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사코
개인적으로 나는 사회 고발, 시사, 교훈, 교화, 계몽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나 그림, 영화, 다큐멘터리 등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 한 문장이면 될 뻔한 얘기를 가지고 이리저리 늘리고 들쑤셔서 애먼 감정에 호소하는 행태가 거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동정, 공포, 연민, 슬픔 등등을 앞세워 실제로 내게 강매하려 하는 것은 '죄의식'이다. 내 얼굴에 날카롭게 삿대질을 하면서 외치는 것이다. "방관하고 있는 너 역시 저들과 똑같아." 사실 그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그런 인간들과는 달라'라고 자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교만과 허영을 부추기는 교활함이기도 하다. 나를 교만하게 만들어 나보다 더 교만해지려고 하는 제작자들의 욕망.
그러나 뭐, 좋다. 사실 나는 그런 것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작품만 좋다면 말이다.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의도의 선함이나 악함이 아니라 결과물이니까. 그들이 윤리니 정치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빤스 춤을 추더라도 거기에서 재능과 상상력과 재치와 냉소가 빛나기만 한다면 나는 기꺼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애초부터 이런 목적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 재능과 상상력과 재치와 냉소까지 갖추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도리어 고루하고 유치하며 심지어 천박하기 일쑤다. 재능 없는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한 가장 비겁하고 손쉬운 방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람들을 철저하게 바보 취급하는 것. 바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작품을 본 것만으로도 스스로 좋은 사람이고 지식인이며 행동가가 되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 내가 유난히 신랄하게 말하는 것은 최근에 이런 작품들을 너무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대중성'에 대한 지극히 편협한 상업적 공식. 오히려 편견에 젖어 있는 건 내쪽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들이 집회를 연다면 참여할 의사가 있지만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모욕감을 참을 수는 없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책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제목과 표지에서부터 이미 내용은 짐작하고도 남음이었다. 말해 뭐해. 당연히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박해는 옳지 않지. 박해받았던 자들이, 그리고 그 박해를 지금까지도 우려먹는 자들이, 다른 민족을 이토록 부당하고 가혹하게 박해하다니 정말 가증스러운 일이야. 이스라엘은 전 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선과 악이 아니라 악과 악을 가지고 저울질해야 하는 사악한 기쁨을 주고 있어. 어쩌면 히틀러의 직감이 옳았던 게 아닐까? 뭐,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내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달랐다.
작가는 직접 팔레스타인 현장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 개개인을 만나며 밀착 취재를 했다. 그는 관광지가 아닌 그들의 생생한 생활 깊숙이까지 접근했다. 위험한 순간도 많았고 어려움도 컸다. 그의 노력과 고충은 가히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는 큰 대의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인간적 비극에 노골적으로 공감을 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취재한 사람들에 앞서 작가 본인을 더 적극적으로 내세움으로써 작가는 그들과의 거리감과 객관화를 획득한다. 우리는 결국 각자 자신의 입장과 역할에 갇혀있는 타인들일 뿐이다, 라는 냉담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그 전략이 마음에 들긴 하지만, 이 작가의 경우에는 그것이 좀 지나쳐서 오히려 다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걸 지적해야겠다. 작가는 자신이 정의감이나 공명정대한 분노, 동정심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공명심과 야망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는 것뿐이라는 사실, 자신이 속물, 겁쟁이, 비겁자, 방관자, 이기주의자에 기회주의자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하지만, 보는 사람은 의아하기만 하다. 당연한 사실을 왜 몇 번이나 강조하는 것인가? 독자를 얕보는 건가? 물론 위험한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작가 자신과 집구석에서 한가하게 빈둥거리며 이 만화책을 보고 있는 독자들 사이의 위화감을 줄이려고 한 의도는 알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좀 과했다. 착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의 뒤집어진 버전일 뿐이다. 그의 자기 비하는 오히려 그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있는지를 반증할 뿐이다. 무지하고 무기력한 대중으로부터 쏟아질 당연한 찬양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듯한 그의 겸손한 태도는 교만이고 자기 과시이다. 그는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솔직한 척 하지만 실은 지독하게 방어적이어서 자신을 일종의 캐릭터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 책을 내 '책장'에 넣었다. 중간쯤 읽었을 때만 해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결국 나는 굴복하고 말았다. 우선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만화의 진지함이다. '진정성'이라고 하지는 않겠다. 진정성은 타인이 판단할 영역이 아니니까. 그러나 진지함은 판단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진중함이 있다. 내용이 아니라 그 태도의 무게가 우리의 멱살을 잡아끈다. 그것은 작가가 돌연 '만화'라는 형식을 거의 포기하면서까지 구구절절 손글씨로 써 내려간 몇 장에 달하는 페이지에서 좀 더 확연해진다. 그것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현실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작가는 그것을 만화로 희화시키거나 단순화시킬 수 - 만화란 결국 희화하고 단순화 하기 마련이니까 -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말해야 했다. 나는 들어야 했다. 아마도 우리에게는 글의 행간이 주는 침묵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책의 진지함은 그림에서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사실 이 뻔한 얘기를 뻔하지 않게 만들어 준 건 그의 그림의 공이 크다. 그의 만화는 단 한컷도 손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선 하나하나까지 긴장을 유지하면서 최선을 다 하는 느낌이다. 심리적 현장감을 살려주는 다양한 각도와, 선이 굵고 단호하며 결코 타협하지 않는 그림체는 작가가 이 일에 얼마나 진지한지,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말보다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마치 쇠를 깎아 만들어진 만화 같다. 사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그 수많은 불행 중에 팔레스타인의 불행이 딱히 유별나다고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여전히 유대인에 대한 독일의 만행에는 한참 미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그의 그림이 벼려내는 금속성 의지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만화를 읽은 후에도 팔레스타인에 별 관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것은 뻔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