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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Nov 20. 2022

우울의 해부학 (8)

로버트 버턴


Edward Hopper 의 [아침 햇살] (1952)




( 역자 - 라틴어는 명조체로 진하게 표시합니다. )




     제쓴 이 소책자를 정독하자니

     부끄러워지고 상당히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나라면 쓰지 않았을 많은 것들이 이 책 안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글을 쓸 당시 저는 지금보다 더 어렸고 더 어리석었습니다. 이제라도 많은 것들을 철회하고 싶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지금은 제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할 뿐입니다. (제가 만약 현명하게 일을 했더라면) 저는 진정 시인의 계명을 지킬 수 있었을 테지요. 인쇄하기 전에 9년 동안 여러분의 작업을 뒤로 미루도록 하세요. 그리고 좀 더 주의를 기울이세요. 내과 의사인 알렉산더①가 청금석으로 작업할 때 그것을 사용하기 전에 50번이나 씻었듯이, 나도 수정하고, 정정하고, 교정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제가 말했듯이) 한가한 여가 시간도, 서기나 조수도 없었습니다. 루시안②따르면 판크라테스③는 멤피스④에서 이집트의 콥터스⑤로 갈 때 하인이 필요하다며 문빗장을 가지고 가서는 미신적인 단어를 발음하여 (당시 유크라테스⑥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하인처럼 일어서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하인은 물을 가져오고, 고기 꼬챙이를 돌리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했습니다. 원하는 만큼 충분히 봉사를 한 뒤, 판크라테스는 하인을 다시 막대기로 돌려놓았습니다. 반면에 나는 내 편의를 위해 새로운 사람을 만들어 낼 수단이, 그러니까 누군가를 고용할 만한 수단이 없습니다. 나에게는 배의 선장처럼 호출하거나 달려가라고 명령할 호루라기가 없습니다.  나에게는 암브로시우스⑦가 오리게네스⑧에게 그의 말을 받아 적을 6-7명의 서기를 지원한 것과 같은 권위나 후원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일을 직접 해야 했고 마치 곰이 새끼를 낳듯 이 혼란의 덩어리를 생산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나는 곰이 자신의 새끼에게 하듯이 제대로 꼴을 갖추도록 제가 쓴 것을 돌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 그것을 출판하기 위해 즉흥적인 스타일로 무엇이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제가 일반적으로 하는 다른 일들처럼 혼란스러운 부호들의 집합에서 끄집어내어 생각나는 데로 쏟아부었지요. 그리고 내가 보통 말할 때처럼 별로 숙고하지 않고 써내려갔습니다. 거창한 단어들의 허식, 번드르르한 어구, 딸랑거리는 용어, 비유, 강렬한 대사 없이 말입니다. 아세스타⑨의 화살이 날아갈 때 주위에 불이 붙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치의 변형, 용감한 열정, 애가들, 과장된 윤색, 우아함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죠. 하지만 심지어 저는 물만 마실 뿐 와인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입니다. 와인이 현대적인 지혜를 향상하긴 하지만요. 저는 느슨하고 솔직하고 무례한 작가입니다. 나는 무화과는 무화과이고 스페이드는 스페이드라고 부릅니다. 자유롭고 여유 있게 나의 펜이 쓰는 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스페이드를 스페이드라고 부르고, 귀가 아니라 마음을 위해서 쓰며, 말이 아니라 물질을 존중합니다. 말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했던 카르다노⑩의 경우를 기억하세요. 세네카⑪에게서 배웠듯이 어떻게 쓸지 보다 무엇을 쓸까에 집중해야 합니다. 필로⑫가 생각한 바와 같이, "그는 물질에 정통하고 말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말은 말솜씨를 뛰어나게 만들어줄지는 모르지만 배움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요."


      말은 교묘하지만, 핵심이 하나도 없지요.

