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휴우, 여러분. 이제 겨우 한 사람의 실습이 끝났습니다. 첫 번째 학생이라 그런지 좀 지지부진 했어요. 제가 사과드리죠. 말이 어찌나 많은지, 유서가 아니라 장황한 대사 같더군요. 만약 여기에 구경하는 관객들이라도 있었다면 하품을 해댔을 겁니다. 자, 여러분은 좀 더 힘을 내보도록 하세요.
인물4가 앞으로 나온다.
인물4 그럼 다음은 제가 할게요. 전 별로 할 말이 없거든요. 시간낭비 같은 건 없을 거예요.
강사 (과장된 행동으로) 내 인생은 후회로 가득해요. 또 이렇게 눈물 콧물 짜진 않겠죠?
인물4 후회. 그건 오히려 부드러운 감정이에요. 눈에 눈물이 돈다는 건 가슴에 피가 돈다는 거예요. 가슴에 피가 돈다는 건 몸에 온기가 돈다는 거구요. 하지만 난 모든 게 마비되었어요. 내 입술과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요.
강사 좋습니다. 좋아요. 기대가 됩니다. 시작하세요.
강사는 인물4와 정식으로 악수를 한 후 인물4의 의자에 앉는다. 인물4는 관객들에게 인사하고는 관객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말한다.
인물4 난 2년 전에 결혼했어요.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요. 여자로서 행복하다는 게 어떤 건지 그제야 알았어요.
강사 늦었지만 결혼을 축하합니다. 행복했던 것도 축하하구요. 그런데 이게 유서라는 걸 잊지 마세요. 누구에게 남기는 유언이죠?
인물4 글쎄요. 모르겠어요. 혼잣말이라고 해도 좋아요. 세상에 대고 하는 말이라고 해도 좋고, 여기 계신 여러분께 하는 말이라고 해도 좋아요. 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해도 좋구요.
인물2 신이라구요?
인물1 어렸을 때 이후로는 그치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인물2 흑백텔레비전에나 나오던 인물 아닌가요?
인물1 소문에 의하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데요. 공황장애라나.
인물2 이미 자살했다던데요?
강사 아아, 여기서 신은 빼도록 하죠. 분위기가 확 구려지니까. 당신에게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잖아요. 남편에게 유서를 쓰세요.
인물4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요.
강사 알겠습니다. 정 상대가 마땅치 않으면 우리한테 하는 말이라고 합시다. 그게 혼잣말이기도 하고, 또 세상에 대고 하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계속하세요.
인물4 난 행복했어요.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아무 문제가 없었죠. 그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요.
인물2 그 사람이 누구죠?
인물1 남편이 바람을 피웠나요?
인물2 당신이 바람을 피웠어요?
인물4 아이를 말하는 거예요. 난 1년 전에 아이를 낳았어요.
인물들 (축하하며) 아유, 세상에.
인물4 아이는 반년 전에 죽었어요.
인물들 (위로하며) 아유, 세상에.
강사 대체 자살하는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사연들이 구구절절 한거야? 사연들이 이 사람들을 찾아다니나? 아니면 이 사람들이 사연들을 찾아다니나?
인물들 쉬잇.
인물4 아이는 머리를 다쳤어요. 침대에서 떨어졌어요.
인물들 저런 저런, 불쌍해라.
강사 아주 울어라, 울어라, 주문을 외우는구만. 그래서 아이를 따라 죽겠다고 결심이라도 했다는 겁니까?
인물4 그럴 리가요. 아이를 죽인 게 난데요.
인물들은 할 말을 잃는다.
강사 (활력을 띄며) 그래요?
인물4 모두들 사고로 알고 있지만, 실은 내가 아이를 집어 던졌어요. 두 다리를 잡아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쳤어요. 계속 울길래, 듣기 싫어서요. 달래려고 했지만, 아이는 계속 울었어요. 멈추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집어 던졌어요.
인물2 아이는 원래 울어요.
인물4 그래서 집어 던졌어요.
인물1 울지 않는 아이는 없어요.
인물4 그래서 집어 던졌어요.
인물2 벙어리 아이를 원했나?
인물4 아마 그랬다면 더 좋았을 거예요.
