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손톱이 자란다 (3)

by 곡도




노인 아이고, 이거 참. (신문을 흔들며) 세상에 희한한 일이 다 있네. 이거, 이거 좀 들어봐. (신문을 높이 쳐들고 기사를 읽는다.) 포천에 사는 김모씨는 어머니의 시체를 집 안에 10년 동안이나 보관하고 있다가 이웃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외동딸인 김씨는 어머니인 박씨가 10년 전 간암으로 죽자 시체를 안방에 모셔두고 지금껏 부패되지 않도록 관리해 왔다고 경찰이 밝혔다. 김씨는 어머니가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에 장례를 치룰 수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혀를 차며) 애정이 깊으면 병이라더니, 하여간 별난 세상이야.


아버지는 노인을 노려보다가 말없이 밥을 먹는다. 잠시 동안 밥 먹는 소리와 신문 넘기는 소리만이 들린다. 두 사람이 밥을 다 먹자 간호사가 밀대를 밀고 들어와 식판을 걷어간다. 아버지는 지훈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노인은 계속 신문을 뒤적인다. 잠시 후 차트를 손에 든 의사가 병실로 들어온다. 노인은 신문을 집어 던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노인 아휴, 선생님, 잘 오셨어요. 저요, 저 좀 봐주십시오. 자꾸만 숨이 차요. 자다가도 숨이 차서 깬단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네? 아무래도 폐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요. 혹시 심각한 병이면 어쩝니까? 수술이라도 해야 되면 어쩌냐구요. 그래도 할 거면 빨리 하는 게 낫겠죠? 자세히 좀 봐주세요.


의사 네네, 어디 좀 보죠.


의사는 노인의 가슴에 청진기를 댄다.


의사 깊이 숨을 들이 쉬세요. 내 쉬세요.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별 이상은 없는데요. 늘 그렇듯이요. 자아, 일단 좀 더 두고 보도록 하죠. 결국은 안좋아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의사는 무언가를 차트에 적는다. 그리고 지훈의 침대로 다가와 지훈의 눈꺼풀을 열어보고 입안도 들여다본다. 하지만 마치 기계를 살펴보듯 형식적인 동작일 뿐이다. 의사는 차트에 뭐라고 휘갈겨 쓴다.


의사 어떻게, 보호자분께서는 식사는 잘 하십니까?


아버지 네, 저야 잘 먹고 잘 잡니다.


의사 어제 복도에서 걷는 모습을 뵈니 허리가 좀 불편하신 것 같던데, 통증이 있는 건 아니구요?


아버지 아니에요. 잠을 잘못 자서 그랬을 겁니다. 말짱해요.


의사 아무래도 여긴 잠자리가 불편하죠?


아버지 아니, 아뇨.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런 뜻은 아니에요.


의사 불편하시겠죠. 병원이 호텔은 아니니까요.


아버지 제 말이 그겁니다. 병원이 호텔은 아니니까요.


의사는 볼펜으로 차트를 톡톡 두드린다.


의사 보호자 분 연세도 있으신데, 이거 참,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도 없고…….


아버지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의사 매 번 드리는 말씀이지만, 우리가 아드님께 해드리고 있는 건 치료가 아닙니다. 의료행위가 아니에요. 의사로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떤 의사도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어요.


아버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기적이라는 것도 있구요.


의사 (볼펜으로 차트를 톡톡 두드리며) 병원에서는 기적도 결국 확률의 문제에요. 여기 아드님의 검사 수치는 확률적으로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버지 사람의 의지는 수치로 나타낼 수가 없죠. 의지가 제일 중요해요.


의사 여기 아드님에게 의지가 있을까요?


아버지 제 의지가 있지 않습니까. 아들 몫까지 저한테 있어요.


노인 (혀를 차며) 의지가 아니라 고집이겠지.


의사 사실 저희 병원에서도 보통 곤란한 게 아닙니다. 장기기증센터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이 와요. 보호자분을 좀 설득해 달라구요.


아버지 그 사람들이야 말로 정말 고집불통이군요.


의사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장기 이식 수술만 받으면 살아날 수 있는 사람들이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두요.


아버지 그렇겠죠. 그런데 그게 무슨 새삼스러운 일인가요?


의사는 볼펜으로 차트를 톡톡 두드리며 권위적이고 냉담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본다. 아버지는 좌우로 고개를 흔든다. 의사는 입을 굳게 다물고 병실을 떠난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인이 자신의 건강에 대해 질문을 해대며 의사를 따라 나선다. 혼자 남은 아버지는 의자에 주저앉는다. 그 때 창문 밖에서 인물상들이 나타난다. 창문보다 훨씬 커서 얼굴의 일부만 보이거나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인물상1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죠.


아버지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어.


인물상2 모두 우리 편이었어요.


아버지 모두 우리 편이었어.


인물상3 (목소리를 어린애처럼 높이며 흉내 내듯이) 아드님은 꼭 일어 날거에요.


인물상1 (목소리를 어린애처럼 높이며 흉내 내듯이) 이럴 때일수록 아버님이 더 강해져야죠.


인물상2 (목소리를 어린애처럼 높이며 흉내 내듯이) 희망을 버리면 안돼요.


인물상3 (목소리를 어린애처럼 높이며 흉내 내듯이) 꿈은 이루어 져요.


아버지 모두들 얼마나 다정했는지. 얼마나 공정했는지.


인물상1,2,3 (킥킥거리며 웃는다.)


아버지 그런데 금세 얼굴을 싹 바꾸고서.


인물상1 (작은 목소리로) 배를 갈라요.


인물상2 (작은 목소리로) 저울에 달아요.


인물상3 (작은 목소리로) 근수를 매겨요.


아버지 식인종들, 사람을 먹어치우는 식인종들이야.


인물상1,2,3 (까르르 웃는다.) 


인물상들이 사라지고 노인이 투덜거리며 병실로 돌아온다.


노인 에이 참, 도대체가 의사라는 사람들은 환자한테 저렇게 무심하단 말이야. 식상하기 그지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니까. 내가 내 몸 만큼이나 뻔하다는 듯이 말이야. (아버지에게) 그런데 말이지, 난 솔직히 장기기증을 거절한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건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오장 육부가 다 갖춰져 있지 않으면 떠나는 저승길이 얼마나 헛헛하겠나. 거기다 자기 살덩이가 아직 살아있는 채로 뒤에 남아 있으니 뒷골이 당겨서 쉬이 떠나지 못하고 자꾸만 뒤를 돌아 볼 거란 말이야. 생각해 보라고. 제삿밥을 어디서 얻어먹어야 할 지 몰라서 이 집 저 집을 서성이면 어쩌나.


아버지 지훈이는 망자가 아니에요.


노인 그래, 그래.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아버지 지훈이는 안죽었어요. 안죽어요.


노인 거 참, 알았다니까. 알았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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