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2 그런데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어. 아무리 달리고 또 달려도 계속 쓰레기만 이어지는 거야. 쓰레기의 산과 쓰레기의 골짜기와 쓰레기의 호수들. 대체 인간들은 어떻게 그 많은 쓰레기들을 만들어내는 거지?
늑대3 그들은 뭐든지 만들어 내는 데 선수들이니까. 쓸모 있는 걸 하나 만들어내면 쓸모없는 걸 세 개 더 만들어 내지. (짖는다.)
늑대2 우리는 그 넓디넓은 쓰레기장을 밤이 새도록 헤매고 다녔어. 지쳐서 그만 쓰러질 지경이었지. 그러다가 해가 뜰 무렵에야 어떤 농장을 발견할 수 있었어. 우리는 그 농장 안으로 숨어 들어갔어. 좀 쉬었다가 기회를 봐서 탈출하려고 말이야.
늑대3 그 작은 농장은 지극히 소박하고 평범해 보였어.
늑대2 푸르스름한 새벽빛 속에서 서늘하고 적막했지.
늑대3 평화로운 전원 풍경.
늑대2 자연과 함께 하는 삶.
늑대3 하지만 그건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곳이 아니었어.
늑대2 세상에, 그곳에서 벌어지는 온갖 희한한 일들이라니.
늑대 희한한 일들?
늑대3 괴상망측한 일들.
늑대2 추악한 일들 말이야.
늑대3 (늑대를 향해) 그게 바로 너의 미래이기도 해.
늑대2 (짖는다.)
늑대3 (짖는다.)
늑대 진정해. 대체 뭘 봤다는 거야?
늑대2 우리는 창고 뒤에 숨어있었어.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 전이어서 우리는 마음 놓고 한 숨 돌리고 있었지.
늑대3 그런데 우리는 그걸 봤어.
늑대 그거?
늑대2 그것도 우릴 봤어.
늑대 그거?
늑대3 그게 우리에게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어. 세상에. 그건 너무 끔찍했어.
늑대 대체 그게 뭐야?
늑대2/늑대3 (절규하며) 그건 닭이었어.
늑대 닭?
늑대2와 늑대3이 훼치는 닭 흉내를 낸다.
늑대 닭이라는 게 뭔데?
늑대2 새야.
늑대 새?
늑대3 아니, 그건 괴물이야.
늑대 괴물? 뭐, 어마어마하게 큰 새인가?
늑대2 그렇게 크진 않아. (두 손으로 크기를 보여주며) 대충 이만하지.
늑대 그럼 날카로운 이빨이라도 가졌어?
늑대3 작고 귀여운 부리를 가졌지. 머리 위에는 앙증맞은 빨간 볏이 있고.
늑대 이만한 크기에 작고 귀여운 부리와 앙증맞은 빨간 볏이 있는 새라고?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야?
늑대2 그 새는 날 수가 없어.
늑대 날 수가 없다고?
늑대3 아, 날 수 없는 새도 과연 새일까?
늑대 날개라도 다친 건가?
늑대2 아니야. 인간들이, 인간들이 그렇게 만들어버린 거야.
늑대 날개를 꺾어 버리기라도 했다는 거야?
늑대3 그것보다 더 나빠.
늑대2 아예 태어날 때부터 날 수 없는 새로 만들어버렸으니까.
늑대3 자랄수록 엉덩이가 커지고 날개는 작아지지.
늑대2 원래 그 반대였어야 하는데.
늑대3 차라리 아예 날개가 없었다면 그렇게 우울해보이지는 않았을 거야.
늑대2 일부러 남겨 놓은 거야. 인간들은 닭날개 튀김을 좋아하거든.
늑대3 그게 바로 인간들이 하는 짓이야.
늑대2 영원히 자기 옆에 가둬두려고.
늑대3 우리는 닭을 피해서 창고 옆 외양간으로 도망갔어.
늑대2 거기에는 커다란 황소가 여물을 먹고 있었지.
늑대3 그런데 세상에, 인간들은 소에게도 못할 짓을 했더라고.
늑대 못할 짓이라니?
늑대2 코에 코뚜레를 했더라니까.
늑대 코뚜레가 뭔데?
늑대3 뾰족한 나무송곳을 콧속에 대고 망치로 쳐서 생살을 뚫어버리는 거야.
늑대2 그리고는 나무로 만든 크고 굵직한 코뚜레를 억지로 밀어 넣는 거지.
