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2와 늑대3이 잠시 멍하니 있다가 박장대소한다.
늑대3 아, 이런 이런, 미안해. 하지만 정말이지 이렇게 우스운 얘기는 처음이라.
늑대2 이렇게 대단한 얘기도 처음이고 말이야.
늑대3 물론 인간들을 흉내 낸 거겠지.
늑대2 인간들의 자의식 과잉이 병적이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니까.
늑대3 이 병에는 약도 없다던데.
늑대2 불치병이래.
늑대2/늑대3 (웃는다.)
늑대 난, 난 그저 각각의 이름에는 엄중한 무게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뿐이야.
늑대2 네 말대로 각각의 이름에는 엄중한 무게가 있어. 그런데 그 무거운 걸 목에 걸고 다니겠다고? 평생 동안?
늑대3 목이 부러지거나 결국 네 숨통을 조이고 말걸?
늑대 상관없어. 목이 부러지고 숨통이 조이는 한이 있어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나는 그 사람을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할 거야.
늑대2 그럼 우리가 이름을 지어줄게.
늑대3 그래, 우리가 하면 되잖아.
늑대 너희가?
늑대2 우리도 이름을 지을 수 있어.
늑대3 맞아.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늑대 좋아. 그럼 한 번 해 봐. 늑대라는 이름 말고, 나만의 이름말이야.
늑대2 (한참 동안 눈동자를 굴리다가) 그래, 그러니까. 음, 글쎄, 그게, 아, 그래, 늑대2, 늑대2가 어때? 참 좋은 이름이잖아?
늑대3 에이, 그게 뭐야. 그것보다는, 으음, 그게, 늑대3, 늑대3이 더 낫지.
늑대 (한숨을 쉬며) 말했잖아. 이름은 오직 인간만이 지어줄 수 있다고. 그러니까 부탁이야. 제발 길을 비켜줘. 난 인간들에게 가겠어. 가서 인간들의 개가 되겠어. 인간들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 난 기쁘게 꼬리를 치며 그들의 품으로 달려가 그들의 턱을 공손하게 핥을 거야.
늑대2와 늑대3이 서로 귓속말을 속삭이며 무언가를 의논한다. 잠시 후 둘은 고개를 끄덕인다.
늑대2 너는 네 말이 옳다고 생각하겠지. 아주 그럴듯하다고 말이야. 하지만 네가 하는 말들은 다 네 머릿속에서 조합한 상상일 뿐이야. 만들어낸 의미이고, 바램이고, 이상이지. 하지만 현실은 아무 의미도 없고, 바램대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이상적인 건 더더욱 아니야.
늑대3 인간들의 현실도 우리들의 현실만큼이나 단순하고 둔감해. 네 말대로 늑대의 삶이 미개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인간들의 삶에도 그 나름의 인간적인 미개함이 있어.
늑대 쳇, 너희가 인간들의 현실에 대해서 뭘 알아? 인간을 제대로 본 적도 없으면서.
늑대2 우리도, 알만큼은 알아. 어쩌면 너보다 더 잘 알지.
늑대 나보다 더 잘 안다고? 아니, 어떻게?
늑대3 에, 왜냐하면 말이지…….
늑대2 그래, 저기,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실은…….
늑대 대체 뭔데?
늑대2 우리가, 인간들이 사는 곳에 내려간 적이 있어.
늑대 뭐라고?
늑대3 한 번 뿐이야. 딱 한 번.
늑대 어째서?
늑대2 그거야, 뭐 그냥, 거, 인간들은 어찌 사나 궁금하기도 하고…….
늑대3 그저, 심심하기도 하고, 그래서, 한 번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늑대 궁금해서? 심심해서라고?
늑대2 (한숨) 실은 먹을 걸 구하러 간 거야.
늑대 인간을 잡아먹으러 갔단 말이야?
늑대2 아니.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잖아.
늑대3 1대1로 붙는다면야 인간이 우리의 상대가 되진 않겠지만, 인간들은 비겁하게도 무기를 사용하거든.
늑대2 맞아. 불, 칼, 도끼, 창, 화살, 그리고…….
어디선가 총소리가 울리며 메아리친다. 늑대들은 허리를 굽히고 사방을 살핀다.
늑대2/늑대3 (으르렁 거린다.)
늑대3 저 망할 놈의 총.
늑대2 총은 도무지 당해낼 수가 없어.
늑대3 총만 아니었다면 인간들을 가만두지 않았을 텐데.
늑대2 아침저녁으로 한 마리씩 먹고 어린애들은 그 사이에 간식으로 먹었을 거야.
늑대3 그런데 오히려 우리 털가죽을 벗기겠다고 달려드는 인간들에게 쫓기는 신세라니.
