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쯤 되면 여러분은 제가 평생토록 외로웠을 거라고 확신하시겠지요.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섹스도 없었으니 뻔한 노릇이라구요. 지극히 마땅한 판단이시죠. 하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자면 저는 평생 단 한 번도 외로웠던 적이 없습니다. 아하, 여기저기서 콧소리가 들리는 듯 하군요. 비웃음과 분노가 섞인 거친 콧소리 말이에요. 믿을 수 없으시다구요? 제가 지독한 거짓말쟁이이거나 역시나 일종의 사이코패스가 분명하다구요? 외로움이 없다면 인간이라고 할 수조차 없다는 말씀이시죠? 이런, 너무 화내지 마세요. 저는 외로움을 비하하려는 게 아닙니다. 외로운 사람들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에요. 자신이 외롭지 않다고 선언하는 것이 외로운 누군가를 상처 주는 일이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인간은 누구나 외롭죠. 모든 인간이 그렇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에요. 저 역시 외롭습니다. 그건 말하자면 실존적인 외로움이죠. 외로움과 존재는 결국 같은 말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도 여러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외로운 것과 외롭다고 느끼는 건 전혀 다른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외롭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다거나, 외롭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한다니, 저로서는 바로 이 부분에서 한 대 세차게 얻어맞은 것처럼 나가떨어지고 맙니다. 도대체 이해가 가지를 않아요. 터무니없는 비약이 아닌가요? 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는 거죠? 이치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적절한 해결책도 아니잖아요. 외로움은 감춰지거나 줄어들거나 사라지거나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에요. 존재가 감춰지거나 줄어들거나 사라지거나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요. 혹시 외로움과 외로움이 만나면 더 존재하거나 덜 존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대체 어느 쪽을 원하시는 거죠?
만약 여러분이 옳고 제가 틀린 거라면, 그러니까 외롭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고 또 외롭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게 마땅한 거라면, 저의 외로움은 지독한 나르시즘에 빠져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완전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듯, 외로움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어 버렸는지도요. 그리하여 자위적이며 불감증에 불임인 무성이 되어버렸을까요. 뭐, 그것도 일종의 장애라면 장애겠죠. 하지만 무엇이 병변이고 무엇이 장애인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현상인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도 여러분처럼 저 자신의 모든 불완전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존재일 뿐인데요. 다만 저는 텍스트가 없는 마침표가 그렇듯 외롭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세상에 냉담하며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조차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크나 큰 오해입니다. 이 부분만큼은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싶어요. 만약 그랬다면 저는 이 글조차 쓰지 않았을 테니까요. 사람과의 관계는 불필요하고 심지어 부적절한데다가, 그래요, 때로는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고 해서 사람을 혐오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결코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인류의 문제에 무신경한 사람이 아니에요. 세계가 멸망한 후 최후의 한사람이 되어 텅 빈 세상을 둘러보면서 미소 짓기를 꿈꾸는 그런 인간이 아니란 말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공감과 연민 속에서요. 그에 비하면 성별이니, 인종이니, 국적이니, 장애니, 성적 취향이니, 외모니, 계급이니, 빈부니, 학력이니, 나이 따위의 조건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요. 여러분은 믿지 않으시겠지만, 속세에서 저를 알았던 사람들은 제가 예의바르고 너그럽고 친절하다고 말했었답니다. 정말이에요. 중년이 되어서도 저는 상대가 누구든 목소리를 높여 ‘고맙습니다’라고 외치며 허리를 꾸벅 숙이곤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반사회적’이라는 명예만큼 저에게 부당한 평가는 없습니다. 저만큼 보수적이고 순종적이며 협조적이고 겁이 많고 온순한 사람도 없다니까요. 만약 인류를 위해 죽어야 한다면, 정말 꼭 그래야만 한다면, 그래요. 저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자신이 선하다거나 정의롭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건 아닙니다. 아니, 공정한 기준에서 저는 분명 선하고 정의롭습니다만, 저의 선함과 정의로움은 실제로 제가 선하고 정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상당부분 편견과 편애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편견과 편애의 결여’는 - 더 정확히 말하면 ‘편견과 편애를 할 수 있는 능력의 결여’라고 해야 할 텐데 - 그 뉘앙스와는 다르게 실상 지독한 악덕에 가깝습니다. 편견과 편애 없이는 소신과 애정도 없으며 그것을 승화시키거나 극복할 수도 없을 테니까요. 결벽에 도취되어 최후의 모순까지, 그러니까 모든 걸 남김없이 제거해버리기 보다는 소신과 애정을 관통하는 모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조율하고 성취하는 힘, 그것이야말로 바로 어른의 성숙함일 텐데 말이죠. 그것이 바로 제가 속세에서,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평생 동안, 철없는 어린애, 발달장애아나 미숙아에 불과한 이유입니다.
