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Halo (3)

by 곡도




딴따라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End of May] - Keren Ann


Close your eyes and roll a dice

Under the board there's a compromise

If after all we only live twice

Which life is the runroad to paradise

Don't say a word

Here comes the break of the day

In while clouds of sand raised by the wind of the end of May

Close your eyes and make a bet

Faced to the glare of the sunset

This is about as far as we get

You haven't seen me disguised yet

Don't say a word

Here comes the break of the day

In while clouds of sand raised by the wind of the end of May

Close your eyes and make a wish

Under the stone there's a stone-fish

Hold your breath, then roll the dice

It might be the runroad to paradise

Don't say a word

Here comes the break of the day

In while clouds of sand raised by the wind of the end

Don't say a word

Here comes the break of the day

In while clouds of sand raised by the wind of the end of May


모두가 딴따라의 노래를 듣는다. 사장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손님들에게 술을 따라준다. 노래가 끝나자 노인이 입을 연다.


노인 생각해보니 있었던 것 같아.


게이1 네?


노인 지난 20년 동안, 끌렸던 사람.


게이1 그래요?


노인 저 사장하고 비슷한 나이의, 남자였지.


게이1 이야, 누군데요?


노인 내 물리치료 의사 선생님. 난 관절염이 심해서 오랫동안 병원에 다녀야 했거든. 너무 아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였어. 사람한테 다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나? 사람들 앞에서 아기처럼 아장아장 걷는 게 어떤 건지 알아? 내 몸이 내 다리를 짓누르는 짐이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게이1 (제자리에서 펄쩍 펄쩍 뛰어 보이며) 저야 알 수 없죠.


노인 다시 한 번만이라도 있는 힘껏 뛰어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자신의 다리를 주무른다.)


사장이 그 모습을 보고 다가온다.


사장 어디, 다리가 안 좋으세요?


게이1 관절염이 심하시데요.


사장 아, 괜찮으시면 제가 한 번 볼까요? 저희 어머니도 다리가 안 좋으셔서 고생을 많이 하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공부 좀 했죠. 반전문가가 다 됐다니까요.


사장이 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노인의 다리를 살펴본다. 사장은 노인의 다리를 펴서 이리저리 주무른다. 때때로 허벅지 위까지 손이 가기도 한다.


사장 (다리를 만지며) 여기가 아프세요?


노인 에, 네에.


사장 여기는요?


노인 거기도 좀.


사장 그럼 여기는?


노인 아, 아, 네에.


게이1이 노인 뒤에 서서 노인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는다.


사장 (다리를 만지며) 어때요?


노인 (신음소리를 참으며) 아 아.


사장 여기가 특히 문제네요. 염증이 심한 것 같아요. 더 안 좋아지면 수술도 고려해 보셔야겠어요. 음, 그 전에 인대 강화 치료를 한 번 집중적으로 받아보시면 어떨까요. 혹시 손상된 조직을 얼마간이라도 재생시켜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게이1 (짓궂고 은밀하게) 어때요?


노인 (사장이 손에 힘을 주자 신음 소리를 참으며) 아 아.


사장 (다리를 계속 만지며) 여기도 아프세요? 이쪽 근육도 문제가 있네요. 그래서 (하나하나 손으로 만지며) 발목부터, 허벅지, 허리, 그리고 심하면 목까지도 통증이 오는 거예요.


사장은 노인의 다른 쪽 다리를 살펴본다.


사장 어디, 이쪽 다리도 좀 볼까요?


노인 의사는 참 커다란 손을 가지고 있었어.


게이1 뭐든지 큰 게 좋죠. 뭐든지요. 손이 특히 마음에 드셨나봐요?


노인 손가락이 길고 손등에 힘줄이 튀어나와있는 그런 남자다운 손이었어. 내 다리를 살짝 잡았는데 힘이 어찌나 세던지 부러질 것처럼 아프더라구. 하지만 의사에게는 아프다고 하지 않았어. 신음소리를 꾹 참았지.


사장 다리가 너무 가늘어지셨어요. 근육이 없으면 관절염이 더 악화될 수 있어요. 잘못하면 나중에는 보행도 힘들어지실 거예요.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으시는 게 좋겠어요. 한 번 다리를 쭉 펴보세요.


노인이 다리를 쭉 편다. 사장이 노인의 허벅지를 만진다.


노인 (신음소리를 참으며) 어 어.


게이1 왜 신음소리를 참았어요?


노인 (신음소리를 참는다.)


게이1 혹시나 들킬까봐서요?


노인 (신음소리를 참는다.)


게이1 좋았던 거죠?


노인 (신음소리를 참는다.)


게이1 그렇죠?


노인 그래, 좋았어. 그 관심이, 그 목소리가, 아플 정도로 꽉 잡아주는 그 커다란 손이.


게이1이 노인의 다리를 만지고 있는 사장 뒤에 서서 두 손으로 사장의 어깨를 짚는다.


게이1 혹시 그 손이 다른 곳도 꽉 잡아주길 바라진 않았어요?


사장 그러고 보니 (허벅지를 두 손으로 감싸며) 좀 부어오른 것 같은데요. 뻣뻣해진 것 같기도 하고.


노인 (당황하며) 어어?


게이1 특별히 더 아픈 곳은 없었냐구요.


노인 어?


사장 (손으로 허벅지 안쪽을 더듬거리며) 여기인가? 아니면 여기인가?


노인 아, 글쎄. 난 잘, 잘 모르겠는데.