늑대3 그것만 움켜쥐면 그 커다란 소도 꼼짝할 수가 없거든.
늑대2 그게 바로 인간들이 하는 짓이야.
늑대3 영원히 자기 옆에 가둬두려고.
늑대2 우리는 소를 피해서 허겁지겁 외양간 옆 축사로 들어갔어.
늑대3 처음에는 좁고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
늑대2 그러다가 우리는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어. 어떤 커다란 덩어리에.
늑대 덩어리?
늑대3 거기에 돼지가 있었어.
늑대2 덩치가 집채만 한 놈을 몸에 꽉 끼는 우리에 가둬놓고 하루 종일 음식 찌꺼기를 먹여대고 있더라고.
늑대3 돼지는 너무 살이 쪄서 네 발로 서 있지도 못할 지경이었어.
늑대2 뒤로는 똥을 싸면서 입으로는 계속 먹어댔지. 때로는 자기 똥을 먹기도 하면서.
늑대3 그게 바로 인간들이 하는 짓이야.
늑대2 영원히 자기 옆에 가둬두려고.
늑대3 너무 비참해서 돼지를 잡아먹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더라니까.
늑대2 우리는 돼지우리를 빠져나와 허둥지둥 농장 입구로 달려갔어.
늑대3 그 미친 곳을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려고.
늑대2 거기에 더 있다가는 우리 역시 움직일 수도, 짖을 수도, 화낼 수도 없는, 아니, 움직일 이유도, 짖을 이유도, 화낼 이유도 없이, 평온하게 햇볕이나 쬐면서 만족스럽게 꾸벅꾸벅 졸게 될까봐 두려웠거든.
늑대3 그런데 농장 입구에서 인간과 딱 마주치고 만 거야.
늑대2 세상에, 그 꼬락서니라니. (으르렁 거린다.)
늑대3 (으르렁 거린다.)
늑대 왜? 인간이 어쨌는데?
늑대2 말을 타고 있었어.
늑대 말을 타고 있었다고?
늑대3 동물이 동물을 타고 다니다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야? 얼마나 모욕적이던지.
늑대2 어찌나 높이 앉아 있던지 쳐다보자니 고개가 다 아플 지경이었어.
늑대3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아주 위세가 당당하게 말이야.
늑대2 남의 등을 깔고 앉아서 호기롭게 ‘이랴’하고 외치는 그 오만함.
늑대3 (채찍을 때리는 시늉을 하며) 이랴, 이랴, 달려라, 달려. 달리라고.
늑대2 (채찍을 때리는 시늉을 하며) 이랴, 이랴, 달려라, 달려. 다리가 부러지거나 목이 부러질 때 까지.
늑대3 (소리 높여 짖는다.)
늑대2 이게 바로 인간들이 하는 짓이야.
늑대3 영원히 자기 옆에 가둬두려고.
늑대2 (목소리를 낮추며) 저기, 그리고 말이야, 우리는 어떤 소문을 들었어.
늑대 소문이라니?
늑대3 (목소리를 낮추며) 거대한 공장에 대한 소문.
늑대2 그 공장에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수 십 수 백 마리의 동물들을 한 번에 죽여 버리는 기계가 있데.
늑대3 순식간에 머리가 모두 잘려나간다는 거야.
늑대2 어느새 바닥에 떨어진 머리들은 영문을 몰라서 눈만 끔뻑거린다지.
늑대3 그리고 몸뚱어리는 형체도 없이 조각조각 잘린 다음 랩에 포장 돼서 실려나간데.
늑대2 죽음마저 깨끗하게 씻겨나간
늑대3 투명한 유리 쇼케이스 안으로.
잠시 모두들 침묵한다.
늑대 그런데 누가 살아남아서 이 얘기를 전해줬지?
늑대2와 늑대3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웃음을 터트린다.
늑대2 그래, 역시 괴담일 뿐이겠지.
늑대3 일종의 문학적인 표현인거지.
늑대2 풍자나 우화같은.
늑대3 판타지나 SF같은.
늑대2 하지만 어쩐지 그럴 듯 하잖아.
늑대3 시사하는 바가 있으니까.
늑대 그게 뭔데?
늑대2 인간들은 이 세상 모든 게 다 자기 소유라고 생각해.
늑대3 인간들은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게 바로 이 세상이라고 생각해.
늑대 아니, 그들은 소유하려는 게 아니야. 그들은 지배하려는 거야.