아, 저는 지금 제 자신을 비하하는 게 아닙니다. 제 자신에게 불만이 있거나 제 자신이 불편한 것도 아니에요. 그저 아무 유감없이 내린 마땅한 평가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세상에 대해서도 아무 유감없이 마땅한 평가를 내리곤 합니다. 예를 들면 세상이 최신 장난감처럼 유치하고 조잡해 보이는 건 사실이거든요. 제게는 마치 세상 사람들 모두가 어떻게든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보려고 애쓰는 어른들인 것만 같습니다. 그들은 딱히 재미있지도 않으면서 짐짓 동심이 남아있는 척 허세를 부리죠. 그럴 때면 그들은 모두 단 한 사람인 것처럼 주도면밀하고 또 단 한 사람인 것처럼 뻔한 얘기를 되풀이 합니다. 무리도 아니에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각각이고 심오하고 복잡하지만, 동시에 하나같이 제각각이고 심오하고 복잡하게 단일하니까요. 저는 종종 모두의 얼굴이 똑같이 생겼다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실제로도 사람들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해요. 속세에 있을 때는 이것이 엄청난 골칫거리였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만큼 무례한 일도 없거든요. 하지만 사람들 모두가 둥근 얼굴에,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가 아니던가요.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한결 기억하기 쉬워집니다.) 거기에 이름까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과 이름까지) 제대로 일치시킨다는 건 정말이지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중 한 명을 사랑하고 또 다른 한 명을 혐오할 수 있을까요. 가장 훌륭한 사람과 가장 저열한 사람 사이에도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훨씬 더 많은데요.
어쩌면 저는 세상 사람 모두를 단 한 명의 사람인 것처럼 여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그들이 일인다역의, 혹은 다인일역의 배우들인 것 처럼요.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언제나 서로의 팔짱을 꽉 끼고 있거든요. 너무 얼기설기 얽혀 있어서 어느 것이 자신의 손인지 헷갈릴 정도죠. 과연 그 팔짱을 풀 수는 있는 것인지, 팔짱을 풀면 뿌리 뽑힌 잡초처럼 돌연 시들어버리는 건 아닌지, 애초부터 우리는 탯줄이 아니라 팔짱을 낀 채로 차례차례 태어난 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들은 누군가 말을 하면 함께 메아리를 만들고, 누군가 걷기 시작하면 함께 발을 구릅니다.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말이 여기에 딱 어울리겠네요. 그건 50 + 50 = 100이라는 게 아니라 100 + 100 = 100이라는 뜻이죠.
사람들은 먼 수평선으로부터 부풀어 오른 밀물처럼 시시각각 밀려오고 또 밀려나갑니다. 분명 그것은 장관이지만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망설여지는군요. 징글징글하다는 말도 꼭 적당하지는 않구요. 지긋지긋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은, 굳이 말하자면, 그러니까 그건 바로, 아니,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잘 모르니까요. 저는 늘 어안이 벙벙한 채 익숙한 이질감과 이질적인 익숙함 속에서 그 풍경을 바라볼 뿐입니다. 감히 그곳에 발을 담글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아니, 아니에요. 이런, 이건 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제가 마치 사람들에게서 짐짓 한 발자국 물러나 있는 것처럼, 마치 이 모든 것에 초연한 것처럼, 마치 전지적 3자라도 되는 것처럼 되는 대로 꾸며대고 있네요. 그건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솔직히 말해서 저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저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차이 역시 구분하지 못합니다. 저 역시 그들처럼 둥근 얼굴에, 눈이 두 개, 코가 하나, 입이 하나 잖아요. 아니, 설사 제가 눈이나 코나 입이 없다고 해도, 혹은 눈이나 코나 입이 너무 많다고 해도, 저는 여전히 여러분 중의 한명이며 가장 평균적인 한 명일 겁니다. 저 역시 여러분과 팔짱을 끼고서 다함께 메아리를 만들고 힘차게 발을 구르죠. 먼 수평선에서 밀물처럼 쓸고 내려왔다가 다시 먼 수평선으로 물러가며 여러 갈래의 물길을 만들구요. 아, 제가 이걸 장관이라고 했었나요? 헛소리. 다 헛소리에요. 이 세상은 올라가서 관조할만한 한 조각의 땅덩이조차 없는 거대한 바다입니다. 온통 사람들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끝없는 수평선이지요. 그 열기와 소음이 우리의 머리통 속에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모든 구멍에서 요란하게 뿜어져 나옵니다.
그러다가 혼자가 되면, 아, 그런데 땅 한 조각 없는 이 끓어오르는 바다에서 어떻게 혼자가 될 수 있을까요? 좌우 사방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파도치며 물을 끼얹고 거품을 일으키고 있는데요. 저는 차라리 물속으로 잠수해야만 할 겁니다. 네, 쉽지는 않겠죠. 사람의 몸은 저절로 물 위로, 사람들 속으로 떠오르게 마련이니까요. 숨을 참고 몸을 뒤틀고 자맥질을 해야 할 겁니다. 멀리 가지는 못할 겁니다. 오래 가지도 못할 거구요. 기진맥진해질 겁니다. 하지만 해볼 수는 있어요. 해볼 수는 있습니다. 아래로, 아래로, 더 아래로. 햇빛도 어둠도 소리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부력과 중력 사이에 생긴 우연한 틈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