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by 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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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감상을 올리기 전에 변명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워질 것이 뻔하니까. 영화에 대해, 그림에 대해, 공연에 대해 간단하게 감상을 쓰고 있지만 책에 대해서 만큼은 오랫동안 망설여 왔다. 자신이 없었다. 감상적이고 멍청한 얘기를 늘어놓거나 전혀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채 딴소리만 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한 편의 글이란, 무엇보다 한 권의 책으로서 완결되고 완성된 글이란, 그대로 완전하기 때문이다. 나는 각각의 책의 질적인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책 자체의 속성 혹은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권의 책은 모든 장점뿐만 아니라 모든 단점까지 포함해서 그냥 그대로 완전하다는 뜻이다. 만약 그 책에서 단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뺀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책이 되고 말 것이다.

문자로 새겨진 글이란 일종의 계약서와 같다. 문자의 결과물은 명확하고 또 엄중하다. 그에 비하면 영화나, 그림이나, 시는 일종의 힘-에너지에 가깝다. 스스로를 뛰어넘을 만큼 강렬한 힘으로 솟구쳐 오르는 원초적인 동력들, 그것은 떨어져내리면서 동심원을 만들어 주변에 파장을 일으키며 퍼져나간다. 평평한 세상을 출렁이게 한다. 그래서 그 세계에는 허공이 많고, 우리를 받아들이면서 필요로 하며, 놀기에 좋다. 그러나 글은 아무리 과격한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그 어떤 환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사실 내용이니 작가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본질적으로 야성이나 환상이 결핍되어 있는 빈틈없이 납작하고 평평한 세계이다. 아니, 세계가 아니다. 구구절절하고 지지부진한 나열이며, 기록이고, 지도이다. 우리는 영화나, 그림이나, 시와 대결하듯이 책과는 대결할 수가 없는데 실상 대결할 상대에게 결핍도 결함도 없기 때문이다. 그 빡빡하고 완전한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오직 겸손해져야 한다. 그리고는 중심과 변두리의 구별 없이, 내부와 외부의 구별 없이, 본질과 피상의 구별 없이, 문자 하나하나를 똑같이 평등하게 한발 한발 꼼꼼히 밟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때때로 이 세상에서 책을 읽는 것만큼 시시하고 소모적인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완전함을 견딜 능력도 의지도 부족한 나는 그 평평한 세상을 쥐어짜서 멋대로 지형을 만들고, 큰길과 작은 길을 내고, 중심과 변두리를 구분하고, 있지도 않은 소문을 퍼트리고, 하늘에는 구름까지 걸어놓으려 한다. 겸손한 신자가 되기보다는 교만한 천사가 되려고 하기 때문에 완전한 세계는 불완전한 창조로 인하여 붕괴하고 마는 것이다. 눈앞에 뻔히 정답이 있는데도 오답을 베껴 쓰는 우둔함. 나는 그것을 남들 앞에서 까발리기가 부끄럽다. 그러나 어쨌든 숨긴다고 해서 덜 부끄러운 것도 아니기에 나는 책에 대한 감상을 써보기로 한다. 이곳에 올리는 책들은 모두 내가 아끼는 책들이며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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