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가 조금 옆길로 샜군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도록 하죠.
속세에서 저는 평생 혼자 지냈습니다. 제게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단 한사람두요. 아, 선뜻 와 닿지가 않으시나요? 사람으로 바글바글한 이 세상에서 아무도 없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구요? 흠, 그럼 이렇게 말씀드려보면 어떨까요. 저는 평생 단 한명의 친구도 없었습니다.
아하, 지금 여러분의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게 참 아쉽네요. 분명 눈은 휘둥그레 커지고 입은 헤벌쭉 벌어졌을 텐데요. 아니면 반대로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을지도요. 놀라셨나요. 하지만 이 고백이 언제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는 사실이 언제나 저를 놀라게 합니다. 그들은 마치 제가 저녁 식사로 사람의 비곗살을 넣은 김치찌개를 즐겨 먹는다고 말한 것만큼이나 놀라워해요. 아니, 그런 식인종에게도 분명 친구는 있을 거라고 생각할 걸요.
처음에는 모두들 제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부풀린 일종의 투정이라고 생각했죠. 제발 저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라고 오히려 정 반대로 번역기를 돌려서 저에게 더 다정하게 구는 고약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제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러니까 저에게는 이제껏 정말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었고 또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혐오감을 느낍니다. 그것은 사이코페스나 신성모독자, 강간범, 근친상간자, 패륜아를 눈앞에서 직접 보았을 때 치밀어 오르는 것과 같은 종류의 혐오감입니다. 좋은 사람들은 정당한 이유로 나쁜 사람들은 부당한 이유로 저를 한없이 얕보면서도 또 한없이 어려워하죠. 그럼 서로 친구가 되기는 아예 글러버린 거예요.
물론 저는 사이코페스도 신성모독자도 강간범도 근친상간자도 패륜아도 아닙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높은 도덕 기준과 강건한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습니다. 단지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게 불가능한 것뿐입니다. 왜냐구요? 그야 친구를 원하지 않으니까요. 필요하지가 않아요. 단지 그뿐입니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죠.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엘레니엄에서 홀로 100년이나 있었는데도 여전히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가끔 저도 놀라긴 합니다.
사실 정말 의아한 사람은 저예요. 도대체 어떻게 친구란 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친구’란 본질적으로 상상의 영역이 아닐까요.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상상 속의 친구를 만들어내는 걸 보세요.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라고 자랑스럽게 소개까지 하잖아요. 마치 친구보다 우정이, 상대보다 교감이 선행한다는 듯이 말입니다. 혹은 ‘산타클로스’처럼 실체가 없으면서도 기꺼이 기념하는 습관이나 관습, 강박의 일종인지도 모르죠. 언제나 언어가 실상을 주도하며, 우리는 단어들이 모래처럼 펼쳐진 광대한 사막에서 신기루를 쫓아 물을 찾아 헤매는 운명이니까요.
아, 혹시 여러분 중에는 도리어 제가 한 말로 저를 꾸짖으며, 그 상상이니 습관이니 관습이야 말로 ‘친구’의 실체가 맞다고, 그럼 대체 뭘 더 기대했던 거냐고 호되게 지적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원료나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를 우리는 ‘우정’이라고 부르며, 그런 연결 고리들이 얽히고 꼬이고 짜여서 문명을 이루고, 역사를 이루고, 문화를 이루고, 사회를 이루고, 개인들을 이루는 것이라구요. 그 연대의 모든 혜택은 다 누리면서도 정작 아무 연결고리 역할도 하지 않는다면 배은망덕하고 무책임한 일이 아니냐는 겁니다. 네, 말씀하신 그런 의미에서라면 저는 분명 실패자가 맞을 겁니다. - 이 말이 꼭 듣고 싶으신 거라면요. - ‘친구’를 액면 그대로 ‘친구’라고 생각했던 실패자지요. 그리하여 수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소위 성공한 여러분 같은 사람이 아니라, 애초에 단 한 명의 친구도 가질 수 없었던 그런 철두철미한 실패자입니다.
자, 그럼 이쯤에서 여러분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 하나가 있을 겁니다. 저에게는 매우 익숙한 패턴이라서요. 말씀해보세요. 저에게 ‘연인’은 없었냐구요? 아니, 더 정확히 질문의 뉘앙스를 살리자면, ‘친구는 그렇다 치더라도 연인은 있었을 게 아닌가?’라는 표현이 더 적당하겠네요. 사실 ‘연인’에 대해서라면 ‘친구’보다는 얘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사랑’에 대해서라면 - 그 난해함이 역겨운 수준이기 때문에 – 손끝 하나 대고 싶지 않지만, ‘연인’은 최소한 상식적으로 규정할 수는 있는 - 성적 애정이나 욕망, 성관계 등의 - 근거가 있으니까요. 그 근거에 근거를 두고 말씀드리지요. 네, 저는 평생 단 한 명의 연인도 없었습니다.
