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니엄 (3)

by 곡도





아, 혹시 ‘그렇게까지’라는 표현이 여러분에게 거슬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아냥대는 말투는 차치하고라도 전형적인 ‘방어적 공격’이 아니냐는 거죠. 꼭 여우의 신포도 처럼요.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볼까요. 혹시 제 몸에 어떤 이상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거죠? 호르몬 불균형이나 성기능 장애, 불감증 같은. 하긴 그게 가장 납득하기 쉬운 설명이긴 하죠. 육체만 건강하면 욕구는 저절로 샘솟게 되어 있고, 욕구가 차오르면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테니까요. 보통 그게 정설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제 몸에는 아무 이상도 없었다는 걸 분명히 밝혀두겠습니다. 그렇다고 둔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예민해서 곤란할 지경이었죠. 그럼 혹시 둔감했던 건 정신 쪽이 아니었느냐고 물으실 건가요? 혹시 제가 어린애처럼 순진무구했냐는 말씀이세요? 그럴리가요. 저도 여러분과 다름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요. 이 세계 전체를 끊임없이 투과하고 있는 성욕의 방사능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 말입니다. 그건 마치 드넓은 광장 한 가운데 서 있는 어린아이에게 쏟아져 내리는 핵 폭풍과도 같은 형국이죠. 한 존재를 주무르고 뒤틀어버리고 납작하게 짓이겨 버릴 만큼 무지막지한 힘이에요. 그 만연해있는 성적 뉘앙스들, 암시, 이미지, 경고, 농담, 유머, 비밀, 실수, 은유, 회피, 눈짓, 터부, 기만, 강조, 은폐, 폭로, 연대, 경쟁 등등등. 아무런 배려도 보호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무차별적으로 쑤셔대니 어린애가 도무지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그걸 모른 척 하거나 무시하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모두 색광이 되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놀라울 지경이라니까요. 그 정도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과연 사람들이 겨우 이만큼이나마 성에 관심을 가졌을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어쩌면 오래 전에 인간은 멸종해 버렸을 지도 몰라요.

결국 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섹스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자신의 현존을 인증이라도 하듯, 인증이라도 받듯, 누군가와 벌거벗고 뒤엉켜 헐떡거리면서 가랑이를 벌려 성기에 성기를 쑤셔넣고 흔드는 짓거리를, 드러내놓지 않고 숨어서 몰래 해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이 만연해 있는 공공연한 이중생활의 극명한 단절과 뻔뻔함이 제게 울렁증을 일으켰습니다. 어떻게 사람들은 이 극단의 두 생활을 그토록 성공적으로 영위하고 있을까요. 물론 그건 우리 사회가 이 두 세계의 경계를 통제하고 경영하는 데 거의 모든 전력을 다 쏟아 붓고 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단언컨대, 그것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실은 사람들 모두가 실패하고 있거든요. 공식적으로 자신이 성공했다고 믿고 있는 그 순간에도요. 공식적으로 우리가 성공했다고 믿고 있는 그 순간에도 말입니다. 우리는 그저 남몰래 기만하고 버티고 견디다가 결국 실처럼 가느다란 그 경계선 위로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틀림없이, 무너져 내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또 다시 반복하고 또 반복하지요. 마치 영원히 반복할 수 있는 것 처럼요. 만약 매 순간마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국 성공하고 있는 것인가요? 다시 일어설 때가 아니라 오직 무너져 내릴 때의 각각의 모습만이 우리 각자의 개체성을 증명해줍니다.

아, 그런데 여러분은 섹스에서 가장 역겨운 게 뭔지 아세요? 아니, 사실상 유일하게 역겨운 점일 텐데요. 아니, 아니, 여러분은 대체 섹스가 왜 역겨운지 아시나요? 섹스는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상대방이 바로 피해자이자 공범이자 증인인 셈이에요. 피해자, 공범, 증인이 있기 때문에 나는 범죄자가 되고, 범죄자가 되기 때문에 이것은 범죄가 되고, 범죄이기 때문에 우리는 죄의식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역겨워지는 거예요. 그런데 더 나쁜 건, 피해자도, 공범도, 증인도, 범죄자도 모두 묵비권을 행사한다는 겁니다. 마치 모두가 한 가족인 것 처럼요. 그래서 재판도 심판도 무의미해지고, 모두가 무죄가 되어 방면되고, 시치미를 떼고 다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근친상간이야말로 공동체의 기원이자 휴머니즘의 근간인지도 모르겠네요.

여자들이 생리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도 그 때쯤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며칠에 걸쳐서 가랑이 사이로 피를 쏟는다니, 처음에는 믿지 않았죠.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았어요.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서요. 은유나 비유, 우화, 뭐 하여간 그런 걸줄 알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말끔하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성인의 사타구니 안에 피에 젖은 기저귀가 채워져 있다니, 가당키나 한 얘기인가요. 하지만 결국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았을 때 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알고 있던 인간성 전체가 부정되는 느낌이었어요. 마치 평행의 세계가 뒤집어져서 수직의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삶이란 수평으로 태어나 수직으로 떨어져내리는 것인가요. 다시 수평으로 죽을 때까지요? 아니면 교차되는 거대한 격자 무늬의 하나가 될 때까지?

물리생물학 세계 안에서 물리생물학 세계로서 존립하는 유기적 기계인 신체가 얼마나 기능적으로 그러니까 기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본질과 운명에 대해서요. 알고 보니 모든 게 다 연결되어 있더라구요. 욕망, 섹스, 피,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나 자신까지, 모두 같은 구멍에서 벌어지는 일이더군요. 그러자 갑자기 삶이 추잡하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졌습니다. 모든 게 감쪽같은 사기극이었어요. 인간이란 도축되고 껍질이 벗겨져 더 이상 어떤 동물인지 알 수 없게 된 고깃덩어리인가요.