늑대2 인간들은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생명을 죽이는 법을 알아냈어.
늑대3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살육에 대한 불편함과 고단함 따위는 겪지 않아도 되지.
늑대 그래, 정말 대단하지?
늑대2 (으르렁거리며) 천만해. 생명을 죽일 때는 죄의식을 느껴야 마땅해. 정신의 나약함에서 오는 죄의식 따위가 아니라 자랑스럽게 몸에 새겨지는 죄의식 말이야.
늑대3 가까이에서 눈을 맞추고, 비명 소리를 듣고, 온 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근육과 근육이 뒤엉킬 때에야 비로소 누군가를 죽일 자격이 있는 거야.
늑대2 처음 사냥한 토끼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어린 늑대들은 피로 주둥이를 흠뻑 적시면서 그것을 배우지. 뜨거운 피에 섞여 있는 독한 죄의식의 맛.
늑대3 그게 고기를 더 맛있게 해.
늑대2 그거야 말로 진짜 고기 맛이지.
늑대 고리타분한 감상주의는 집어 치워. 불필요한 폭력의 충돌을 왜 감수해야 하지? 안전하고 효율적인데다가 위생적인 방법을 왜 마다해야 해? 너희는 능력의 부족을 소신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어. 우리는 인간들이 우리보다 더 우월하다는 걸 인정해야만 돼. 그들은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다는 걸 말이야.
늑대2 진보? 헛소리. 총은 인간들의 열등함을 상징할 뿐이야. 인간들은 자신들이 사물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사물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거야. 주도권을 빼앗겼단 말이야. 그들은 총을 쏘고 있는 게 아니라 총이 되고, 차를 타고 있는 게 아니라 차가 되고,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니라 옷이 되지. 인간들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어. 이제 그들은 거의 사물만큼이나 무감각해.
늑대3 이제 인간들은 총을 쏠 필요가 없을 때조차 그저 자신의 전능함을 자위하기 위해 총을 쏘지. 동물을 향해, 사람을 향해, 사람들을 향해, 심지어 자신들의 가족을 향해서. (총 쏘는 시늉을 하며) 역시 너무나 간단한 일이거든. 총 앞에서는 누구나 그저 표적일 뿐이니까.
늑대2 (손가락을 총 모양으로 만들어서 총구멍을 정면에서 들여다보는 시늉을 하며) 인간들은 자신의 머리를 향해서도 총을 쏴. (눈앞에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자신의 전능함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말이야.
늑대3 그리고는 이걸로 모든 게 공평해졌다고 생각하지.
늑대2/늑대3 (소리 높여 짖는다.)
늑대 딴 소리는 그만 하고 어서 하던 얘기나 계속해 봐. 인간의 마을에는 왜 간 거야?
늑대2 아, 그게, 먹을 걸, 구하기 위해서라니까.
늑대 그러니까 인간의 마을에서 대체 어떻게 먹을 걸 구한다는 거야. 인간들 앞에서 꼬리라도 친다는 거야?
늑대3 말도 안 돼. 늑대인 우리가 그런 추잡한 짓을 했을 것 같아?
늑대 그럼 인간들에게서 음식을 훔치기라도 했어?
늑대2 말도 안 돼. 늑대인 우리가 그런 추잡한 짓을 했을 것 같아?
늑대 그럼 어떻게 먹을 걸 구하지?
늑대3 (머뭇거리며 작은 소리로 웅얼거린다.)
늑대 뭐라고? 잘 안 들려.
늑대2 (작은 소리로 짖는다.)
늑대 (놀라며) 뭐어? 인간들의 쓰레기장을 뒤졌다고?
늑대2 어쩔 수 없었어. 배가 너무 고팠거든. 춥고 혹독한 겨울이 며칠이고 계속되는데 사냥을 나가도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어. 심지어 그 흔한 두더지들도 찾을 수가 없더라고. 사흘을 꼬박 굶고 나니 무슨 수라도 써야만 했어.
늑대 아니, 하지만, 인간들의 쓰레기장을 뒤져서 버린 음식을 주워 먹는 게 인간들에게 직접 음식을 받아먹거나 그들의 음식을 훔치는 것보다 덜 수치스러운 일이야?
늑대3 물론이지. 우린 최소한 구걸이나 도둑질은 하지 않았으니까. 늑대가 그럴 순 없지. 우린 그저, 그러니까 그저, 에…….
늑대2 재활용 했을 뿐이야.
늑대3 맞아. 재활용. 그건, 그러니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자연은 언제나 자신이 필요 없는 것들을 서로서로 교환해서 재활용하며 살아가니까. 그러니까, 거기엔 부끄러울 건 아무 것도…….
