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런, 안녕하세요란 말이 참 낯설게 느껴지네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사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엘리니엄 이용자입니다. 시중에서는 저 같은 사람을 엘리라고 부르더군요. 제가 엘리니엄을 구입할 때만 해도 그런 명칭은 없었는데요. 어쨌든 편의를 위해 저 역시 이 단어를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엘리입니다.
제가 엘리니엄을 이용한지는 100년쯤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오늘로 98년 3개월 24일이 되었군요. 네, 초창기 구매자지요. 본사에서 제 이름은 밝히지 말라고 하네요. 어차피 이제 이름 같은 건 아무 상관도 없지만요.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건 본사로부터 상품 출시 100주년을 기념해서 엘리니엄 사용 후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엘리니엄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다나요. 저는 흔쾌히 응했습니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게 기쁘거든요.
안녕하세요.
글을 통해서나마 엘리와 접촉하는 건 처음이시죠? 엘리에 대해서는 언제나 뜬소문으로만 들어오셨겠죠. 당연합니다. 엘리들은 타인과 소통하거나 교류하는 게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으니까요. 인터넷 이용은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인터넷에 직접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쓸 수 없고, SNS나 블로그 등을 운영하는 것도 불가능하구요, 하다못해 온라인 게임도 할 수 없습니다. 통. 신. 불. 능. 엘리니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점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엘리니엄의 가장 본질적이고 심리적이며 현실적인 환경을 구성하거든요.
안녕하세요.
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놀라게 하리란 걸 알지만 사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놀라는 이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리고 여전히, 저도 놀라곤 하니까요. 하지만 여러분과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저 역시 세상에 떠돌고 있는 엘리니엄의 루머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엘리니엄은 처음부터 완전히 사기였다거나, 엘리니엄에서는 결국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거나, 살아남았다 해도 어딘가 망가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거나, 작은 깡통 속에 넣어둔 벌레처럼 사육되고 있다는 등등의 이야기들이죠. 아마 그런 루머와 오해들을 불식시키기 위해 엘리니엄 본사에서는 저에게 후기를 써달라고 요청한 것 같습니다. 어떠세요. 일단 여기까지 읽으신 것만으로도, 그리고 화자인 저라는 존재를 신뢰하신다면, 엘리니엄이 완전히 사기였다거나,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거나, 어딘가 망가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는 식의 얘기들이 헛소문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아셨겠죠. 다만 작은 깡통 속에 넣어둔 벌레처럼 사육되고 있다는 말은 표현이 노골적이고 모욕적이긴 해도 내용면에서는 숙고해볼 여지가 있군요. ‘작은 깡통’과 ‘벌레’와 ‘사육’, 이 세 가지 관점에서 모두 말입니다.
이 글을 통해 저는 엘리니엄에 대해 여러분께 최대한 상세히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여러분도 이미 대략의 내용은 알고 계시겠지만 실사용자의 후기만큼 정확한 것도 없지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의 체험에 한정될 뿐이라는 것 역시 명확히 해야겠습니다. 더구나 본사의 말에 따르면 저는 가장 잘 적응한 케이스일 테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어쩌면 유일하게 적응한 케이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이 공개되면 다른 엘리들도 제 글을 읽게 되겠네요. 그럼 그들은 뭐라고 할까요. 어쩌면 전혀 다른 얘기를, 완전히 엉뚱한 얘기를 하지는 않을까요. 여러분과의 교류가 차단되어있는 것만큼이나 엘리들끼리의 교류도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저 역시 다른 엘리들의 안부가 궁금하기만 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미리 여러분에게 한 가지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엘리니엄 사용 후기라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보니 그만큼 여러분의 기대감도 높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글은 여러분의 기대만큼 일목요연하거나 객관적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쓰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미지의 신세계에 막 도착한 개척자처럼, 저는 이해나 전망이 아닌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현존하고 있으며 그저 그 경험을 가감 없이 글로 옮길 수 있을 뿐이니까요. 더구나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무언가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힘든 일이죠. 그러니 여러분은 제 글을 다 읽은 후에도 여전히 엘리니엄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저 역시 여러분과 별다를 게 없는지도 몰라요. 내가 나로 살고 있다고 해서 내가 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그 점을 헤아려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역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야겠죠. 제가 엘리니엄을 구매하게 된 경위와 절차, 조건 같은 게 궁금하실 겁니다. 우선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해 볼까요. 네, 엘리니엄을 구매하려면 우선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상당한 액수의 돈이요. 본사의 요구로 정확한 숫자는 밝힐 수 없지만 일반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금액임은 분명합니다. 다행히 저는 부모님에게서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재산을 나눌 다른 가족들도 이미 세상을 뜨고 없었기 때문에 그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네, 맞아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자본주의에 기생하고 있었지요. 평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능력도 의지도 야망도 심지어 자격지심조차 없었습니다. 젊을 때는 - 돈 때문이 아니라 - 그저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이런저런 일들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유일한 장점입니다만, 제가 성공할 수 없으리라는 걸 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어요. 결국 얼마 안가 모든 걸 정리해버리고 그 뒤로는 죽 무위도식하며 지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받은 돈을 불리지도 않았고 – 자유 경제 차원에서 보자면 더 나쁘게도 - 잃지도 않았습니다. 평생 그대로 수중에 가지고 있다가 모두 엘리니엄을 구매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네, 분명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주어진 유일한 행운이었지만 저는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셔야 할 것은 돈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엘리니엄을 구매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돈이 꽤 높은 문턱이긴 하지만 가장 높은 문턱은 아니거든요. 그저 첫 번째 문턱일 뿐이죠.