그 때부터 저는 포르노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쨌거나 이 세상 이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참고할 만 한 건 그것뿐이었어요. 저는 평범한 것에서부터 괴상한 것, 괴이하다 못해 기괴한 것 까지 닥치는 대로 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일반 포르노는 아이들의 천진한 장난처럼 보일 만큼 악랄하고 음울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음란이나 타락이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워서 돌연 형이상학적인 영감을 줄만한 것들이었죠. 제가 음탕한 문제아였다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저는 유별난 모범생이었어요. 그게 뭐가 됐든 잘해보고 싶은 의욕이 넘쳐나는 모범생이요. 막상 일이 닥쳤을 때 당황하거나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는 게 끔찍이도 싫었습니다.

문제는 욕망에는 그럴 듯한 형상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보고, 다가가고, 만지고, 움켜쥐고, 매달리고, 멀어지거나 피할 수 있는 그런 적절한 형상이요. 그런 점에서 대부분의 포르노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절한 형상을 제공합니다. 제법 훌륭한 교육용 시청각 자료라고 해도 될 정도죠. 도대체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우리의 성교육과 비교해보면 더더욱 그렇다니까요. 종종 여성의 대상화나 섹스의 비인격성, 교감의 부재 같은 문제들이 지적되곤 하지만, 그건 한가한 소리일 뿐이에요. 그나마 그런 형상마저 없으면, 설사 부당하고 왜곡되고 사악하고 심지어 유해할지언정 그런 형상마저 없다면, 욕망은 전지전능하고 비인간적인 물신숭배의 악령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사물처럼 늘 발기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냉담하고 무자비한 물신숭배자보다는, 천박한 열정과 옹졸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변태가 더 낫지 않나요. 그러니까 포르노를 보는 것은 자신을 신뢰하고 또 이 세계와 화해하기 위한 나름의 건전한 방편이라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군요. (물론 포르노가 여자들에게 다소 가혹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남자들이 남자 포르노 배우에 대한 열등감에서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고려해보면 나름 적절한 인과응보가 아닌가 싶군요.)

저는 포르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원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요. 다만 딱 한 가지, 욕망만은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마치 결벽증 환자가 독한 소독약으로 철저하게 씻어낸 것처럼 포르노에는 욕망의 자국조차 남아있지 않으니까요. 얼룩 하나 없이 새하얗고 반들반들한 것, 그것이 바로 포르노입니다. 포르노 배우들은 마치 진짜 섹스처럼 성기에 성기를 집어넣고 흔들어대지만, 사실 그건 섹스가 아니에요. 그것이야 말로 지난한 노동이죠. 그들은 노동자를 연기하고 있는 노동자, 아니, 좀 더 그들이 받아 마땅한 존경을 표하자면, 그들은 금욕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순결한 수도사들이자 노동시장의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용감한 투사들인 겁니다. 그래서 아무리 저질인 포르노에서조차도 숭고함이 감지되고, 끝난 뒤에는 일면 숙연해지는 것이죠. 만약 포르노를 보고 욕망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유아성애자같은 변태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합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저는 어느새 섹스가 – 정확히 말하면 섹스라는 개념이 - 뻔하고 지겨웠습니다. 제가 피해자이자 공범이자 증인이자 범죄자인 스릴러가 더 이상 재밌어 보이지 않았어요. 피해자이자 공범이자 증인이자 범죄자인 누군가를 상대해야 하는 것도 난감하기만 했구요. 거기다 천성이 게으른 저는 막상 실행에 옮기려니 도무지 귀찮아서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샤워조차도 성가셔 하는데, 섹스는 샤워보다, 그러니까 옷을 벗고, 속옷을 벗고, 몸을 물에 적시고, 머리를 감고, 머리를 헹구고, 몸에 비누칠을 하고, 몸을 씻고, 수건으로 몸을 말리고, 속옷을 입고, 다시 옷을 챙겨 입는 이 일련의 행위보다 천 배 만 배는 더 번거로운 일일테니까요. 아휴, 생각만 해도 벌써 지치고 지긋지긋해지네요.

네, 게으름이야말로 제가 섹스를 하지 못한 진짜 이유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겁고 고집스러운 엉덩이에 깔려 결국 욕망마저 시들해지고 만 것이죠. 그러고도 남은 찌꺼기는 코를 풀 듯 간단하게 처리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오히려 어떤 범죄에도 연루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피해자도, 공범도, 증인도, 범죄자도 아니라는 사실에, 피해자도, 공범도, 증인도, 범죄자도 상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저는 스스로 사리분별 없이 마냥 결백하고 떳떳했습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과연 본연의 성적 욕망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럽군요. 욕망이란 문란하고 혼탁하고 오염되어 있는데다가 환불조차 되지 않아서 언제나 부당하게 손해 보는 기분이 들거든요. 섹스는 마치 대가를 받지 못하는 노동과 같고, 쾌락이라는 보상은 그저 품위유지비 정도 밖에는 되지 않지요. 뭐, 임신이라도 하려는 거라면 모르지만, 그건 또 정작 그 노동에 비해 터무니없이 과도한 보상이거든요. 대부분의 로또 당첨자들의 말로가 별로 좋지 못했던 걸 떠올려 보면 이 역시 알만한 일이죠. 공짜에는 언제나 신성함이 있고 그렇다면 임신이야 말로 끔찍할 정도로 신성하니까요. 차라리 일 한 만큼 공정하게 돈을 받고, 또 돈을 받은 만큼 성실하게 섹스를 하는 포르노 배우가 되었다면 저도 크게 성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무엇이든 될 수 있었을 텐데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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