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개 가라사대 (7) - 완결

by 곡도





우당탕 문 따는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관객석 뒤편에서 경찰2와 경찰3이 손전등을 들고 두리번거리며 들어온다. 두 사람은 손전등 불빛으로 관객들을 비추며 관객석을 가로질러 캄캄한 무대 위로 올라간다.


경찰2 어이, 여기 불 좀 켜봐.


경찰3 가만 있어봐.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경찰2 저쪽을 찾아봐.


경찰3 이쪽에는 없어. 그 쪽을 좀 봐.


경찰2와 경찰3은 손전등으로 여기저기를 비추다가 스위치를 발견하고 불을 켠다. 불이 밝아지자 두 사람은 방 한가운데 서 있는 개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들은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처럼 경계하면서 머뭇거린다. 이윽고 개를 부르듯이 조심스럽게 손을 앞으로 뻗더니 돌연 개에게 말을 건다.


경찰2 아이구, 집에 사람이 계신지 몰랐네. 이거 실례합니다. 저희는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경찰3 문을 뜯고 들어와야 했어요. 초인종을 여러 번 눌렀는데 대답이 없어서요. 왜 문을 안 열어 주셨어요?


사람 죄송합니다. 제가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경찰2 그래요? 자물통을 부술 때 큰 소리가 났을 텐데, 잠이 깊게 드셨었나.


경찰3 (사람 머리 위의 머리띠를 가리키며) 어, 저기 그런데, 거기 그건 왜…….


사람 네?


경찰3 요기 머리에 쓰신 거요. 그건 뭐죠?


사람 아아, 이거요. 이건 그냥 장난삼아, 그러니까 심심해서 쓰고 있었던 거예요. 별거 아닙니다. (머리띠를 벗는다.)


경찰2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아아, 네에. 그런데 집에 혼자 계셨어요?


사람 네.


경찰3 (집을 둘러보며) 집주인이세요?


사람 아닙니다.


경찰2 집주인은 집에 안계세요?


사람 네, 집에 없어요.


경찰3 집주인하고는 무슨 관계시죠?


사람 뭐어, 친구라고 할 수 있죠.


경찰2 (사람을 위 아래로 훑어보며) 친구요?


사람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경찰3 에, 다름이 아니라 신고가 들어와서요.


사람 신고요?


경찰2 그게, 여기 집주인이 오랫동안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요.


사람 그래요?


경찰3 집주인 가족들에게 집에 들어가도 된다는 허락은 받았습니다.


사람 네에.


경찰2 가족들은 집주인이 혼자 살고 있을 거라고 하던데요.


사람 그들은 제가 같이 살고 있는 걸 모릅니다.


경찰3 그렇군요. 혹시 집주인이 어디 가셨는지 아세요?


사람 잘 모르겠습니다.


경찰2 뭐, 알겠습니다. 그럼, 실례지만 집 안을 좀 둘러봐도 될까요?


사람 네, 그러시죠. 어차피 제 집도 아니니까요.


경찰2와 경찰3은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사람 (무대 앞으로 나서며 관객들에게) 여러분, 혹시 제가 개가 아니어서 놀라셨나요?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공중에 머리띠를 흔들며) 참, 이런 머리띠 하나를 썼다고 저를 개라고 믿으시다니, 제가 더 놀랐습니다. 이렇게 두 눈으로 저를 보고, 이렇게 두 귀로 제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으면서요. 순진들 하신건가요, 아니면 반대로 교활하신 건가요. 아니면 정말 상상력이 풍부하신 건가요? 마치 여기가 진짜 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치 이 사람들이 진짜 경찰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 그렇다면 제가 개가 되지 못할 것도 없지요. 한 번 짖어 볼까요?


그 때 방을 조사하던 경찰들이 불쑥 끼어든다.


경찰2 저기요. 그냥 모른 척 하려고 했는데, 대체 누구하고 얘기하는 겁니까?


사람 제 얘기 소리가 들리셨어요?


경찰3 하, 당연하죠.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고 있는데.


경찰2 아니, 혹시 그 창밖에 누가 있는 거예요? (가상의 창밖을-관객들을 내다본다.)


경찰3 (가상의 창밖을-관객들을 내다보며) 아무 것도 없는데. 그냥 깜깜한 공터야. 기껏해야 두더지들이나 있겠지.


경찰2 대체 누구하고 얘기하신 거예요?


사람 그게, 그냥, 혼잣말이었어요. (바보처럼 웃는다.) 그러니까, 전 세계를 향해 외친 셈이죠.


경찰2 전 세계를 향해 외쳤다구요?


사람 원래 혼잣말이라는 게 다 그렇잖아요.


경찰3 저런, 요즘 스트레스가 많으신가 보네.


사람 네,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좁은 곳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는 게 제가 하는 일이거든요.


경찰2 이해합니다. 요즘은 뭐든지 다 그렇죠. 30분을 제대로 일하려면 3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에요.


