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자자, 좋습니다. 이제 그만들 하시죠. 하다 보면 정말이지 끝이 없거든요.
모두들 박수를 멈춘다.
강사 사람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자살하고 있으니까요. 그 사실에 한 번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도무지 생각이 멈추질 않아요.
모두들 눈동자를 굴리며 허공을 둘러본다.
강사 아,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오해가 있으면 안 되니까요. 아시다시피, 4초마다 한 명씩 자살한다는 건 평균값일 뿐이에요. 실제로는 4초마다 한명씩 따박따박 죽지 않지요. 평균이란 언제나 정교하고 편리하지만 모든 걸 기하학으로 만들어 버려요.
인물들 기하학이라구요?
강사 왜 그러시죠?
인물 기-하-학-
인물 기하학은 무자비해요.
인물 기하학은 오만하죠.
인물 기하학은 천박해.
인물 기하학은 인격이 없어요.
인물 기하학은 죽은 자들의 법칙이에요.
인물 기하학은 생명의 심연이죠.
인물들 기하학. 망할 놈의 기하학.
강사 아아, 여러분. 진정하세요. 여러분에게 기하학에 대한 증오가 이렇게 클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하지만 사실 기하학은 위대합니다. 반미학의 미학이에요. 무취향의 취향이고, 몰이해의 이해지요. 소실점에서 시작해서 소실점으로 끝나는 우주입니다. 살아있지 않은 생명이고, 죽어있지 않은 죽음이에요. 숫자로 올리는 기도지요.
인물 누구에게요?
강사 (웃으며) 언제부터 기도에 상대가 있었습니까?
인물들 기하학. 망할 놈의 기하학.
강사 아아, 알겠습니다. 그래요. 저도 이해합니다. 맞아요. 기하학이 삶을 오염시키고 있어요. 혹자는 삶이 기하학을 오염시켰다고 합니다만, 어쨌든 중요한 건 무언가 오염되었다는 거죠.
인물들 망할 놈의.
인물들이 발을 쾅쾅 구른다.
강사 그래요, 좋아요. 좋다구요. 진정들 하세요. (오른손을 높이 들며) 그렇다면 우린 바로 이 자리에서 기하학에 반대하도록 합시다. 저도 이 수업을 기하학적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거든요. 오히려 예술적으로 만들고 싶지요.
인물들 예술적.
강사 기하학이 삶을 오염시키고 삶이 기하학을 오염시킬 때, 예술이야말로 그 진창에서 피어난 꽃이 아니겠어요? 바로 우리 자신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강사가 과장된 포즈를 해 보인다.
강사 여러분, 자살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예술적입니다. 제가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일, 이, 삼, 사(박수). 다시 이걸로 돌아가 봅시다. 아까도 말했듯이 사람들은 4초마다 한 명씩 딱딱 시간을 맞춰서 자살하지 않아요. 1초에 5-6명씩 동시에 자살하기도 하고, 8초, 9초가 되도록 한 명도 자살하지 않기도 하죠. 그러니까 일, 이, 삼, 사(박수).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실은 (박수)(박수)(박수)(박수) -- (박수)(박수) --- (박수)(박수)(박수) -- (박수)(박수) --- (박수) - (박수)(박수)(박수) --- (박수) 이렇게 리듬이 있단 말입니다. 보세요. 벌써 흥이 나죠? 그럼 여기서 한 단계 좀 더 나가보도록 하죠. 목매달아 죽은 자살자를 ‘도’라고 해봅시다. 음독자살자는 ‘레’라고 하고, 익사자살자는 ‘미’, 가스 자살자는 ‘파’, 분신자살자는 ‘솔’, 손목을 그은 자살자는 ‘라’,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자살자는 ‘시’, 수면제를 과다 복용한 자살자는 ‘높은 도’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럼 바로 멜로디가 되는 거예요. 거기에 아까의 리듬을 합쳐봅시다. 미솔솔도 -- 미파 --- 미파라 -- 레레 --- 시 - 라미시 --- (높은)도……. 자아, 귀를 기울여 보세요. 전 세계에서 음악이 울려 퍼집니다. 이제 우리는 한편의 거대한 오케스트라 교향곡을 듣게 될 겁니다.
정적 속에서 강사는 두 손으로 대담하고 열정적으로 지휘를 한다. 인물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춘다.
강사 (손을 높이 들고 헐떡이며) 우린 이 자리에서 선언합니다. 자살은 예술적이라구요.
인물들 (손을 높이 들고 헐떡이며) 그래요. 자살은 예술적이에요.
강사 훌륭합니다. 훌륭한 학생들이에요. 이해력이 아주 빠르네요. 좋습니다. 예감이 아주 좋아요.
자명종 시계가 울린다. 강사가 자명종 시계를 끈다.
강사 자아, 그럼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해 볼까요? 우선 자살에 대한 이론부터 공부해 봅시다.
인물들 (신음소리)
강사 저런, 물론 여러분이 이론 수업을 싫어한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학생들의 공통점이죠. 하지만 이론은 중요해요. 이론이 수준을 결정해 주니까요.
인문들 수준이라구요?
강사 아, 요즘은 ‘수준’이라는 말이 금지되어 있지만, 난 피하지 않겠습니다.
인물 자살에서 수준이란 게 대체 뭐죠?
강사 좋은 질문입니다. 질문은 언제나 좋은 거죠. 그럼 다시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자살에 있어서 수준이란 게 뭘까요?
인물 품위인가요.
강사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인물 계획인가요.
강사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요.
인물 자존심이 아닐까요?
강사 중요한 얘기죠.
인물 책임감일 것 같아요.
강사 넓게 보면 그렇습니다.
인물 담대함인가요?
강사 거의 다 왔습니다.
인물 알겠어요. 자신감이군요.
강사 비슷해요. 비슷합니다. 여러분의 답을 모두 합치면 정답이 나옵니다. 정답은 바로 ‘확신’ 이에요.
인물들 확신.
강사 확신이 바로 자살의 수준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확신이 있어야 해요.
인물 그건 좀 이상하네요.
인물 우린 이미 확신이 있는데요.
인물 이미 결정은 끝났어요.
인물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인물 전 아무 것도 겁나지 않아요.
인물 모든 게 선명해요.
강사 아아, 그럼요. 물론 그러시겠죠. 전 여러분을 믿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요. 자, 자살한 사람들 모두에게 정말 확신이 있었을까요?
인물 그럼요.
인물 확신 없이 어떻게 자살했겠어요?
인물 자살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잖아요?
강사 여러분, 자살은 아무 것도 증명하지 않아요.
인물들 (놀라며) 아무 것도?
강사 아무것도요.
인물 우리의 고통도?
인물 우리의 실망도?
인물 우리의 슬픔도?
인물 우리의 외로움도?
인물 우리의 부재도?
강사가 크게 고개를 젓는다. 자명종 시계가 울린다. 강사가 자명종 시계를 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