   

     그 외에도 현명한 세네카의 다음과 같은 관찰이 있었습니다. "말을 조심하고 단정하게 하는 사람을 보면, 원래 사람의 마음은 잡념으로 산만하고 굳건함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사실 예쁘게 장식하는 것은 남자답지 않습니다. 그가 나이팅게일에 대해 말했듯이, 여러분 목소리 그 이상이 아닙니다. 저는 이 점에 있어서 소크라테스의 학자인 아폴로니우스⑬의 공인된 제자임을 자처합니다. 저는 관용구를 무시하며 독자의 귀를 즐겁게 하기보다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적으로 노력합니다. 연설자가 요구하는 대로 깔끔하게 쓰는 것은 저의 연구나 의도가 아닙니다. 저는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기꺼이 그리고 솔직하게 표현하려 합니다. 그것은 마치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때때로 급하고 빠르게 흐르다가 또 단조롭고 느리게 흐르기도 합니다. 지금은 곧장 가다가도 나중에는 우회하며, 깊다가도 얕아집니다. 진흙탕이 되었다가 맑아지기도 하죠. 넓어졌다가도 좁아지기도 하구요. 저는 제 방식의 흐름을 따릅니다. 지금은 심각하다가도 나중에는 가벼워집니다. 우스꽝스럽다가도 풍자적이 되죠. 좀 더 정교하게 하다가도 태만해지고, 현재의 주제를 따르다가도 당장 내 마음이 끌리는 데로 합니다. 만약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고를 가진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여러분은 이것이 때로는 공정하고 때로는 반칙이라고 느낄 것입니다. 여기서는 샴페인이 터지다가, 저기서는 감금됩니다. 한 장소는 불모지인데 다른 장소는 옥토입니다. 숲, 작은 숲, 언덕, 계곡, 평원 등등에 의해서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가파른 산들, 미끄러운 숲 속의 빈터들, 축축한 풀밭, 끈적끈적한 벌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 다양한 대상들을 통과할 때 여러분은 좋아하거나 지독히도 싫어하겠죠. 

     제 글의 문제  제기 자체나 방법에 결함이 있다면, 어떤 것도 개인의 노력으로는 완전해지거나 완성될 수 없고, 누구도 모든 것을 성찰할 수 없고, 의심의 여지없이 많은 것들에게는 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세요. 갈렌⑭,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위대한 대가들도 정당하게 비난받거나, 탄압받거나, 거부되었을 겁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동물을 잡을 수 있다면 훌륭한 사냥꾼입니다. 저는 제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거기다가 저는 이 연구에 지나치게 연연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기에 고랑을 파지 않으며 이것은 제 일터가 아닙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아는 체하는 사람이고 낯선 자로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꽃을 땁니다. 만약 엄격한 검열관이 제가 쓴 것에 대해서 비난한다면 세 가지 유일한 결점을 찾을 것이 아니라, 스칼리체르⑮가  테렌스⑯에 대해 한 것처럼 300개는 찾아야 한다는 걸 저는 기꺼이 인정합니다. 카르다노⑩의 미묘함에서 행해진 것이나, 최근 로스토크⑰의 교수인 굴 라우렘베르기우스⑱가 라우렌티우스⑲의 해부학이나 성스러운 숲의 베네치아인 바로치⑳에서 발견한 것처럼 확연하고 수많은 실수들이 제 책에 있습니다. 이것은 6번째 찍어낸 판본으로서 제가 더 정확히 했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 전의 하자들은 수정했습니다만, 더 진전된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목수가 경험을 통해 하자를 발견해나가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지루한 일입니다. 때로는 오래되고 낡은 집을 고치는 것보다 새로 짓는 게 더 쉬운 법이죠. 이미 쓰인 것을 고쳐 쓸 때에는 오히려 더 많이 써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미 인정했듯이) 만약 제가 했던 어떤 것이 적절치 않다면 제게는 친절한 훈계나 쓰라린 독설이 필요합니다. 은총은 뮤즈와 함께 오게 하되 복수의 여신㉑은 멀리 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논쟁에서처럼, 모두의 유익을 위하여 다툼의 밧줄을 조여매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투고 서로를 오용할 수도 있지만, 대체 그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학자가 아닙니까. 


     두 명의 아르카디아㉒ 젊은이는 필요한 노래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래하고 답하면서 둘 다 비슷한 영감을 받습니다.