경찰3 왜 그런지 아세요? 자동화 시스템 때문이에요. 모든 게 자동화된 이 도시는 이제 더 이상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그저 노동자를 필요로 할 뿐이죠.


사람 노동을 하지 않는 노동자를 어디다 쓰게요?


경찰3 투표를 하라는 거죠. 4년 동안 내내 기다리게 한 다음에 한 번씩 투표를 시키는 겁니다.


경찰2 어휴, 그러니 모두들 혼잣말이 많아질 수밖에.


사람 그만큼 전 세계를 향해 외칠 말이 많아졌다는 뜻이겠죠.


경찰2 하지만 혼잣말을 너무 많이 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안 좋은 징조에요. 어딘가가 꽉 막혔다는 뜻이거든. 소화불량일 때 트림이 많이 나오는 것처럼.


경찰3 선생님도 증상이 심한 것 같은데, 어디 가서 도움을 좀 받아보세요.


경찰2 맞아요. 부끄럽게 여길 거 없어요. 요즘은 그저 감기나 마찬가지라고 하잖아요.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약도 좀 먹고 나면 기분이 나아지기 마련이죠.


경찰3 누구나 도움이 필요한 세상이에요.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구해야 합니다. 마치 빌려준 돈을 다시 받아낼 때처럼 악착같이요.


경찰2 솔직히 말하면 우리도 1년에 두 번씩 상담을 받습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있거든요. 우리가 매일 어떤 사건들과 씨름하고 있는지 안다면 선생님도 분명 자신의 삶에 만족하게 될 겁니다.


사람 (웃으며) 제 삶에 대해서 잘 모르시잖아요.


경찰3 하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잘 알죠. 특히 어둡고 그늘진 곳에서 일어나는 축축한 일들에 대해서요.


사람 어떤 일들인데요?


경찰2 정말 알고 싶으세요? 뭐 그럼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려볼까요? (주머니 속에서 수첩을 꺼내들며) 어디보자. 일단 정신병자들이 정신병원에서 탈출했구요.


경찰3 두 명은 잡았는데 아직도 한 명은 못 잡았어요.


경찰2 어느 중학생이 아버지 사냥총을 훔쳐서 자기 반 학생들을 향해 쐈고…….


경찰3 14명을 죽였지.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경찰2 음식 찌꺼기와 함께 검은색 비닐봉지 안에 담겨있던 갓난아기를 쓰레기장에서 발견했습니다.


경찰3 놀랍게도 아기는 살아있었어요. 하지만 라면국물 때문에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경찰2 농장에 불이 나서 수백 마리의 돼지가 산 채로 타 죽었구요.


경찰3 휴, 그 비명소리를 듣는다면 보통 사람은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겁니다.


경찰2 에, 또 시장님께서 수행 비서를 성폭행 했다가 고소를 당하셨구요.


경찰3 시장님은 애정관계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하지만 시장님은 정치인이잖아요. 애정이란 권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죠.


경찰2 백화점에서 게임기를 훔치던 10대들이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경찰3 그 10대들은 오히려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고 항변하더군요.


경찰2 한 달 전에 고독사한 60대 남자를 그의 집에 찾아냈구요.


경찰3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파리들이 새까맣게 쏟아져 나오더군요. 쫓아내는데 진땀을 뺐습니다. 뭐 그 파리들 입장에서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심정이었을 테죠.


경찰2 그밖에도 자살, 뺑소니 사망 사고, 치정 살인, 묻지마 살인 등등, 이야,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도 죽은 사람들이 참 많았네.


경찰3 마치 죽을 자리를 찾아 줄지어 몰려가는 코끼리들처럼, 사람들도 죽을 자리를 찾아 줄지어 몰려가는 기분이 든다니까요.


사람 대체 왜 그런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거죠?


경찰2/ 경찰3 그게 사람들이 하는 일이니까요.


사람 우리들은 마치 스스로를 끝없이 벌주고 있는 것 같군요. 용서할 생각도 용서받을 생각도 없나 봅니다.


경찰2 그래서 사람들은 개를 키우죠.


사람 위로 받기 위해서요?


경찰3 아뇨, 용서받기 위해서요.


사람 용서요?


경찰2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무슨 짓을 해도 개들은 다 용서해 주니까요.


사람 대체 사람들이 개에게 무슨 짓을 하길래요?


경찰3 허, 사람이 개에게 하는 짓에 비하면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짓 따위는 연습경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사람 예를 들면요?


경찰2 에, 그러니까, 굶겨 죽이고, 때려죽이고, 태워죽이고, 차로 치어 죽이고, 빠뜨려서 죽이고, 약 먹여서 죽이고, 가둬서 죽이고, 내다 버려서 죽이고, 말이 안통해서 죽이고, 사랑해서 죽이고, 미워해서 죽이고, 재미로 죽이고, 재미가 없어서 죽이고…….


