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by 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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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2005)




경사진 일상의 얕은 표면 위를


매일 미끄러져 내려간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동안


그 표면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내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당신의 눈빛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 그런데


바위처럼 돌아앉아 꿈쩍도 않던 당신이


실은 나처럼 미끄러져 내리고 있다는 것이


잠시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이


그저 열심히 버둥거리고 있다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


미안해.


나도 미끄러지고 있는 중이어서


어리둥절하고 또 비겁해서


그리고 이미 좀 지쳐있어서


당신도 나처럼 당황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어.


이상하지.


왜 삶은 우리를 이토록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지.


왜 우리는 서로가 이토록 낯설기만 한지.


이 깊이 없는 평면의 기울어진 일상 위에서


매일 그리고 또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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