게이1 그래요? 아, 이거 참, 헷갈리네.


사장 (계속 허벅지를 만지며) 둘 중에 어느 쪽일까.


노인 뭐가?


게이1 할아버지가 정말 게이인지, 아니면 그저 외로움에 지친 노인인지 말이에요.


사장 (계속 허벅지를 만지며) 둘 다일 수도 있어요.


게이1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어느 쪽이든 바뀔 게 없다는 거예요.


사장 (계속 허벅지를 만지며) 어차피 연세가 있으셔서 완전히 바로잡긴 힘들어요.


게이1 만약에 게이라면 어쩌시게요? 이제 와서 남자라도 만나시려구요?


사장 (계속 허벅지를 만지며) 최대한 조심하시는 게 좋겠어요.


게이1 그냥 게이가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사장 되도록 무리하지 않는 게 최선이에요.


게이1/사장 그럼 괜찮을 거예요.


노인 (잠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아니, 아니야, 난 알아야겠어. 그래야 모든 게 정말 끝이 날 테니까.


게이1이 크게 한숨을 쉰다. 사장이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게이1 (사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사장님, 술을 좀 더 마셔야겠어요. 독한 걸로요.


사장 뭘로 줄까?


게이1 위스키로 하죠. 여기 (노인을 가리키며) 우리 새내기 인턴에게도 한 잔 주시구요.


사장 오케이.


사장이 칵테일바로 돌아가 유리잔에 술을 준비한다.


게이2 이거, 분위기가 너무 처지네. 답답해. 숨이 막혀. 이럴 때야말로 음악이 필요한 거지. 딴따라, 피아노를 쳐줘요.



딴따라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을 피아노로 연주한다.


게이2 아, 좋은데.


게이3 우리 춤출까?


게이2 좋지.


게이2와 게이3이 앞으로 나와 피아노 소리에 맞춰 다정하게 서로를 껴안고 춤을 춘다. 사장이 술 두 잔을 가져와서 노인과 게이1에게 준다. 게이1과 노인은 술을 마시며 게이2와 게이3이 춤추는 모습을 바라본다.


노인 저 두 사람, 좋아 보이네.


게이1 네에 네, 보기에야 그럴듯하죠.


노인 무슨 문제라도 있나?


게이1 저야 모르죠. 하지만 이미 무언가 한참 어긋나고 있는 중인지도 몰라요.


노인 왜 그렇게 얘기하는 거지?


게이1 둘이 결혼한다지 뭐에요.


노인 아, 그건 축하할 일 아닌가?


게이1 가능하다면 아이도 입양하겠다고 할 걸요?


노인 그럴 수도 있겠지.


게이1 남자끼리 시험관 아기 뭐 그런 게 가능해 지면 그것도 하겠다고 할 거예요.


노인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니까.


게이1 저들은 뭐든지 할 거예요. 결혼에, 아이들에, 그럴 듯한 집에, 가족사진에,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지극히 이성애적인 가정을 완성하기 위해서 말이죠. 엄마와 아빠와 아이들, 별로 행복하지도 않았던 어린 시절의 익숙한 기쁨과 고통으로 회귀하기 위해서요. 동성애자라고 하지만 실은 뼛속까지 이성애자들이죠. 그러다 바람도 피고, 이혼도 하고, 양육권 소송에, 이성애자들이 하는 짓은 전부 다 따라하려고 할걸요.


노인 하지만, 그럼 게이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거야?


게이1 제 말을 이해 못하시는 군요. '독신'이란 것도 지극히 이성애적인 단어에요. 사실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이 다 이성애적이죠. 차라리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게 좋을 거예요. 새로운 문명이나 새로운 시대가 처음 시작될 때 그랬던 것처럼요.


노인 거 참 거창하구만.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면 어때?


게이1 간단하게요?


노인 모든 게 다 사랑을 위해서라고 말이야.


게이1 사랑이라구요? 하하. 참 그렇죠. 사랑이야 말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최신 신상의 신앙이죠. 섹스 하는 것도, 결혼하는 것도, 애를 낳는 것도, 바람피우는 것도, 성범죄까지도 모두 사랑의 이름으로 성스러워져요.


노인 그렇게 비꼴 거 없어. 결혼에, 아이들에, 그럴 듯한 집에, 가족사진에,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이 모든 건 동성애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성애자들에게도 가증스럽고 버거운 일이니까. 정말 그렇다니까.


게이1 그런데도, 그게 다 사랑을 위해서라구요?


노인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지.


게이1 사랑을 단단하게 만든다구요?


노인 우리에게는 살아가면서 붙잡고 있을만한 무언가가 꼭 필요하니까.


게이1 그리고 저렴하기도 하구요.


노인 그래, 설탕처럼.


게이1 하지만 이미 돌덩어리처럼 단단해진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에요.


노인 우린 그걸 추억이라고 부르지.


게이1 거 참, 또 그 놈의 추억타령이시네.


노인 이해해 줘. 내 나이가 되면 남아있는 건 그것뿐이거든. 남아있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추억이 그 빈자리를 채워주지.


게이1 그럼 할아버지는 이제 추억으로 꽈악 차셨겠네요.


노인 (웃으며) 맞아. 이제 이 안에는 내 자신보다도 추억이 더 많아.


게이1 그럼 그 안에서 하나 꺼내 보세요.


노인 뭘?


게이1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추억.


노인 추억.


게이1 돌덩어리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린, 사랑.


노인 사랑.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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