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굿피플

by 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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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 굿피플

공연장소 : 씨어터 조이

공연기간 : 2025년 7월 11일 ~ 2025년 7월 27일

관람시간 : 2025년 7월 13일 오후 3시




연극은 영화보다 정보의 양이 - 주체 측이 제공하는 정보의 양뿐만 아니라 관객이 제공하는 정보의 양 역시 - 현격히 적은 데다가 또 관객 개인이 느끼는 편차 또한 너무나 크기 때문에 직접 보고 판단하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 그래서 연극 10편을 관람했을 때 마음에 드는 연극 하나를 (결코 두 개는 아닌) 건질까 말까 할 정도로 승률이 낮다. 그러니 시답지 않은 연극을 보겠다고 티켓을 사들고 왕복 5-6시간을 들여가며 오고 가는 그 시간, 돈, 수고를 생각하면 나의 분노를 어느 정도 이해해 주리라고 믿는다. 내가 이렇게 연극 감상을 쓰는 이유도 한 편의 좋은 연극을 소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9편의 연극으로 생긴 화병을 풀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다. 직접 예매한 내 손목아지를 자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 감상평은 독해지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 연극 감상평을 지속적으로 읽어온 사람이라면 내 인격 모독적인 언사에 질릴 만큼 질리기도 했을 것이다. 이 인간은 그저 남을 까고만 싶어서 환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되돌아보면 2025년 들어서 좋게 평가한 연극이 단 한편도 없으니 분명 심각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오늘은 그럴 염려가 없다. 나는 오늘 칭찬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이 연극은 깜짝 놀랄 정도로 재미있다.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메시지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휘향찬란한 공연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것 없이도 재미있으니 더 즐거운 것이다. 150분의 짧지 않은 공연 시간 동안 나는 잠시도 지루하지 않았고 내 입에는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나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이 연극의 가장 큰 장점은 희곡 이상의 과욕이나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재해석이라는 미명하에 깜냥도 재능도 없는 창작자들이 희곡을 난도질하는 행태를 많이 보아왔다. 희곡을 이해하지 못해서, 혹은 희곡에 대한 무지와 무능력을 감추기 위해서, 혹은 자신이 그 희곡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해서 말이다. 마치 작가와 자존심 대결이라도 하는 듯이, 내가 네 작품을 선택하긴 했지만 네 작품이 정말 좋아서 그런 건 아니며 솔직히 형편없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그래도 넓은 아량으로 너에게 기회를 주는 의미로다가 나의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네 글을 진짜 예술로 탈바꿈시켜 주겠어, 뭐 이런 태도로 달려드는, 마치 강간범과도 같은 공연에 나는 진저리가 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한편 이런 몰염치한 태도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 희곡이 내포하고 있는, 혹은 그 희곡이 내포되어 있는 세계상과 가능성, 그리고 자신의 능력의 한계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내가 어떤 놈인지 똑똑히 보여주지, 라며 달려드니 한심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란 순전히 자기 과시 욕구로 예술가가 되었으며 오로지 그것을 원동력 삼아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인 만큼 그것을 억누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재능이란 자아 과잉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억누르고 조율할 수 있는 자제력이며, 그것이 아마추어와 프로의 결정적인 차이일 것이다. 미술의 역사에서 광인 혹은 또라이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고흐가 자신의 작품에서만큼은 놀랄 정도로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며 학구적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쉽게 간과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절제의 재능이 빛난다. 한마디로 적절하다. 이 공연은 이 희곡 원작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한계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충실하게 구현했으며,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이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전력으로 집중함으로써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는 점은 원작 이상으로 웃기려 하지도, 원작 이상으로 교훈을 주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인데,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한국에서는 (난 한국밖에 모른다) 매우 드문 일이다. 예상컨대 이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정도를 가늠하고 수위를 조절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선명하고 세심하며 다정한 작품이 만들어졌다. 특히 더운 여름날 보기에 좋다. 이 희곡의 원작자가 이 공연을 보았어도 충분히 만족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감탄한 건 배우들이다. 나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극의 승패를 좌우하는 건 배우를 선택하는 제작자의 능력과 의지에 달렸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정말 단 한 명의 배우도 부족하지가 않았고 모두가 기대 이상이었다. 한 분 한 분 다른 배우로는 대체가 안될 것 같다고 느껴졌을 정도다. 솔직히 첫 장면에서는 주인공인 마가렛이 좀 어색하게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곧 몰입하게 되었고, 그녀의 편이 되었으며, 그녀와 함께 웃고 울었다. 확신하건대 연극이 끝날 쯤에는 관객들 모두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의 인물들, 사정과 상황들은 보잘것없고 소소하다. 딱히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이 시시하기 그지없다. 이 작품에는 웅장한 이야기나 사명, 대단한 연설이나 웅변은 없다. 말하자면 지극히 소시민적이다. 딱 우리들 자신처럼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탁 까놓고 말해서 오이디푸스가 우리를 대변할 수 있는가? 아니면 햄릿이? 파우스트가? 아니, 그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중력의 영향을 벗어나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어마어마한 히어로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중력을 이기지 못해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우리에게는, 입만 수면 위로 동동 뜬 채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넋두리나 하루 종일 떠들어대고 있는 우리에게는, 때로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우리 수준의 인물들이 나오는 작품이 필요하다. 이 작품은 우리 자신의 비극을 과장하지도, 우리 자신의 희극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대중성이란 이런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이 연극의 본질은 이 인물들의 사정이나 벌어지는 사건들이 아니다. 우리 중 누구의 어떤 면면의 이야기를 잘라 붙여도 아무 상관이 없다. 이 작품이 정말 집중하고 있는 건 바로 일상 언어의 결이다. 그 점이 나를 정말 즐겁게 했다. 우리가 우리를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서로 소통하기 위해 신중하게 또 때로는 무심코 선택하는 단어와 표현의 결. 대단한 문학 작품 이상으로 우리 매일의 일상 언어는 얼마나 미묘하고 또 복잡한가? 그 결들 사이사이의 행간, 결들이 만들어 내는 함의, 그 결들 아래 숨어 있는 진의, 그리고 그 결들이 서로 얽히고 꼬이면서 펼쳐지는 소통과 불통, 오해와 은폐의 심리 게임, 조사나 접속사 하나만 바꿔도 치명적으로 엇갈리는 언어의 희비극. 그러나 우리는 이 어려운 것을 단번에 훤히 이해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짓을 매일매일 하고 있으며 이 점에 있어서 우리만한 전문가도 없기 때문이다. 서로 끝없이 나불거리면서 드러내고, 드러나고, 숨기고, 비호하는 비루하고도 끈끈한 자기 자신의 모습에 관객들은 웃고 또 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 넘쳐나는 수다 속에 가려져 있는, 혹은 수다로 가리고 있는, 작은 알갱이 같은 각자의 단단한 침묵 또한 잘 이해하고 있다.

요즘 영화나 연극, 소설 작품들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으로 바닥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모든 것 선택할 수 있으며, 무한히 자유롭고, 그 어떤 한계도 없는 것처럼, 그래서 끝없이 추락하고, 쉽게 타락하고, 필요하면 살인하고, 속이고, 배신하는 것처럼 그린다. 그러나 그건 최소한 소시민들에게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내가 너의, 네가 나의 한계가 아닌가? 그리하여 우리는 '나와 너'라는 서로 단단하고 얕은 바닥을 갖고 있지 않은가?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지만, 너는 좋은 사람이 아니지만, 우리는 좋은 사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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