 '어리석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날뛰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어리석음'이라는 단어뿐이다. 온갖 먼지와 쓰레기와 오물이 잔뜩 달라붙어 있는 이 불결한 단어 말이다. 그러나 아마도 저자는 그 불결함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아니, 오히려 '어리석음'을 물에 씻어 알맹이는 버리고 그 설거지한 물을 들이켤 심산이다. 본질이란 원래 내적인 것이 아니라 외적인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정교한 사실이나 지식에는 관심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확실히 학문성은 떨어지고 말았지만, 그 딴 게 다 무슨 상관인가. 학문이란 어리석음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음을 슬며시 가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실은 우리의 문명과 역사 전체가 그렇다. 우리는 어리석음의 거대한 대양에 떠있는 한 조각 나뭇잎과도 같다. 그리고 그 거대한 대양 또한 바로 우리 자신으로, 우리는 언제나 어리석고 영원히 어리석다. 이 세상의 진리란 오직 이것뿐이다. 만약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신은 '어리석음'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리석음'을 숭배하지 않고 오히려 비웃고 조롱하며 함부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그것이 바로 인간을 위한 '어리석음' 신의 세심한 계시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은 신성한 비밀이며 동시에 그 문을 지키는 문지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가 결코 현명해질 수 없도록 방해한다. 현명함은 고작 우리가 어리석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일 뿐으로, 그나마 간신히 떠 있던 낙엽마저 끝없는 어리석음 속으로 영원히 침몰시켜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이 거대한 어리석음으로 부터 고개를 돌려 오직 하늘에 떠있는 이성의 별자리를 바라보며 항해해야만 한다.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 대양을 벗어나 단단한 땅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이 대양이 거대한 구체인 걸 모르고. (혹은 모른 척 하면서.)
다시 말해 우리의 어리석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진짜 현명함이요, 우리의 어리석음을 들추는 것이야말로 진짜 어리석음이다. 비밀은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힘을 발휘하는 것이지 힘이 있기 때문에 비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 어리석은 짓을 하면 본능적으로 혹은 발작적으로 웃음을 터트리는데, 얼떨결에 비밀에 가까이 다가갔음을 감지하고 놀랐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깨달음을 황급히 바람에 날려버림으로써 그 비밀을 방어하고 수호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리석은 자들을 마음껏 비웃어야만 한다. 그들은 어리석음의 비밀을 폭로하려고 하는 테러리스트들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자들을 비웃지 않는 현명한 자들은 차라리 죽여야 한다. 그들은 이 세계 전체를 위협하고 와해하는 신성모독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리석음에 대해 폭로하고 있는 이 책 역시 다분히 신성모독적이다. 이 책을 화형에 처해야 마땅하리. 아, 이 책을 비난했던 독자들이 옳았구나.
취향은 그 어떤 논리보다 강력하다. 그리고 책은 지극히 취향의 영역이다. 취향은 강요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내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마치 내 성감대라도 알려달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내 성감대 하나를 건드린 게 분명하다. 어쩌면 책을 읽기 전 내 기대감이 너무 낮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뭐, 어쨌든 모로 가나 홍콩만 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