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진 일상의 얕은 표면 위를
매일 미끄러져 내려간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동안
그 표면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내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당신의 눈빛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 그런데
바위처럼 돌아앉아 꿈쩍도 않던 당신이
실은 나처럼 미끄러져 내리고 있다는 것이
잠시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이
그저 열심히 버둥거리고 있다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
미안해.
나도 미끄러지고 있는 중이어서
어리둥절하고 또 비겁해서
그리고 이미 좀 지쳐있어서
당신도 나처럼 당황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어.
이상하지.
왜 삶은 우리를 이토록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지.
왜 우리는 서로가 이토록 낯설기만 한지.
이 깊이 없는 평면의 기울어진 일상 위에서
매일 그리고 또 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