역시나 놀라셨나요. 그런데 어쩐지 아까만큼 놀라지는 않으시는 것 같군요. 여전히 미심쩍긴 하지만 최소한 저를 불순분자로 보지는 않으시네요. 아마도 사람들은 으레 제게 무슨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겠거니 지레짐작하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의 학대라든지, 부모님 간의 불화라든지, 이루지 못한 짝사랑이라든지, 성적 폭행이나 충격이라든지, 성에 대한 신경증적 혐오라든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니 엘렉트라 콤플렉스니 같은 것들이라든지, 성 정체성 혼란이라든지 등등등. 그럴 만하죠. 여러분의 속단은 배려 깊고 정당합니다. 저야말로 이런 얘기를 멋들어지게 해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에 이런 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한 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의 매력과 가치가 올라가고, 신비와 비운이 더해지고, 다른 사람들의 이해와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하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에게는 아무런 사연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요. 숨기는 게 아니에요. 쑥스러워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거든요. 제가 누군가를 원한 적도, 누군가 저를 원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럼 별 수 있나요. 이렇게 되는 거지요. 부끄러워해야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금 부끄럽기는 하군요. 제가 그만큼 매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건 분명해진 셈이니까요. 심지어 저를 괴롭히는 사람조차 없었다니까요. 종종 다른 사람을 갈구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들마저도 모두 용케 저를 피해가곤 했습니다. 아마도 저에게는 그런 종류의 매력조차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 누구의 혹은 그 어떤 종류의 욕망도 자극하지 못하는 무색, 무취, 무미의 투명인간 같은 사람.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무색, 무취, 무미인 건 제가 아니라 제가 일으키는 혐오감의 특성이었던 같습니다. 그들은 제 가까이에 다가오기도 전에, 의식적으로 혐오감을 느끼기도 전에, 피한다는 의도조차 없이 본능적으로 저를 피해왔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저는 바글바글 미어터지는 군중들 속에서도 누구와도 옷깃조차 스치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덕에 저는 아무 불편 없이, 아무 방해 없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딱히 불만조차 가질 이유가 없었죠.
아, 그래요. 그럼 의례히 또 다음 질문이 이어지겠군요. 이것 역시 익숙한 수순이라서요. 거의 틀림없는 의식의 흐름이죠. 그럼 성적 욕구는 어떻게 처리했냐는 거죠? 연인은 아니더라도 어쨌거나 상대는 있었을 게 아니냔 말이죠. 저는 대답을 망설이게 됩니다. 언젠가 병원에서 제가 같은 질문에 – 의료적인 이유로 - 대답했을 때 그 간호사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거든요. 놀란 표정이 아니라 믿지 않는 표정이었죠. 자신을 놀린다는 생각에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어요. 제 생각에는 여러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미리 사과드릴게요. 여러분을 불쾌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제게 섹스 상대 같은 건 없었습니다. 저는 누군가와 잠자리를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여러분, 지금 허공을 향해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고 계신가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따져보고 싶으세요. 평생 친구가 없는 것과 섹스를 해 본적이 없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심각한 건지 헷갈리기도 하실 거구요. 화가 치밀어 올라 세차게 혀를 차는 분도 계시겠군요. 이해합니다. 그럴 만하죠. 섹스야 말로 인생 그 자체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섹스 없는 인생이란 전쟁 없는 역사나 마찬가지라고 말입니다.
저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아니, 정말 해보고 싶었다기 보다는 한 번쯤 해봐야 하지 않나 싶었죠. 욕구보다도 의무감과 자격지심 때문에요. 누구나 하는 평범한 경험을 전혀 해보지 못했다는 건 – 설사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른다고 해도 - 상당히 불편한 일이거든요. 소위 사람 구실이라는 걸 하려면 다른 사람들과 어느 정도 구색은 맞춰야 하는 법이죠. 눈 딱 감고 아무하고나 한 번 해볼까. 어쩌면 거기서부터 내 인생도 제대로 돌아갈지 모르지. 그런 생각까지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만큼이나 거북하고 번거로운 일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온전한 인격을 자위 도구로 이용하려면 거의 초인적으로 발기한 욕정과 범죄자와 같은 뻔뻔함이 있어야 하는데 저에게는 그 두 가지가 모두 부족했습니다. 솔직히 전 지금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아요. 단지 성적인 만족을 위해, 혹은 내밀한 애착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정말 사람들은 그 정도로 절박하고 또 치사스러운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