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노베첸토
공연장소 : 예스24스테이지 2관
공연기간 : 2025년 3월 19일 ~ 2025년 06월 08일
관람시간 : 2025년 4월 9일 오후 4시
꽤 오래전에 영화로 이 작품을 접한 적이 있다. 영화 제목은 '피아니스트의 전설'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재미있었다기보다는 흥미롭게 봤던 것 같다. 나는 이번에 이 연극 소식을 접하면서 아, 그 '피아니스트의 전설'이 기존에 있던 연극을 영화로 만들었던 거구나, 지레짐작했다. 아마도 영화 자체에 연극적인 요소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정된 공간, 단출하고 단순한 등장인물들, 추상적인 이야기 구조. 그런데 그것은 나의 섣부른 착각이었다. 연극을 영화화한 것이 아니라 영화를 연극화한 것으로, '노베첸토'는 '피아니스트의 전설'을 연극으로 재창작한 것이다. 솔직히 사전에 그런 줄 알았다면 나는 이 연극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영화를 연극으로 만드는 게 싫다.
그 이유는 첫째, 연극이 영화의 유명세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괜찮은 소재와 이야기를 이미 제대로 완성된 요리에서 손쉽게 덜어와서 그저 거저먹으려는 비겁하고 안이한 태도 때문이고, 셋째는 영상이 제공하는 침묵과 미학을, 그 영상이 있어야만 비로소 완전해지는 감성과 이야기를 제대로 연극으로 구현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말했다시피 다른 작품을 재창작하는 것은 창조를 창조하는 것으로, 기존의 작품을 만들 때 보다 더 큰 목적의식과 능력과 재능이 필요한 법이다. 나는 영화를 재창작한 연극 중에 기존 영화보다 더 뛰어난 연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사실 패러디나 풍자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이미 잘 완성된 영화를 뭐하러 연극으로 다시 만든단 말인가?
이 '노베첸토' 역시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영화가 가지고 있던 재치와 미학은 사라지고, 단지 그 아이디어만을 가볍게 갈취했을 뿐 내용은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 그 텅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홀로 무대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배우가 있었다. 배우는 자신의 매력으로 모든 것을 상쇄하려 하지만 결국에는 그저 자신의 매력을 공산품처럼 소모할 뿐이다. 이 연극의 포인트는 노베첸토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명의 배우가 빈약하기 그지없는 택스트, 필연적인 지루함, 냉담한 관객과 벌이는 치열한 싸움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가혹한 임무이기에 꽤나 비극적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희곡은 연극 무대에 올릴 수준이 아니다. 이 희곡은 이야기의 의미도, 정서도, 철학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놀랍게도 신파적이지조차 않다. (이미 소재 자체가 지극히 신파적이어서 그저 툭 건드려주기만 해도 충분한데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인물들인데, 노베첸토를 포함해서 화자인 '팀 투니'까지, 그들은 인격적이지도, 매력적이지도, 상징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으며, 그들의 우정에 대해서도 별로 공감할 수가 없다. 심지어 쌓아 올려진 다이너마이트 위에 걸터앉아 자신의 삶 전체를 회상하는 노베첸토의 마지막 토로조차 진부하고 지루하기 그지없다. 차라리 노베첸토가 벙어리였다면, 그렇게 아예 침묵했다면, 우리는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피아노 연주마저도 크게 인상적이거나 마음에 와 닿지 않았는데, 연주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이 연극 작품 속에 잘 스며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주섬주섬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별 값어치 없는 잡동사니들을 두서없이 탁자 위에 쏟아놓은 것 같은 느낌, 그것이 이 연극에 대한 나의 총평이다.
예전에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류의 얘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쟁점을 단순화하고 명확히 하기 위한, 지극히 통계 편의적인 발상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 세계에 정말 100명 밖에 없다면, 정말로 우리의 삶은 그만큼 단순하고 명확해질까. 무한히 드넓고 무한히 깊은 바다의 표면 위에 거품처럼 떠 있는 배의 크기가 과연 우리의 관계와 삶과 죽음의 의미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줄까. 노베첸토가 내리지 못한 육지에는 과연 진짜 사람들이, 진짜 삶이, 진짜 죽음이 있었을까. 어쩌면 육지는 거대할 뿐, 역시나 바다 위에서 흔들리는 작은 배가 아닌가. 과연 자신의 배, 자신의 세계와 함께 바닷속으로 영원히 가라앉기를 선택한 노베첸토의 결정은 용기였을까 비겁함이었을까. 사실 우리 누구도 그것을 평가할 자격이 없다.
PS. 이 연극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커튼콜이었다. 연극이 끝나는 순간 갑자기 관객석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카메라를 (큼직한 대포 카메라도 꽤 많았다) 꺼내드는 모습에 나는 기절 초풍했다. 사진을 찍는데 몰두하느라 배우에게 박수를 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사실 배우에게는, 피사체 외의 배우 자체에게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와, 그것은 정말이지 기이하고도 민망한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