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늘 그렇듯 30분 일찍 자신의 사무실로 출근해서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그녀의 비서가 챙겨놓은 신문들과 뜨거운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었다. 커피는 몇 천년 전에 유행했던 음료로 몇몇 기록으로만 남아있다가 우연히 고대 유적에서 온전한 씨앗이 발견되어 경작에 성공하면서 요즘 다시 유행을 타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커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날 모두가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 역시 아침마다 한 잔씩 마시곤 했다. 그녀는 쓰디쓴 커피를 들이키며 신문들을 대충 뒤적이다가 한 신문을 집어 들고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다소 자극적인 기사의 제목은 [살인! 살인? 미플 잔혹사]였다.
[어젯밤 10시경 기로시카 거리의 한 주택에서 콜로디(여. 사망 당시 64세)의 '미플'이 그 가족들로부터 잔인하게 살해를 당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는데, 미플은 법적으로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미플의 생산과 보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미플이 살해당하는 일 또한 급증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범인은 미플의 소유주인 가족으로, 이유는 그들이 구입한 '상품'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플에게 인간과 똑같은 권리, 다시 말해 살해당하지 않을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티플'이 이미 오래전 사람의 권리를 인정받은 것과는 다소 다른 양상이다. 죽은 사람의 유전자 정보로 생성된 클론인 티플은 한 때 죽은 가족을 그리워하는 유가족들의 소비를 촉진하며 크게 유행되었으나 단지 신체적으로만 동일할 뿐 정신적으로는 전혀 연결고리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곧 하향 사업이 되었다. 반면 미플은 티플의 육체에 더하여 고인이 이용했던 전자 기기와 온라인의 정보를 토대로 이루어진 기억과 정체성을 어느 정도 원형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유가족인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하면서 사업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아직 인간의 뇌에서 직접 정체성과 정보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기술이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 일에 매달리고 있지만) 개발되지 않은 지금의 시점에서 오직 미플만이 고인과 인격적인 접촉이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다. 문제는 미플과 원형의 (사실상 서로 분리된 다른 개체라는 기본적인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성격이나 기억, 가치관, 정신세계 등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전혀 반대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어서 가족 내에서 갈등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족이 미플을 살해하는 사건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미플의 소위 '인권' 문제가 윤리적인 문제를 넘어 심각한 사회의 불안 요소가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당국은 현재 전문가들과 함께 합리적인 제도 수정을 논의하고 있다고 서둘러 발표했다. 앞으로 미플 살해가 불법이 될지, 아니면 미플 사업 자체가 불법이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졌다. 그녀가 일하고 있는 회사가 바로 미플 생산 회사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 역시 미플이 불러일으키는 여러 문제에 대해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그녀의 회사는 생산보다 소비자의 불만을 처리하는 데 더 많은 인력과 자금이 소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최근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급증하면서 회사 내에 미플의 시체를 수거해서 소각하는 소각장까지 갖추어 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회사의 책임만은 아니었다. 미플을 제작하기 전 주문자인 가족들에게 미플과 원형은 결코 같은 사람이 아니며, 전혀 다른 성격과 인격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몇 번이나 경고했지만, 막상 고인의 미플과 마주한 가족들 중 일부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회사로 쳐들어오곤 했다. 다정했던 자신의 딸이 온통 사사건건 트집 잡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이 되었다거나, 성실한 가장이었던 남편이 동성애자가 되었다거나, 교양이 넘치던 어머니가 천박한 옷을 입고 쌍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거나, 더 심하게는 아동성애자, 노출증 환자, 변태성욕자, 사기꾼, 도박꾼 등이 속출하고 있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건 매우 희귀한 경우에 해당했다. 그나마도 그 대부분은 원형이 전자 기기나 온라인을 충분히 이용하지 않아 생기는 정보 부족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예약 손님이 오셨습니다."
비서가 인터폰으로 알려왔다. 그녀는 책상을 깨끗하게 정리한 뒤 뒤로 길게 늘어뜨린 하늘색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가다듬었다. 이 불투명한 사업의 전망에 대한 걱정은 일단 접어두고 우선은 오늘 당장 닥친 일을 해내야 했다.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사무실로 들어온 남자는 어깨가 잔뜩 구겨진 채 소심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자리에 앉으시죠."
그녀의 안내에 남자는 묵묵히 자리에 앉더니 성급하게 입을 열었다.
"미플을 주문하고 싶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우선 원형이신 분이 사용했던 모든 전자 기기, 그러니까 핸드폰, 컴퓨터, 태블릿, 가디온, 어니스트존 등등 뿐만 아니라 기기의 내용과 온라인 사용에 대한 접근 권한까지 모두 제공하셔야 한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알고 있습니다. 다 가지고 왔어요.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요."