    

     우리가 논쟁을 한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나 자신을 괴롭고 그릇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우롱하게 될 뿐이죠. 저는 제 잘못을 발견하면 양보하고 수정할 것입니다. 만약 제가 성스럽거나 혹은 불경한 언어를 통해 선한 도덕이나 진실에 위배되는 말을 했다면 제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 주십시오그동안 저는 생략된 모든 결점들, 가혹한 구성들, 단어의 용어법들, 동어반복들 (비록 세네카⑪는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나를 지탱해주지만요. 너무 많이 말한 적도 없고 충분히 말한 적도 없다.), 시제 변화들, 숫자들, 인쇄 결함들, 기타 등등에 대해 호의적인 지적을 요청해왔습니다. 제 번역은 때때로 해석보다는 의역에 가깝고,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저자인 제 목적에 맞도록 바꾸기도 합니다. 종종 인용문이 글에 삽입되기도 하는 데 그것이 글의 방식을 더 어렵게 하긴 하지만 필요하면 책의 여백에 넣습니다. 그리스의 작가인 플라톤, 플루타르크㉓, 아테나이오스㉔ 등등은 원본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해석자를 통해 인용했습니다. 나는 의례와 세속을 뒤섞었지만 모독적이지 않기를 바라며, 작가들의 이름을 반복함에 있어서 그들의 이름을 연대 순이 아니라  사건 순으로 순위를 매겼습니다. 그래서 내 기억이 떠오르는 데로 때로는 고대인보다 현대인이 먼저 나오기도 합니다. 이 6판에서는 일부가 변경되고 말소되었으며, 다른 부분은 수정되고 상당히 추가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수많은 종류의 훌륭한 작가들을 다루면서 저에게는 편견도, 무례함도, 경솔함도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1)  Alexander - 누군지 찾지 못함



2) Lucian - 2세기 경 풍자 작가이자 수사학자



3) Pancrates - 2세기 경 아테네의 철학자



4) Memphis - 카이로 남쪽에서 20km 정도 떨어진 고대 이집트 고왕국 시대의 수도



5) Coptus - 현재는 Qift(키프트)라는 명칭의 도시로 나일강 동쪽 제방에 있는 상이집트의 수도



6) Eucrates - 누군지 찾지 못함.



7) Ambrosius - 4세기 경 이탈리아 밀라노의 성자



8) Origen - 3세기 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대표적인 신학자



9) Acesta - 누군지 찾지 못함.



10) Cardan - 16세기 경 르네상스 수학자, 의사, 점성가



11) Seneca - 에스파냐 출신의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극작가. 스토아 철학자로 네로 황제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12) Philo - 기원전 20년 ~기원후 50년 쯤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헬레니즘 유대인 철학자.



13) Apollonius - 확실치 않으나 기원전 3세기 경 그리스의 수학자.



14) Galen - 2세기 경 로마 의사, 의학자, 철학자.



15)  Scaliger  - 15-16세기의 프랑스 철학자로, 시학을 다룬 르네상스 저술가이며 미학의 창시자로도 여겨진다.



16) Terence - 기원전 2세기 경 로마 극작가.



17) Rostock - 동독의 북부, 발트해와 닿아있는 항구 도시.



18) Gul Laurembergius - 누군지 찾지 못함.



19) Laurentius - 3세기 경의 로마의 기독교 성인으로 초대 교회의 3대 성인 중 한 사람.



20) Barocius the Venetian in Sacro boscus - 책 제목인 듯함 



21) fury (퓨리) - 고대 그리스 신화 속 복수의 세 여신




22) Arcadia -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지역의 이름이다. 산으로 둘러싸여 양 방목지로 유명한 이곳은 속세를 벗어난 이상향으로 묘사되어 왔다.



23)  Plutarch - 대략 기원후 46~120년에 살았던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이다. 특히 영웅들의 전기를 쓴 [영웅전]으로 유명하다.



24) Athenaeus - 2세기 경 이집트 태생의 그리스 산문 작가






/번역/우울증의 해부/우울의 해부/The Anatomy of Melancholy/Robert Burton/로버트 버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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