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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Dec 13. 2022

우울의 해부학 (9)

로버트 버턴


Giorgio de Chirico의 [점장이의 보상] (1913)




( 역자 - 라틴어는 명조체로 진하게 표시합니다. )





     처음에는 그보다 더 잘 될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용도, 새로운 세대, 또는 무언가가 그것을 바꾸었습니다.  

     여러분이 숙독할 수 있도록 더 잘 조언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거절한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도록 하세요. 


     나는 이 논문을 다시는 출판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엇이든 너무 많이 하는 건 좋지 않죠. 이후로는 추가, 변경, 또는 철회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끝을 냈습니다. 다만 마지막이자 가장 큰 예외였던 건 제가 성직자로서 의술에 간섭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을 위한 여가가 있나요?

     도움이 필요한 낯선 사람들은 사실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메네데모스①가 크레메②에게 반대했던 이유입니다. 나에게 관심 없는 다른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 여가나 의무가 나에게 있습니까? 내가 의술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의사가 자신의 일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고대 스파르타인들에게 국가 문제에 대한 조언이 필요했을 때, 한 방탕한 사람의 말솜씨가 매우 좋았고 목적에도 부합했기 때문에 그의 연설이 전적으로 승인된 일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것이 그럴싸하긴 했지만 근심에 싸인 상원 의원이 나서서 그것을 폐지했습니다. 왜냐하면 조언가인 그는 최악의 저술가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저술가보다 나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선한 사람이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그냥 지나가도록 하세요.③ 이 조언이 받아들여지고 이루어지고 곧바로 공인된다면, 좋은 계획은 유지되고 나쁜 상담가는 해고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만큼 불만이 많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정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제가 의술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문적인 의사들이 이 일을 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내가 왜  이 분야에 끼어들었을까요. 제 말을 들어보세요. 인간성과 신성 모두를 다루기에 적당한 다른 많은 주제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만약 제가 나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으로 글을 썼다면 그런 것들을 선택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저는 좀 더 사교적이고, 기꺼이 사치스럽고, 스스로나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우울증이라는 바위 위로 치명적으로 곤두박질쳤고, 이 비주류의 냇물로 이끌려 갔습니다. 마치 실개천처럼,  평소 나를 기쁘게 하고 몰두하게 했던 가장 필요하고 보편적인 내 연구의 본 경로에서 빠져나오고만 것입니다. 제가 신학보다 의학을 더 선호하는 건 아닙니다. 신학은 모든 분야의 여왕이며 그에 비하면 다른 모든 것이 시녀와 같지만, 저는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것뿐입니다. 제가 만약 적극적으로 글을 썼다면  수많은 책들이 나왔을 것입니다. 주석가, 논문, 팸플릿, 해설, 설교들이 너무 많아서 황소들 전체가 와도 그것들을 끌어갈 수 없을 정도였을 겁니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처럼 진취적이고 야심이 있었다면, 나는 아마도 폴의 십자가에서의 설교, 성 마리의 옥슨에서의 설교, 그리스도 교회에서의 설교, 존경하는 의원님과 존경하는 목사님 앞에서의 설교, 존경하는 숭배자 앞에서의 설교, 라틴어로 된 설교, 영어로 된 설교, 이름 있는 설교, 설교 없는 설교, 설교, 설교 등등등을 인쇄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것들을 찍어내고 출판할 때,  저는 그런 종류의 수고는 자제하고 싶었습니다. 논란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히드라④의 머리를 자르는 일입니다. 소송은 소송을 낳는다고 했지요. 하나가 다른 하나를 낳으면서 너무나 많은 이중 삼중의 중복들이 생기고 질문들은 무리를 이루죠. 펜으로 치러지는 이 신성한 전쟁은 한 번 시작하면 결코 끝낼 수 없습니다. 그런 때 하나로 단합한다는 건 좋은 일이죠. 예를 들어 6대 교황인 알렉산더가 탁발 수도사, 예수회 사람, 신학교 사제보다 오히려 위대한 군주 쪽을 더 도발한다는 건 오랫동안 관찰되어온 사실입니다. 덧붙이자면 탁발 수도사, 예수회 사람, 신학교 사제 같은 종류의 인간들은 천하무적이거든요. 그들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자신들의 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열의, 뻔뻔함, 끔찍한 거짓말, 위조, 비통함과 함께 질문 속에서 그들은 전진합니다. 분노에 눈이 멀었나요? 더 예리한 힘에 사로잡혔습니까? 아니면 죄책감이 답을 줄까요? 맹목적인 격노, 오류, 경솔함 같은 것들을 부추기는 것이 무엇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오스틴⑤은 오래전부터 다툼의 폭풍 속에서 사랑의 평온함은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었죠. 다툼의 폭풍 속에서 자선의 평온함에는 구름이 잔뜩 끼었고,  모든 과학 분야에서는 맹렬히 분노하고 소란을 피우는 너무 많은 영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일이 일어납니다. 파비우스⑥가 말했듯, "그들 중에는 벙어리나 문맹으로 태어나는 편이 자신의 파멸에 몰두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불명예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하고 아예 글을 쓰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일반적인 잘못이죠. 그래서 덴마크 사람인 세베리누스⑦는 의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불평했습니다. "우리처럼 불행한 인간은 무익한 질문과 논쟁으로 날들을 허비합니다."  물속의 달빛에 대한 보잘것없는 복잡 미묘함에 대한 것처럼 말입니다"그동안 모든 종류의 질병에 대한 최고의 치료약을 발견할 수 있는 자연의 최고의 보물들이 손도 대지 않은 채 남겨졌던 것은 우리 자신을 소홀히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해 알아보길 원하는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고, 비난하고, 금지하고, 비웃는 일입니다."  이러한 동기가 나를 의학의 주제로 인도했습니다. 혹시 어떤 의사가 뜯어진 틈새 너머까지 침범해서 재봉하지 마세요 라는 뜻을 내비친다면, 그리고 내가 자신의 전문 분야에 침입하는 것을 언짢아한다면, 나는 그에게 간단하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그들에 의해서 결심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비록 그들은 우리에 의해서 결심을 바꾸지만 말이죠. 그들의 항의가 단지 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나 역시 성직을 바라면서 그저 명령에 따르는 많은 분파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일반적인 추이라면, 왜  성직매매 외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우울한 성직자는 의술에 공언할 수 없나요? 이탈리아인인 드루수스⑧는 (원래 크루시아누스이지만 트리테미우스⑨는 정직하지 못하게도 그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수행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직업을 그만두고 후에 신학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마르실리오 피치노⑩는 동시에 성직자이자 의사였으며, 토마스 리나커⑪는 노년에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예수회는 현재 양쪽을 다 허가하며 상관의 허락하에 외과의사, 포주, 뚜쟁이, 산파 등등 여러 가지 직업이 허용됩니다. 많은 가난한 교구 목사들은 다른 수단이 없어서 강제로 교체되기도 하구요. 그들은 야바위꾼, 사기꾼, 돌팔이 의사가 되지요. 우리의 탐욕스러운 후원자가 늘 그렇게 하듯이 우리를 어렵게 만들어서 우리 대부분을 그러한 일로 내모는 것입니다.  바울⑫이 그랬던 것처럼요. 그는 막노동꾼, 엿기름 제조인, 행상, 목축업자, 에일 맥주 판매인이 되었지요. 몇몇은 잘 해냈지만 몇몇은 형편없었어요.  그러나 저는 이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큰 실수나 무례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옳다고 여겨지면 성직자였던 게오르기우스 브라우누스⑬와 히에로니무스 헤밍기우스⑭를 통해 나 자신을 입증할 수 있을 겁니다. (내 형에게서 한 두줄을 빌리자면) 그중 한 사람은 "자연스러운 사랑, 그림들과 지도들, 전망과 지지학⑮의 기쁨에 고무되어 도시들의 거대한 극장에 대해 썼으며, 다른 한 사람은 계보학을 연구하기 위해 극장의 계보를 작성했습니다. 이 같은 경우 예수회의 레시우스⑯와 내 연구를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다루고 있는 것은 치료해야 할 영혼의 질병으로서 의사에게만큼이나 성직자에게도 속하는 일입니다. 이 두 직업 사이에 어떤 일치가 있는지는 누구나 알 수 있죠. 좋은 성직자는 또한 좋은 의사가 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영적인 의사 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셨고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는 몸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인 이 두 가지는 치료에 있어서 다르며, 치료하기 위해서는 각각 다른 약을 씁니다. 의학 교수인 레기우스⑰가 최근 학식 있는 그의 강의에서 우리에게 알려준 것처럼, 하나는 육체를 통해 영혼 치료하고, 다른 하나는 영혼을 통해 육체를 치료합니다. 하나가 영적인 의학을 통해서 영혼의 악함과 열정, 분노, 정욕, 절망, 교만, 망상을 도울 때, 다른 하나는 신체 질병에 적절한 치료법을 사용합니다. 우울함은 육체와 영혼에게 공통된 병약함이며 육체적인 치료만큼이나 영혼의 치료를 필요로 합니다. 나로서는 바쁘게 몰두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일, 더 적절한 주제, 이토록 필요하며, 이토록 광범위하고, 일반적으로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 관계된 일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두 가지가 모두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하며, 그 두 가지를 모두 아우르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뒤섞인 질병의 이 혼합물에 대해 성직자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의사는 우울에 대해 더 소용이 없지만, 둘이 함께라면 절대적인 치료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1) Menedemus - 기원전 3-4세기 경 그리스 철학자. 