경찰3 반면에 개가 사람 다리라도 물었다 치면 온통 떠들썩하게 난리가 나거든. 개가 무슨 대단한 배은망덕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경찰2 뭐, 그거야 여긴 인간들의 세상이니까. 인간이 무조건 옳지.


경찰3 그건 맞는 말이야. 인간은 무조건 옳아.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낮에도 개 때문에 한 번 출동했었습니다. (외설적인 자세를 취하며) 대낮에 개 두 마리가 동네 놀이터 한 가운데서 들러붙어 있었거든요. 막상 그 둘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견딜 수가 없었던 거죠.


사람 대낮이었기 때문인가요?


경찰2 아니요.


사람 공공장소였기 때문이에요?


경찰3 그것도 아니에요.


사람 그 자리에 아이들이 있었나 보죠?


경찰2 다 틀렸습니다. 그건 바로 그 개들이 모자지간이었기 때문이에요.


경찰2와 경찰3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린다.


사람 경찰 여러분이 수고가 참 많으시군요.


경찰2 (수첩을 도로 넣으며) 수고가 많다마다요. 경찰이야 말로 극한의 직업입니다.


경찰3 그래도 시민들이 우리 덕에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보람이죠.


경찰2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밤늦게까지 일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경찰3 그러니 우리가 좀 더 집 안을 살펴봐도 되겠죠? 그 동안은 그 혼잣말인지 세계를 향한 외침인지는 좀 참아주시구요.


사람 네. 알겠습니다.


경찰들은 방 안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둘러본다. 그러나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경찰2 뭐, 보아하니 딱히 이상한 건 없는데.


경찰3 그러게 말이야. 집주인은 말없이 훌쩍 여행이라도 간 모양이야. 흔한 일이지. (사람에게) 아이고,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불편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사람 그럼, 다 끝난 건가요?


경찰2 네. 네에.


사람 이렇게 빨리요?


경찰3 별 이상이 없으니까요.


사람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으셨잖아요.


경찰2 뭐, 이 정도면 됐습니다. 실례가 많았어요.


사람 네, 그렇다면 할 수 없죠.


경찰3 아니, 혹시 우리가 가는 게 싫으세요?


사람 조금은요.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있었거든요.


경찰2 하지만 우리도 할 일이 많아요. 지금 곧바로 양화대교로 출동해야 됩니다. 기르고 있는 개를 자신의 호적에 올릴 수 있게 해주지 않으면 강물로 뛰어내리겠다고 시위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경찰3 하하 참, 두고 보세요. 얼마 안 있으면 개와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날뛰는 사람도 나올 테니까요.


경찰2 개를 위해 3번으로 시작하는 주민등록 번호도 나오고 말이죠.


경찰3 개에게 투표권을 줄지도 몰라요.


경찰2 그럼 개가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도 있겠네.


경찰3 와, 그거야말로 진짜 민주주의야.


경찰2 개가 사람이 되고


경찰3 사람이 개가 되는 세상.


경찰2, 경찰3, 사람이 다 함께 큰 소리로 웃는다.


경찰2 아, 이제 정말 가봐야겠습니다.


경찰3 벌써 시간이 늦었어요.


경찰2 양화대교에 있던 사람은 벌써 뛰어내렸을지도 몰라요.


경찰3 그럼 저희 임무는 시체 찾는 일로 바뀌겠죠.


경찰2 그편이 더 간단하긴 하지요.


경찰3 언제나 산 사람 보다는 죽은 사람이 더 간단하니까요.


사람 그래요, 어서 가보세요.


경찰2/경찰3 네에, 네. 안녕히 계십시오.


걸어가는 경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람이 묻는다.


사람 그런데 사람은 정말 개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경찰2/ 경찰3 네?


사람 정말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경찰2 (어깨를 으쓱하며) 글쎄요.


경찰3 (무심하게) 잘 모르겠는데요.


사람 (침묵)


경찰2 자, 이제 가보겠습니다.


경찰3 네, 실례가 많았습니다.


사람 저기, 가시기 전에 물이라도 한잔 드시고 가시죠.


경찰2 물이요? 아, 네, 그래도 될까요? 안 그래도 목이 말랐거든요.


경찰3 저도 부탁합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녔더니 목이 칼칼하네요.


사람 그럼요. 얼마든지요. 물은 냉장고에 있습니다.


경찰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로 걸어간다. 사람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관객들에게서 등을 돌린다. 관객들은 더 이상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경찰들이 냉장고 문을 열자 안에 들어있던 시체가 드러난다. 경찰들은 그대로 동작을 멈추고 시체를 바라보다가 품속에서 개 목줄과 개 입마개를 꺼내 슬금슬금 사람에게 다가간다. 사람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여전히 관객들은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어디선가 멀리서 개 두 마리가 짖는다. 암전. 무대에서 개가 높이 짖는다. 정적. 막.





(완결)



이전 06화[희곡] 개 가라사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