서류 심사로 자신의 재정 상태를 증명했다면 이제 직접 엘리니엄 본사를 방문해서 57가지의 테스트를 거쳐야만 합니다. 테스트의 종류나 구체적인 설명은 본사 홈페이지에 상세히 나와 있으니 직접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중에서도 정서와 기질 테스트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99.999% 이상의 사람들이 여기에서 탈락하고 마니까요. 여러분이 아무리 대단한 부자든, 권력자든, 천재든, 어떤 유력인사라고 해도 절대 예외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테스트는 능력 테스트가 아닌 적합도 테스트거든요. 다시 말하자면 여러분을 배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엘리니엄’이라는 상품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침실용 가죽 부츠가 잘 팔리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 처럼요. 보통 여러분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엘리니엄의 본질은 영원한 생명이 아닙니다. 생명은 그 다음 문제지요. 엘리니엄의 진짜 문제는, 그러니까 엘리니엄의 본질은, 그러니까 여러분이 실제로 감당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이 철저하게 그리고 영원히 혼자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엘리들이 그 어마어마한 거금을 들여서 구입하는 것은 ‘영원한 삶’이 아니라 ‘영원한 고립’인 것이죠.
물론 여러분 중에는 모든 게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영원히 살 수만 있다면 고립 정도는 견딜 수 있다구요. 하지만 엘리니엄에서 무언가를 견뎌내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견딘다는 것은 견디지 않아도 되는 순간까지 견디지 않아도 되는 결과를 추구하는 것인데 영원히 견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엘리니엄은 엘리니엄에 적합한 사람을 가려내기 위한 테스트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생체 검사와 기질 검사, 심리 테스트, 그리고 여러분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면밀하게 조사하게 되죠. 특히 살아온 삶을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각자의 삶에는 각자 불변의 관성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제 자신을 예로 한 번 들어볼까요? 속세에서 (한 때 제가 있었고 또 지금 여러분이 계신 그곳을 ‘속세’라고 표현하는 걸 이해해 주세요. 다른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네요.) 저는 평생을 혼자 지냈습니다. 감상적이거나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가족들, 그러니까 부모님과 형제들은 제외해야겠지만, 그마저도 성인이 된 이후로는 서로 거리를 두고 살았으니 딱히 교류가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군요.
아시다시피 가족 관계란 얄궂은 것이지요. 가족 간의 사랑이란 묘연한 것이구요. 물론 누군가 제게 가족을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 단 두 가지 답안만을 제시했다면 저 역시 사랑한다고 답했을 겁니다. 만약 누군가 길거리를 걸어가는 낯선 사람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저 사람을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 제게 물어오면 사랑한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요. 아니, 아니요. 제가 제 가족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에요. 그들을 위해 제 목숨이라도 기꺼이 바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관계가 선행한 애정이 정말로 진실한 것인지 저는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비극은 가족이 아니었다면 서로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사람들이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는 데서 비롯되지 않던가요.
가족은 서로 너무 가까운 나머지 스스로 무너져 내림으로서 그 거리를 만들어내려 하지만 무너진 잔해들이 쌓여 다시 그 거리를 메워버리고야 마는 무고하고도 무모한 관계입니다. 가해자 없는 피해자들끼리 다 함께 뒤엉켜서 내가 나라는 사실 때문에, 네가 너라는 사실 때문에 끊임없이 죄의식을 느껴야 하지요. 한편으로는 다른 타인들처럼 가족 간에도 각자 자신만의 계산속이 있고, 자신의 이해득실에 쫓기고, 자신의 과오를 상대방에게 떠넘기기에 여념이 없으면서요. 아니, 딱히 원망하는 건 아니에요. 누구나 각자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잖아요. 우리 가족도 그렇게 각자 간신히 버티고 있었을 뿐입니다. 서로에 대한 인내야 말로 사랑보다 더 진실하고 악착같은 유대감이죠. 뭐, 어쨌거나 이제는 다 지난 이야기일 뿐입니다. 제 가족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습니다. 저는 홀로 남았습니다. 그 사실이 한없이 슬프기도 하지만, 숨쉬기가 조금 편해진 건 사실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