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그저
권력에 의한 횡포였다면
종교에 의한 기만이었다면
사람에 의한 배신이었다면
우리는 분노했을지언정 심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가 듣든 말든 소용이 있든 말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대로 발을 구르고
핏대를 세우고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외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저 눈을 감고 입을 닫고
귀를 막아버리는 것은
그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
나약하고 죄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에게 내려진 벌을,
침묵 속에서 조금씩 썩어가라는 벌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착하고 정직한 것은 죄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