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 새끼가 돌았어? 저리 꺼지지 못해?
성민 죄송해요. 저는... 단지…….
아버지가 한 번 더 뺨을 날린다. 성민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다.
아버지 저리 꺼져. 그 딴 소리 한 번만 더 지껄이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헛소리 하지 말고 너나 죽으면서 많이 나눠주란 말이야. 우리 지훈이는 너보다 더 오래 살 거니까.
성민은 얼이 빠져서 자신의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는다.
아버지 망할 놈의 새끼.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어린 게 독한 약을 너무 많이 먹더니 돌아버린 모양이야. (바닥에 침을 뱉는다.)
노인 거 참, 이게 무슨 일인지. 얘야. 마음을 좀 가라앉혀라. 사정은 딱하다만 빌어서 되는 일이 아니란 말이야.
아버지는 지훈을 씻기기 위해 이불을 걷어내고 바지를 벗긴다. 지훈은 기저귀 차림이 된다. 그 때 성민이 침대 옆에서 과도를 꺼내든다.
노인 아니, 너, 저거, 저거…….
아버지가 뒤를 돌아본다. 무대 중앙에 성민이 과도를 들고 지훈을 노려보며 서 있다. 노인이 무대 밖으로 뛰어나가며 소리 지른다.
노인 어이, 이거 봐. 여기, 여기 큰일 났어. 사람이 죽게 생겼다고. 빨리 와봐. 빨리.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와 수많은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벽에 창문이 사라지고 인물상들이 나타난다. 인물상들에게도 눈이 내린다.
인물상1 사람들이 온다.
인물상2 지훈이를 도우러 오는 걸까?
인물상3 성민이를 도우러 오는 걸까?
아버지 다들 한 통속인가?
인물상1 쉿, 모두 손에 칼 하나씩을 들고 있을지도 몰라.
인물상2 지훈이에게 달려들지도 몰라.
인물상3 모조리 뺏어갈지도 몰라.
인물상1 눈알
인물상2 신장
인물상3 췌장
인물상1 간장
인물상2 폐
인물상3 골수
성민 심장은 내꺼야.
인물상1 공평해.
인물상2 공평해.
인물상3 공평해.
성민 공평해.
성민이 펄쩍 뛰어올라 지훈에게 달려든다. 아버지가 칼을 든 성민의 손을 간신히 붙잡는다. 두 사람은 지훈의 몸 위에서 서로의 팔과 팔목을 붙들고 실랑이를 한다. 칼끝이 지훈의 얼굴 바로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춤을 춘다. 칼끝에는 소형 카메라가 설치돼 있어서 지훈의 얼굴이 생방송으로 무대 전체에 나타난다. 칼이 엎치락뒤치락 함에 따라 영상도 어지럽게 움직인다. 아버지와 성민의 싸움은 점점 더 과격해지지만 지훈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지훈의 신체는 온전한 구속력을 잃었고 철저하게 무심하다. 실랑이 끝에 아버지가 성민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깔고 앉아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무대가 어두워지면서 하얀 눈 그림자가 무대 전체에 떨어져 내린다. 성민과 아버지는 마치 눈밭에 단 둘이 있는 듯하다. 어두운 벽에서 희미하게 세 인물상들이 고개를 모으고 숨을 죽인 채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윽고 발버둥 치던 성민이 축 늘어진다. 그 때 노인과 의사, 간호사가 무대로 달려 들어온다. 동시에 무대가 밝아지면서 인물상들이 흩어진다. 벽에는 다시 눈이 내리는 창밖 풍경이 나타난다. 무대에 드리워졌던 눈 그림자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노인과 의사, 간호사가 성민을 아버지에게서 끌어내자 죽은 듯이 보였던 성민이 기침을 하면서 깨어난다. 의사와 간호사, 노인이 성민을 데리고 병실을 빠져나가고, 아버지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무대가 어두워지고 잠시 동안 눈이 내리는 창밖 풍경만이 보인다. 암전. 신호음과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잠시 후 천천히 날이 밝아온다. 창밖은 화창한 봄날 아침이다. 햇빛 속에서 하얀 꽃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아버지는 간이침대에서 일어나 평소처럼 지훈을 보살핀다.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히고 이불을 덮어주고 나자 노인이 침대에서 일어난다.
노인 에이, 매일 아침 댓바람부터 이렇게 부산스럽게 구니, 거, 아들내미도 이제는 귀찮아서 벌떡 일어나겠네. 멀쩡할 때도 저렇게 깨끗하게 씻지는 않았을 거야.
아버지는 말없이 웃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노인도 다가와 창밖을 본다.
노인 아이고, 날씨 한 번 좋네.
아버지 네.
노인 이제 완연한 봄이구만. 시간 참 빨라.
아버지 네, 그러네요.
노인 뭐, 여기 아드님에게는 매일매일이 같은 날일 테지만 말이야.
아버지 누구한테는 안 그런가요.
노인 그나저나 지난겨울에 다른 병원으로 쫓겨났던 그 아이 말이야, 이름이 뭐였더라?
아버지 성민이요?
노인 맞아. 성민이. 그 애는 지금쯤 어찌 됐나 모르겠네.
아버지 글쎄요.
노인 아마 겨울을 넘기지 못했겠지? 거의 반송장이 다 돼서 실려 나갔으니. (혀를 찬다.) 저승길이 멀다더니 오늘 문 밖이 바로 저승이라고, 갈 사람은 바쁘게 가는 법이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