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손톱이 자란다 (5)

by 곡도




아버지는 수건으로 지훈의 몸을 닦아준 뒤 옷을 갈아입히고 이불을 덮어주고는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노인은 자신의 소소한 일에 매진하고, 성민은 침대로 돌아와 자리에 눕는다. 서로에게 관심도 대화도 없는 무심한 장면이 잠시 계속된다. 창밖에 해가 지고 무대가 어두워진다. 아버지가 지훈의 침대 머리맡에 있는 전등불을 켠다. 노인이 침대 속으로 들어가면서 잔기침을 한다. 아버지는 지훈의 침대 곁에 앉아 지훈의 손과 발에 로션을 발라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성민이 마스크를 끌어내리며 입을 연다.


성민 아저씨.


아버지 왜.


성민 아저씨는 형이 죽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 없어요?


아버지 뭐?


성민 차라리 사고가 났던 날 죽었거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죽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한 적 없어요?


아버지 없어.


성민 그래요?


아버지 그래.


성민 우리 부모님은 내가 죽기를 바래요.


아버지 부모님이 너한테 그렇게 말하디?


성민 아뇨. 하지만 난 알 수 있어요.


아버지 멍청한 소리.


성민 에이, 부모들에게 정말 그런 마음이 조금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가망이 없을 거면 차라리 빨리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


아버지 넌 부모의 마음을 몰라.


성민 (웃으며) 순진한 척 하지 마세요. 부모들은 하나같이 순진한 척 하죠. 하지만 이 세상에 부모의 마음 같은 건 없어요. 그저 각자 개인의 마음이 있을 뿐이죠. 뻔하디 뻔한 이기적인 마음.


아버지 우물 안 개구리라더니, 어렸을 때부터 병원 안에만 있다 보니 세상 모든 게 뻔한 것 같지? 다 만만해 보이니?


성민 병원이 우물 안이라구요? 아니에요. 오히려 세상이 우물 안이죠. 여기는 우물 밖이에요. 이 밖에서는 우물 속 모든 게 훤히 보여요. 유치함, 구질구질함, 편 가르기, 가증과 무감각. 하지만 저는 그 모든 게 부러워요. 저도 우물 안으로 뛰어들고 싶어요. 다른 개구리들과 뒤엉켜서 비가 오면 함께 합창하고 가뭄이 들면 서로 잡아먹으면서 그렇게 구차하게 살고 싶어요. 병원 내부의 이 적당한 온도, 적당한 습기, 적당한 식사.... 국적도, 사건도, 날짜도 없는 이 적당한 평화가 난 너무나 역겨워요. 구역질이 나요.


아버지 (로션을 바르는데 집중하느라 건성으로) 그래도 어쩌겠냐. 다 나을 때까지는 참아야지.


성민 그럼요. 참아야죠. 참고, 참고, 참고, 참고, 참고, 참고, 그리고 또 참고…….


지훈의 손에 로션을 다 바른 아버지는 손톱깎이를 꺼내 지훈의 손톱을 깎기 시작한다.


성민 손톱이 자라나 봐요?


아버지 당연하지. 산 사람인데.


성민 꼭 그렇지도 않아요. 죽은 사람도 손톱, 발톱, 머리카락이 계속해서 자란대요. 그런 얘기 모르세요? 몇 년 만에 무덤을 파봤더니 머리카락이랑 손톱이 길게 자라있었다는 얘기요.


아버지 (화를 참으며) 까불지 말고 그만 잠이나 자.


성민 잠이 안와요. (잠시 침묵)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까봐요.


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성민을 바라본다.


성민 거기 형처럼요. (잠시 침묵) 간호사들이 형에 대해서 하는 얘기 들었어요. 깨어날 가망이 없대요. 뇌 기능이 완전히 정지해서 그냥 기계로 겨우 숨만 붙어 있을 뿐이래요.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래요.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성민 그러니까 아저씨도 형이 깨어날 거라는 기대는 버리는 게 좋아요.


아버지 (버럭 큰 소리로) 깨어나? 누가 깨어날 거라던? 깨어나지 못한다는 걸 내가 모를 거 같아?


성민 (얼떨떨해 하며) 네? 그럼 아저씨는 형이 죽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러고 있는 거예요?


아버지 죽기는 누가 죽어? 깨어나지 못한다고 죽은 거냐?


성민 하지만 의사들이…….


아버지 의사들이 뭘 알아? 의사 놈들은 아무 것도 몰라. 의학적 죽음이니, 뇌의 작용이니, 엠알아이니 하는 것 밖에 모르는 멍텅구리들이야. 그놈들은 진짜 죽음이 뭔지 모르고 있어. 진짜 죽음이 뭐냐고? 그건 만질 수가 없는 거야. 볼 수도 없고, 씻길 수도 없고, 그래, 온기조차 없는 거야. 아무 것도 없는 거야. 그냥 없는 거야. 하지만 봐라. 여기 보라고. 지훈이는 여기 있잖아. 여기, 여기 이렇게 있잖아. 만질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고, 씻길 수도 있고, 이렇게 따듯한 온기가 있잖아. 그런데도 지훈이가 죽었다고? 개소리들 하고 있네.


성민 아저씨, 아저씨 아들은 여기 없어요.


아버지 있어.


성민 없어요.


아버지 있어.


노인 (이불을 걷어 재끼며) 에이, 거 참, 잠 좀 잡시다. 한밤중에 이게 뭔 소란이요. (아버지에게 혀를 차며) 내가 옆에서 다 들었는데, 저 애 말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지 뭐야. 거기 아들이 죽은 건지 산건지는 내 무식해서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병원비가 한 달에 수백만 원은 들어갈 긴데. 그게 다 돈으로 저승길 가려는 사람을 막고 있는 거요. 예전에는 노잣돈이 없어서 저승을 못가고 구천을 떠돌았는데, 이제는 노잣돈이 너무 많아서 구천을 헤매는 세상이 됐구만.


노인은 혀를 차며 다시 돌아누워 이불을 뒤집어쓴다. 아버지가 전등불을 끈다. 암전. 신호음과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성민 아저씨.


아버지 (침묵)


성민 난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할 거예요.


신호음과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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