늑대2 소유와 지배의 차이가 뭔데?
늑대 지배는 상대방의 복종을 요구하지.
늑대3 와아, 정말 욕심이 많기도 하지.
늑대2 누가 인간에게 그런 권리를 주었지?
늑대 딱히 억울할 건 없어. 우리가 육식동물이듯이 그들도 천성적으로 타고난 독재자일 뿐이니까.
늑대3 그렇다면 인간들은 아무런 신민도 없는 외로운 독재자일 거야.
늑대 그래서 내가 개가 되려는 거야. 인간들의 유일한 신민이 되려고.
늑대2 인간들에게 독재자의 권능을 주려는 거지.
늑대3 하지만 그들은 네 목을 끈으로 꽉 묶고, 좁은 쇠창살 우리 안에 가두고, 짖지 못하게 성대를 자르고, 새끼를 낳지 못하게 거세를 하거나 자궁을 들어낼 걸?
늑대2 너의 복종과 애정에 대한 보답으로 말이야.
늑대3 그리고 넌 그 독재자의 잔인함까지 사랑하게 되겠지.
늑대2/늑대3 놀랍게도.
늑대 놀라울 건 아무 것도 없어.
늑대2/늑대3 놀랍게도.
늑대 그만 하던 얘기나 계속 해봐.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늑대2 우리는 그 지옥 같은 농장을 빠져나와서 달리고 또 달렸어.
늑대3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숲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어. 우리는 또 다시 쓰레기장을 헤매고 다니다가 그만 도시로 들어가고 말았지.
늑대 아, 도시. 빛과 소음과 무질서의 왕국.
늑대2 그래, 왕국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유일한 곳이야.
늑대3 그런 낭비와 사치가 이루어진 적은 없었어.
늑대2 한밤중인데도 도시는 온통 불빛으로 번쩍거리고 있었지.
늑대3 도대체 이렇게까지 밝을 필요가 있을까?
늑대2 그건 정말이지 장관이긴 했어. 마치 도시 전체가 차갑게 불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거든.
늑대3 사람들은 그 불길 속을 춤추듯이 뛰어다녔어. 마치 튀어오르는 작은 불꽃들처럼.
늑대 야아, 정말 멋진 곳이구나.
늑대2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 중에 지옥편이 훨씬 더 흥미진진하니까.
늑대3 농장이 그저 평범한 지옥이었다면 도시는 지옥의 테마파크쯤 될 걸.
늑대2 회색 안개와 유리와 전광판이 온통 하늘을 뒤덮고
늑대3 거리에서는 매일 고양이들이 차에 치여 죽지.
늑대3 소중한 건 아무 것도 없는 곳이야.
늑대2 이루지 못한 욕망이 더 높은 가격에 팔리지.
늑대3 타락이 자유이자 권리인 곳.
늑대2 도덕은 단지 쾌락의 무게를 재기 위해서만 필요할 뿐이고
늑대3 그리고는 자신의 이기심을 살찌우기 위해 산채로 잡아먹지.
늑대2 외로움은 매달 날아오는 공과금 같고
늑대3 그 외로움까지 요란하게 선전해야하는 곳.
늑대2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하기 위해 도시로 오는 게 아니라
늑대3 철저하게 고립되기 위해 도시로 오지.
늑대2 단지 더 고독해지기 위해 섹스를 하고
늑대3 결국 마지막에는 병원 중환자실에서 진통제에 취해 고독사하고 말아.
늑대2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한없이 나약해져야만 해.
늑대3 투명하지만 그림자는 짙어야 하고
늑대2 무엇보다 개성과 유머가 가장 강력한 무기야.
늑대3 아니, 개성과 유머야 말로 바로 도시인들의 영혼이지.
늑대2 정말이지 그렇게나 불빛이 밝은데, 그 불빛의 얇은 껍질 안에는 끝없는 어둠이 가득하다니.
늑대3 정말이지 그렇게나 소음이 시끄러운데, 그 소음의 얇은 껍질 안에는 끝없는 정적이 가득하다니.
늑대 아아,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얘기가 너무나 낭만적으로 들리는 걸? 생각해 봐. 빛과 어둠이 강해야만 모서리가 선명해지고, 최고와 최악이 부딪혀야 온 세상에 파도가 치지. 그럼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거야.
늑대2/늑대3 아이고 세상에.
늑대2 너는 우리가 하는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구나.