2) Chreme - 누군지  찾지 못함.



3) '어떤 선한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도움을 요청한다면 돕지 말고 그냥 지나가도록 하세요.'라는 뜻인 듯하다. 부적절한 조언과 간섭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hydra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뱀으로 머리가 여러 개인데 한 개의 머리를 자르면 그 자리에서 두 개의 머리가 돋아난다고 한다. 헤라클레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5) Austin  - 누군지 모르겠음. '성 아우구스티누스'일 수도 있지만 성인이라는 (St.) 표시가 없음.



6) Fabius - 기원전 3세기 경 고대 로마의 장군.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대를 무찔렀다.



7 Severinus - 6-7세기 경 71대 로마 교황. 



8) Drusianus - 누군지 찾지 못함.



9) Trithemius - 15-16세기경 독일의 성직자.



10) Marcilius Ficinus - 15세기경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의 영향력 있는 인본주의 철학자이자 카톨릭 신부 



11) T. Linacer - 15-16세기경 영국 인본주의 학자이자 의사이자 성직자. 



12)  Paul -   초기 그리스도교의 최대의 전도자이자 최대의 신학자. 



13) Georgius Braunus - 누군지 찾지 못함.



14) Hieronymus Hemingius - 누군지 찾지 못함.



15) 지지학 - 어떤 지역의 지역성 특성을 연구하고 종합하는 학문으로 지리학의 한 분야 



16) Lessius -  16-17세기 경 벨기에 출신의 예수회 신학자



17) Regius - 확실치는 않으나 왕실의 후원을 받는 교수를 뜻하는 듯 하다




                    



/번역/우울증의 해부/우울의 해부/The Anatomy of Melancholy/Robert Burton/로버트 버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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