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햄릿'은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인물들, 자신의 이름에 함몰된 인물들,
자기 자신 외에는 결코 그 누구도 될 수 없는 인물들로
가득 차있다.
심지어 '햄릿'이 되기를 주저하는 햄릿마저도
지극히 햄릿적일 뿐이다.
'햄릿'이라는 제목은 '햄릿'이라는 인물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햄릿'이라는 이름에서 온 것이기에.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아예 지워버려도 이야기에 아무 무리가 없고,
심지어 해골로 등장하는 요릭보다 인상적이지도 않고,
더구나 둘 중 누가 로젠크란츠이든 길덴스턴이든 상관없는
한 사람도 아닌 두 사람을 만들어내고 또 죽여야 했을까.
(그들은 심지어 무대 위에서 죽지도 못한다.)
마치 뱃속에서 다 자라지 못하고 낙태되어 버린 태아 같은 두 사람은
그만 무대 위에서는 길을 잃고 무대 밖에서는 심연으로 빠져든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유령은 시작과 결말을 틀어쥐고 있는 아버지 햄릿이 아니라
이야기의 경계, 이 무대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겉돌고 있는
이 두 사람이 아닌가.
로젠크란츠과 길덴스턴,
혹은 길덴스턴과 로젠크란츠.
관객은 끝내 누가 누구인지 모른 채
까맣게 그들을 잊는다. 심지어
그들 자신도 스스로를 까맣게 잊은 채
연극은 어느새 막을 내린다.
그러나 모든 관객과 배우들이 돌아간 뒤에도
그들은 불꺼진 무대와 무대 사이의
한없이 막연한 안개의 숲 속에서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찾아 헤매고 있을까.
(꼭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배우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