인물1 원하지 않았던 아이였어요?
인물4 아니오. 난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난 분명 좋은 엄마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어요, 내가 좋은 엄마가 될 거라구요. 난 좋은 사람이고 아이들을 좋아하니까요. 좋은 엄마가 되는 건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어요. ‘엄마’라는 건 결국 ‘좋은 엄마’라는 뜻이 아닌가요?
강사 뭐, 그렇게 치면 ‘자살’도 결국 ‘좋은 자살’이라는 뜻일 겁니다.
인물4 아이가 수태되던 순간, 남편과 나는 섹스를 하고 있었어요.
인물들 아, 당연히 그러셨겠죠.
인물4 우리는 후배위를 하다가 마지막에 정상체위에서 사정했어요. 우리는 그 순간 더러운 말들을 했어요. 우리는 낄낄거렸어요. 우리는 헐떡거렸어요. 우리는 교성을 질렀어요. 아, 아, 아, 아, 아아-.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난 아이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강사 창조주들이란 늘 그렇죠.
인물4 보지에 자지가 들어가요. 자지가 앞뒤로 움직여요. 한 번 빠져서 다시 집어넣어요. 앞뒤로 움직이다가 자지가 부풀어 올라요. 보지도 부풀어 올라요. 정액이 질질 새기 시작하다가 안쪽으로 뿜어져 나와요. 정자가 난자에 수정 되요. 세포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해요. 난자가 자궁에 착상돼요. 이게 아이가 돼요. 그렇게 난 엄마가 되었어요.
강사 이게 자살 수업이 아니라 성교육 수업이었나요?
인물4 난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아이에 대한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어요. (배를 움켜쥐며) 바로 여기, 내 몸속에서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새로운 생명이, 새로운 인간이, 새로운 주장과 관점이 탄생하고 있었는데, 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별안간 의사가 임신 10주라고 말했을 때, 나는 이 모든 게 음모라고 생각했어요.
인물들 음모? 누구의 음모요?
인물4 내 자신의 음모요. 나와는 상관없이 작동하는 내 몸의 주체성. 나를 소외시키는 내 몸의 독립성.
인물1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요.
강사 자자, 다른 사연들은 잠자코 자기 차례를 기다리세요.
인물4는 걸치고 있던 겉옷을 벗어 자신의 원피스 치마 뱃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녀는 임신부 같은 모습이 된다.
인물4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어요.
강사 멋져요, 멋져. 모두 훌륭한 배우들이라니까.
인물4 (배를 감싸며) 하지만 이건 이미 내 배가 아니었어요. 난 그렇게 느꼈어요. 이건 내가 아니라 이 아이를 위해 여기에 있었어요. 내게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말이에요.
강사 아이에게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 적도 없었죠.
인물4 하지만 난 참으려고 했어요. 그러려니 했어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는 점차 내 몸 전체를, 내 존재 자체를 차지하기 시작했어요. 뻔뻔하게 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어요. 나를 셋방으로 내쫓고 안방에서 주인행세를 했어요.
인물2 닭과 달걀의 전쟁이군요.
인물4 나는 내가 오직 하나의 자궁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걸요. 대체 언제부터 그랬던 걸까요? 아이가 내 뱃속에 수정되었을 때부터? 내가 남편과 결혼했을 때부터? 내가 첫 생리를 시작했을 때부터?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내가 우리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아니면 더 오래 전부터?
인물1 달걀이 먼저에요, 닭이 먼저에요?
인물4 모든 게 낯설어 졌어요. 난 내 몸을 다른 사람의 몸을 보듯이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별안간 팔다리가 각각 두개씩이라는 게, 손가락이 10개라는 게, 코가 한 개라는 게, 배에 배꼽이 붙어 있다는 게, 성기가 이런 모양이라는 게 너무나 이상하게 생각됐어요. (양팔과 양다리를 벌리고 자신을 앞으로 드러내며) 이건 누가 정한 거죠? 왜 이런 모습인거죠? 왜 이런 역할에, 이런 기능인거죠? 염색체와 유전자와 DNA와 염기서열의 조합으로 이 모든 걸 설명해야 하나요?
인물들 기하학. 망할 놈의 기하학.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