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곡도 Jun 27. 2024

영혼의 카니발



Carnival of Souls 영혼의 카니발 (1962)





나는 언제부터 살아있었을까.


(이것은 내가 언제 죽을 것인가 만큼이나 커다란 신비다.)


나는 언제부터 살아있었을까.


아마도 기억이 남아 있는 그 순간부터. 


그럼


그 기억 이전에 나는 어디 있었을까.


어떤 모습으로, 누구이거나, 무엇이었을까.


죽음도 마찬가지일까.


나는 언제부터 죽어있었을까.


기억이 남아 있는 그 순간부터.


그럼


그 기억 이전에 나는 어디 있었을까.


어떤 모습으로, 누구이거나, 무엇이었을까.


만약 삶과 죽음의 사이라는 게 있다면


우리는 그곳에 영원히 머물고 싶을 것이다.


삶도 죽음도 나를 잊어버린 그곳에서는


살아있는 척도 죽어있는 척도 


할 필요가 없으니까.


난 그저 그늘진 회색빛 망각 속을 느릿느릿 떠돌며


한없이 게으르고 게으르고 게으르고 싶은데.


그러나  살아서나 죽어서나 변함없이 


치열한 기억은


결국 우리의 젖은 머리 끄댕이를 휘어잡고서


 삶과 죽음의 현존으로 우리를 끌어올리고 만다.


그러니 하는 수 없지. 우리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진실과 거짓 앞에


눈을 부릅뜰 수 밖에.


꼭 눈꺼풀이 잘려나간 물고기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리플리 : 더 시리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