"좋습니다. 그럼 바로 계약을 진행할 수 있겠네요."
그녀는 계약서를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자 그럼, 손님께서는 원형 되시는 분과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가족이 아닙니다."
남자의 말에 그녀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종종 벌어지는 일이기는 했지만 아침부터 시간을 낭비한 그녀로서는 김이 빠지는 일이었다.
"죄송하지만, 그럼 계약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오직 돌아가신 분의 공식적인 직계 가족만이 미플을 주문할 수 있습니다.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요. 타인은 할 수가 없어요."
"타인이 아닙니다."
남자는 잠시 우물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저는 제 자신의 미플을 주문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 또한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죄송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어요. 오직 죽은 사람의 미플만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단 한 번만 말입니다. 법이 그래요."
그러자 남자는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으려던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남자의 표정이 선명하고 비장하기 그지없었다.
"저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남자가 꺼낸 말이었다. 남자는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막상 죽으려고 보니, 제가 죽이려고 하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제가 누굴 죽이려고 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망설이고만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미플들이 원형과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경우를 종종 보게 되었습니다. 최소한 내가 알던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더군요. 그러자 무척이나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내 미플은 어떤 사람일까, 하구요. 그래서 한 번 제 자신을, 그러니까 또 한 명의 저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살아있는 사람의 미플을 생산하는 건 불법입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다시 지적했다. 그러나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를 만나서 담판을 지으려구요. 과연 나와 그중에 누가 거짓말쟁이인지 말입니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거짓말쟁이가 죽어야 하지 않겠어요? 반면에 나머지 한 사람은 한 번 더 기회를 얻게 되는 거죠. 진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기회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반대를 표하기 위해 다시 법을 들먹이려는 데 남자가 그녀를 가로막았다.
"비용의 열 배를 지불하겠습니다."
그녀는 일단 입을 다물었다.
"미플을 생산한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을 것과 미플 소각장에서 미플의 시체 하나를 조용히 처리하는 걸 포함해서 말입니다.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다만 저에게 이 회사 어딘가에 있는 작은 방 하나를 몇 시간 동안만 빌려주시면 됩니다. 그럼 저와 제 미플이 그 방에서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그 방에서 걸어 나가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일 거예요. 그가 바로 제가 되는 거지요. 아시겠습니까. 아무도 알지 못할 겁니다. 알 필요도 없구요. 결론적으로 저는 이곳에서 단 몇 시간 동안 머물다가 떠나는 것뿐이니까요."
이건 분명 불법이었다. 그리고 초유의 일이었다. 어쩌면 미플이 원형 행세를 하며 원형의 모든 권리를 누리면서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원형'이란 얼마나 부정확하고 부적절한 표현인가. 과연 누가 진짜이고 누가 거짓말쟁이란 말인가? 설사 둘 중 누군가 더 사악하고 천박한 인간이라고 해도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면 더 윤리적인 게 아닌가. 진짜 그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게 아닌가. 결국 그 '진짜'가 그를 진짜라고 믿는 주변 사람들을 속이는 결과가 될지라도 말이다. 어쨌건 이것은 존폐 위기에 놓인 미플 사업을 되살릴 수 있는 기가 막힌 사업 아이템이 될 수도 있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럼 오늘 하시겠어요?"
그녀가 계약서를 다시 책상 서랍 속에 집어넣으며 물었다.
"미플을 생산하는 데는 5시간 정도 걸리는데요."
"더 미루고 싶지 않아요. 방을 주시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1883층에 W-2호에 가셔서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미플을 그리로 데리고 가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사례비는 여기 있습니다."
그녀는 남자가 주는 돈봉투를 천천히 안주머니 안에 밀어 넣었다.
늦은 오후, 그녀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미플을 데리고 갔다. 철두철미하게도 남자는 미리 준비해 온, 자신이 입고 있는 것과 똑같은 옷을 미플에게 입혔다. 그렇게 전혀 구별할 수 없게 된 두 사람은 소지품을 모두 꺼내놓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들이 너무나 똑같아 보였기 때문에 그들을 남겨두고 방을 빠져나올 때쯤 이미 그녀는 어느 쪽이 원형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복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일이 끝나길 기다렸다. 그녀답지 않게 어쩐지 마음이 진정되지를 않았다. 1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쯤 마침내 W-2호실의 문이 열리더니 남자가 나왔다. 그는 더 이상 어깨가 구겨져 있지도, 소심한 표정도 아니었다. 남자는 그녀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성큼성큼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그녀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대신 미플 시체 처리반에게 전화를 걸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