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지구의 [마이다스의 손]

by 곡도


SE-c7fe3085-3006-42ee-b97b-cd5b9ec5bdd6.jpg M. Charlotte Craft의 일러스트 [마이다스의 손]




"이런 씨발, 이 통계를 좀 보세요."


대통령이 들고 있던 통계 자료를 테이블 위로 집어던지며 외쳤다. 관료들과 장관들은 자신이 들고 있는 자료에 코를 처박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미 20%를 넘었어요. 그리고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아요. 1년 내로 30%를 넘어갈 거라고 합니다. 그 이상이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니. 정말 이대로 아무 대책이 없다는 말입니까."


관료들과 장관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들도 어쩔 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인구의 20%가, 세상에, 10명 중 2명이....."


대통령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자살을 하다니."


대통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앞 뒤로 서성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도대체 자살자가 없는 집안이 없어요. 나이가 젊을수록 자살률이 더 높습니다. 굳이 제 두 딸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건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니까요. 모든 사회, 정치, 교육, 경제 체제가 무너지고 있고, 정부 조직도 엉망입니다. 지금 여기 모인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달에는 교육부 장관이, 저번 주에는 국방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번 주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살했습니다. 새로 임명한 부통령은 취임 하루 전에 자살을 해서 그냥 지금까지 공석으로 내버려 둔 상태예요. 이건 단순한 유행이 아닙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돼요. 무슨 수라도 써야 합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이틀 전에 새로 임명된 보건복지부 장관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는 자살하겠다는 노모를 매일 밤 달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미디어를 동원해서 대대적으로 홍보도 하고, 위험군을 찾아내서 적극적으로 관리도 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전문가들을 총동원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문가들의 자살률이 평균보다 더 높은 실정이죠."


국방부 장관이 냉담한 어투로 말했다. 며칠 전 그의 아내가 자살했지만 그는 군인들의 자살로 무너진 국경 방어 때문에 골머리를 앓느라 슬퍼할 새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어떤 수라도 생각해 내야 해요."


대통령이 치를 떨며 고함을 질렀지만 그것은 거의 서글퍼 보일 지경이었다. 이미 한 번 자살을 시도했던 경력이 있는 총리가 대통령을 달래듯이 말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방법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AI마마를 멈추는 거지요."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에요. 불가능합니다."


이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모든 각료들이 일제히 소리 높여 외쳤다. 차가운 물 속처럼 조용하던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직 가족 중에 자살자가 없는 행정부 장관은 특히 더 단호했다.


"아시다시피 AI마마가 멸종 직전에 있던 인간을 구원했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AI마마가 인간을 위해 하고 있는 그 수많은 일들을 우리는 다 파악조차 못하고 있어요. 만약 AI마마를 멈추면 우리는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생존 자체를 하지 못할 겁니다. AI마마는 우리의 세계 자체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집집마다, 아니, 각 개인들의 가장 개인적이고 은밀한 부분에까지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우리는 AI마마의 뱃속에서 숨 쉬고 있는 태아나 마찬가지입니다. 산모가 죽으면 그 태아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지만 AI마마가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고 있어요."


대통령이 절망적으로 외쳤다.


"인간들에게 자살하라고 부추기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명백하게 AI의 제1원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AI는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며 인간이 해를 입게 두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AI마마는 제1원칙을 어기지 않았어요. 그리고...."


며칠 전 자살로 외동아들을 잃은 외교부 장관이 깊게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무거운 침묵이 사람들 위로 내려앉았다. 마치 온 세계 전체가 가라앉아 그들의 등을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SE-08d2c2d1-d8b2-4519-9fee-7371617b9fa9.jpg Walter Crane의 일러스트 [마이다스의 손]



"AI마마는 자살하라고 지시하거나 권유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부추기는' 것도 아니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신음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세 쌍둥이 남매 중에 이제 남은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었다.


"AI마마는 그저 솔직한 것뿐이에요."


감사원장이 신랄하게 말했다. 그는 자살하지 못하도록 자녀들에게 감시원을 붙여놓고 있었다.


"무엇에 대해 솔직하다는 거요?"


대통령이 책상을 주먹으로 세차게 내리치며 말했다.


"삶에 대한 무가치성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이유도 살아갈 필요도 없다는 것이요."


법무부 장관이 울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오늘 밤 자살하겠다고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그럼 AI마마에게 거짓말을 하게 하세요. '자살하면 안 된다'라고 말하게 하란 말입니다."


대통령이 사정하 듯 말했다. 그는 거의 광기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그게 안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살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하지 않아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이빨을 갈며 대답했다. 그의 12살 아들이 자살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는 '자살하면 안 된다'라고 분명하게 말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것은 AI마마에게 비논리적이기 때문이죠."


대법관이 두 손을 쥐어짜며 말했다. 그는 완전한 공황 상태에서 차라리 온 가족이 함께 자살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씨발, 하지만 우리는 원래 비논리적인 존재들이야. 우리는 살아있을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냥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마치 살아있을 이유나 목적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기 자신을 매일 속여가면서.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야.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거야."


대통령이 강력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넓은 회의실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문제는 AI마마가 자살이 AI의 제1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간이 살면서 겪어야 되는 그 수많은 고통과 슬픔, 고단함과 외로움, 절망과 후회, 그리고 그 많은 일들 끝에 결국에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고려할 때, 오히려 자살은 인간을 위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국회의장이 말했다. 자식들을 모두 잃은 그는 이제 이 모든 것을 냉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도, 자신도,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AI마마의 사랑입니다."


AI마마 장관이 말끝에 눈물을 쏟으며 흐느꼈다. 그는 며칠 전 자살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자살을 직접 도와주었다. 아버지는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대통령은 무너지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자신이야말로 이 자리에서 당장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우리 모두 이대로 순순히 자살하는 게 맞다는 겁니까?"


대통령이 비통하게 말했다.


"아니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2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비서실장이 대답했다. 그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자살에도 별로 큰 타격을 받지 않은 듯했다. 어쨌든 그 자신은 아직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나는, AI마마 없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멸종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AI마마와 함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자살하면서 멸종하는 것."


"어쨌든 선택할 여지는 있다는 거군요."


대통령이 힘없이 말했다. 자신은 미소를 지었다고 생각했지만 얼굴을 더 찌푸렸을 뿐이었다. 대통령은 크게 숨을 몰아쉬더니 안경을 고쳐 쓰며 차분하게 말했다.


"자아, 그렇다면 둘 중 어떤 것이 더 인간다운 죽음인지, 한 번 토의해 봅시다."


그들은 다시 회의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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