늑대 아, 그래. 좋아, 좋아. 그렇다 치자. 인간이 먹다 버린 쓰레기를 뒤지는 게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재활용이라는 꽤나 선진적인 환경운동의 일환이라고 치잔 말이야.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늑대2 우리는 한밤중에 산 아래로 내려갔어.
늑대3 다른 늑대들 몰래.
늑대2 인간들 몰래.
늑대3 지독히도 추운 밤이었지.
늑대2 지독히도 어두운 밤이었어.
늑대3 숲을 빠져나와 한참을 달려갔을 때 눈앞에 쓰레기장이 펼쳐졌어.
늑대2 하하, 쓰레기로 가득한 곳.
늑대2와 늑대3은 무대를 돌아다니며 무대 위의 물건들을 뒤진다.
늑대3 인간들의 쓰레기장이 얼마나 넓은지 넌 상상도 못할 거야.
늑대2 마치 거대한 사막 같더라니까. 모래 대신에 알록달록한 비닐봉투들이 가득한 사막.
늑대3 그건 일면 근사하기도 했어. 그렇지?
늑대2 장관이었지.
늑대3 화려하고 다채로웠어.
늑대2 특히 그 냄새들이.
늑대3 비닐봉투 하나하나가 다 보물 상자 같았어. 열기 전에는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보물 상자 말이야.
늑대2와 늑대3은 바닥에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주워들었다가 던져버린다.
늑대2 우리는 그 비닐봉투들을 하나씩 열어보면서 꽤나 재미를 보았지.
늑대3 맞아. 봉투 안에는 별의별 음식 찌꺼기들이 잔뜩 들어있었어.
늑대2 아, 그런 맛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그런 맛.
늑대2와 늑대3이 입맛을 다신다.
늑대 너희들은 마치 나 만큼이나 인간들을 동경하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늑대3 (으르렁거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는 그저 인간들의 입맛에 대해 고찰하고 있을 뿐이야.
늑대2 일종의 학구적인 관심이지.
늑대3 일종의 감각적인 탐구이고.
늑대2 그건 자연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맛이었어. 있는 힘껏 따귀를 때려서 정신 못 차리게 하고는 막무가내로 멱살을 잡아끄는 맛 말이야.
늑대3 인간의 음식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만든 게 아니야. 혀끝을 만족시키려고 만든 거지. 그러니 배가 불러도 계속 쑤셔 넣게 되지.
늑대2와 늑대3이 다시 입맛을 다신다.
늑대2 하지만 우리는 배가 터지도록 먹지는 않았어.
늑대3 그럼 그럼. 그런 노골적이고 뻔한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지.
늑대2 뭐, 지금도 가끔 그 맛이 그립기는 하지만…….
늑대3 쳇, 어쩔 수 없어. 한 번 그 맛을 보게 되면 영영 혀가 망가져버리고 마니까. 그 맛을 모르기 전으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가 없단 말이야.
늑대2 에, 특히 그 사발처럼 생긴 플라스틱 그릇에 꼬불꼬불한 면하고 매콤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있었는데, 그게 이름이 뭘까.
관객석에서 누군가 ‘라면’이라고 말한다.
늑대3 (관객들을 바라보며) 어, 두더지들이 이상한 소리를 내는데?
늑대2 배가 고픈 모양이야. 무언가 그들의 허기를 엄청나게 자극했나봐.
늑대3 뭐 여하튼, 그건 정말이지 뭐라 말할 수 없이 강력한 맛이었어. 직접 먹어보기 전에는 짐작조차 못할 거야. 첫맛은 혀를 마비시키는가 싶더니 곧바로 혀뿌리가 요동을 치지.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면발을 빨아올리고 있는 거야. (후루룩 소리를 낸다.)
늑대 하지만, 우리는 육식 동물인데.
늑대2 아아, 상관없어. 독수리, 뱀, 토끼, 호랑이, 여우, 다람쥐, 소, 박쥐, 상어, 두더지, 어떤 동물이든 그걸 먹으면 누구나 개가 되고 싶어질 거야. 심지어는 인간들 자신들도 그러니까.
늑대3 인간의 음식에는 어떤 사악함이 있어. 만족도 양보도 모르는 과격함. 특히 단맛과 짠맛이 그렇지.
늑대2/늑대3 천박해. (입맛을 다신다)
늑대 (한숨) 너희들, 이야기가 또 다른 곳으로 새고 있어.
늑대2 알았어, 알았어. 계속하지. 에, 그러니까, 웬만큼 배를 채운 우리는 서둘러 쓰레기장을 빠져나가려고 했어. 다시 산으로 돌아가려고 했지.
늑대2와 늑대3이 무대를 빙빙 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