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

by 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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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 (1990)







희곡 '햄릿'은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인물들, 자신의 이름에 함몰된 인물들,


자기 자신 외에는 결코 그 누구도 될 수 없는 인물들로


가득 차있다.


심지어 '햄릿'이 되기를 주저하는 햄릿마저도


지극히 햄릿적일 뿐이다.


'햄릿'이라는 제목은 '햄릿'이라는 인물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햄릿'이라는 이름에서 온 것이기에.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아예 지워버려도 이야기에 아무 무리가 없고,


심지어 해골로 등장하는 요릭보다 인상적이지도 않고,


더구나 둘 중 누가 로젠크란츠이든 길덴스턴이든 상관없는


한 사람도 아닌 두 사람을 만들어내고 또 죽여야 했을까.


(그들은 심지어 무대 위에서 죽지도 못한다.)


마치 뱃속에서 다 자라지 못하고 낙태되어 버린 태아 같은 두 사람은


그만 무대 위에서는 길을 잃고 무대 밖에서는 심연으로 빠져든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유령은 시작과 결말을 틀어쥐고 있는 아버지 햄릿이 아니라


이야기의 경계, 이 무대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겉돌고 있는


이 두 사람이 아닌가.


로젠크란츠과 길덴스턴,


혹은 길덴스턴과 로젠크란츠.


관객은 끝내 누가 누구인지 모른 채


까맣게 그들을 잊는다. 심지어


그들 자신도 스스로를 까맣게 잊은 채


연극은 어느새 막을 내린다.


그러나 모든 관객과 배우들이 돌아간 뒤에도


그들은 불꺼진 무대와 무대 사이의


한없이 막연한 안개의 숲 속에서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찾아 헤매고 있을까.


(꼭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배우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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