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언니는 내게 거짓말을 했지.
내가 이 한없는 세상에 꼼짝없이 갇혀 있을 때
모두 각자의 좁은 방 안에서 침묵할 때
바람 소리인지 날갯짓 소리인지 헷갈릴 때
언니는 내게 거짓말을 했지.
다정하게 속삭였지.
사람들은 괴물을 죽이지 않고
괴물은 소녀를 죽이지 않고
그래서 언니는 죽지 않는다고.
난 믿었어. 그래서
캄캄한 밤에도 곤히 잠들 수 있었는데.
하지만 이제 난 알아.
사람들은 괴물을 죽이고, 괴물은 소녀를 죽이고,
언니도 죽고 없다는 걸.
이제 괴물도, 소녀도, 언니도
옷이나 신발을 다 벗어던지고
모두 같은 이름이라는 걸.
언젠가는 나도 같은 이름이 되겠지.
그리고 모든 이름을 잊겠지.
언니도 내 이름을 잊었을까.
그러니까
나는 매일 밤마다 창문을 열고 인사할 거야.
괴물에게, 소녀에게, 언니에게
바람에게
날갯짓 소리에게
안녕, 나는 '아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