늑대3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어. (으르렁 거린다.)
늑대 그곳에는 고민과 갈등과 질투와 회환이 가득하지. 머릿속은 뜨겁게 끓어올랐다가 얼어붙기를 반복하고, 질문을 하기도 전에 답부터 알려줄 거야. 진심은 치렁치렁한 드레스처럼 거추장스럽고, 정직은 미니스커트처럼 음흉한 눈길을 끌어 모으지. 너무나 다채로운 색채 때문에 자신이 어떤 색의 색맹인지 알 수 없게 되고, 자살까지도 세련된 가십이 되어 사람들을 기쁘게 할 거야.
늑대2 그게 좋다는 거야?
늑대 최소한 시간은 더 이상 마치 내가 거기 없는 것처럼 나를 관통해서 지나가지는 못할 테니까. 내 머리칼을 엉망으로 흐트러뜨리고 내 몸을 아프게 때릴 거야. 하지만 나는 그 날카로워진 시간의 고통을 배우고 싶어.
늑대2 (짖는다.)
늑대3 (짖는다.) 넌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늑대2 타고난 이야기꾼이야.
늑대3 그럴 듯한 얘기를 꾸며내고는 그 이야기의 순교자가 되려고 해.
늑대 모든 게 내 망상이라고 해도 상관없어. 꿈이라면 깨지 않으면 되고, 지어낸 이야기라면 계속해서 지어내면 되니까.
늑대2 좋아. 하지만 명심해.
늑대3 인간들은 사랑해주다가 버리고
늑대2 먹을 걸 주다가 때리고
늑대3 병을 치료해주고는 죽일 거야.
늑대2 그게 바로 인간들이 하는 짓이야.
늑대3 영원히 자기 옆에 가둬두려고.
늑대 그럼 내가 그들 곁에 있겠어, 영원히.
늑대2/늑대3 (짖는다.)
늑대 가겠어. 가서 인간들의 개가 되겠어. 인간의 발바닥을 핥으며 머리를 조아리겠어. 그들이 먹다 남은 찌꺼기를 기쁘게 받아먹을 거야. 그들 앞에서 귀엽게 재롱도 부리고, 공을 던지면 잽싸게 물어오고, 그들의 양을 밤새도록 지킬 거야. 그들에게 위험이 닥치면 목숨을 걸고 그들을 보호하겠어. 아주 기꺼이.
늑대2 얘기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구나.
늑대3 우리가 해준 모든 얘기들이 아무 소용없었던 거야.
늑대2 어쩔 수 없지. 정 그렇다면.
늑대3 겪어보지 않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으니까.
늑대2 하지만 모든 걸 이해하게 된 후에는 이미 늦기 마련이야.
늑대3 뭐, 그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
늑대2와 늑대3이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늑대2 좋아, 그럼.
늑대3 가보도록 해.
늑대 날, 보내주겠다는 거야?
늑대2 그렇게까지 결심이 확고하다면 막을 수 없지.
늑대 (감격하며) 고마워. 고마워.
늑대3 하지만 명심해. 한 번 개가 되면 다시는 늑대로 돌아올 수 없어.
늑대2 언젠가 개가 된 걸 후회하면서 밤마다 짖게 되더라도 말이야.
늑대3 하지만 우리는 대답해주지 않을 거야.
늑대2 넌 더 이상 늑대가 아니니까.
늑대2/늑대3 (소리 높여 짖는다.)
늑대2와 늑대3이 짖으면서 무대 뒤 어둠 속으로 물러간다. 그들이 사라진 뒤에도 늑대 울음소리는 멀리서 계속 들려온다. 늑대는 잠시 정면을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관객들에게 등을 보인 채 러닝머신 위에서 뛰기 시작한다. (러닝머신은 아까와는 반대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늑대가 향하고 있는 화면에는 어두운 밤 헤드라이트를 켠 채 캄캄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1인칭 시점의 장면이 나온다. 잠시 후 화면이 사라지고 무대는 어둠 속에 잠긴다. 늑대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멀어진다. 암전.
(중간 휴식 시간)
관객들이 보는 가운데 스텝들이 무대 위에서 뒹굴고 있는 텔레비전, 책상, 의자, 컴퓨터, 시계, 냉장고, 화분, 카펫, 쿠션 등등 가정용 집기들을 정리해서 하나의 방을 만든다. 냉장고는 정면을 향해 놓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