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해부학 (4) - 서문 시작

로버트 버턴

by 곡도


다운로드 (10).jpg [밀레의 만종에 대한 고고학적 회상] Salvador Dal (1935)




( 역자 - 라틴어는 명조체로 진하게 표시합니다. )





데모크리토스⟦1⟧ 주니어가 독자에게.



친절한 독자여, 당신은 이 공공의 무대에 이처럼 무례하게 끼어들어 세상의 눈앞에 자신을 드러내며 남의 이름을 사칭하는 이 기괴하고 가장된 배우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몹시 알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였듯이, 내가 먼저 원하지 않으면 나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누가 나에게 강요할 수 있습니까? 나는 자유인으로 태어났으니 말할지 말지를 스스로 택할 수 있습니다. 누가 나를 강제할 수 있습니까? 만일 제가 재촉을 받는다면, 플루타르코스⟦2⟧에 나오는 이집트인이 자신의 바구니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굳이 알려고 드는 호기심 많은 사람에게 한 것처럼 기꺼이 대답하겠습니다. 덮여 있는 것을 보면서 어찌 숨겨진 일을 캐묻습니까? 그것이 덮여 있었던 까닭은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숨겨진 것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 내용이 당신의 마음에 들고 또 당신에게 유익하다면, 달 속의 사람이든 당신이 원하는 누구든 그를 저자로 여기십시오. 저는 알려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것은 제가 굳이 할 필요가 있는 것보다 더한 일이지만, 이 사칭한 이름과 표제와 주제에 대하여 그 까닭을 밝히겠습니다. 먼저 데모크리토스⟦1⟧라는 이름에 관하여 말하겠습니다. 혹시라도 그 이름 때문에 누군가가 속아서, 풍자문이나 비방문, 어떤 우스꽝스러운 논고나 기괴한 주장, 혹은 지구의 운동이나 무한한 세계에 관한 역설, 곧 무한한 허공 속에서 우연한 원자들의 충돌로 인하여, 즉 태양 속 미립자들의 우연한 충돌로 그렇게 생겨난 무한한 황무지와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데모크리토스⟦1⟧가 주장하였고, 옛날에 에피쿠로스⟦3⟧와 그들의 스승 레우키포스⟦4⟧가 옹호하였으며, 최근에는 코페르니쿠스⟦5⟧와 브루노⟦6⟧와 몇몇 다른 이들에 의해 다시 되살아났습니다. 더구나 겔리우스⟦7⟧가 말하였듯이, “후대의 저술가들과 사기꾼들이 데모크리토스⟦1⟧와 같은 고귀한 철학자의 이름 아래 수없이 많은 터무니없고 오만한 허구를 퍼뜨려 스스로 신용을 얻고, 그로써 더 큰 존중을 받으려 하는 것”은 언제나 흔한 관행이었습니다. 마치 장인들이 새 대리석 작품에 프락시텔레스⟦8⟧의 이름을 붙여 자기 것이라 하는 것과 같지요.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켄타우로스⟦9⟧하르피이⟦10⟧, 고르곤⟦11⟧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저의 주제는 인간과 인류입니다.

바로 당신 자신이 저의 논의의 대상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맹세와 두려움, 분노와 놀이 속에서의 행위,

기쁨과 방황이 곧 제 글의 내용입니다.


제가 그의 이름을 쓰는 뜻은 메르쿠리우스 갈로벨기쿠스⟦12⟧나 메르쿠리우스 브리타니쿠스⟦13⟧가 메르쿠리우스⟦14⟧의 이름을 쓰는 것과 같고, 또 그리스도교적 데모크리토스 등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이 가면 아래 몸을 숨긴 데에는 몇 가지 다른 사정이 있고, 또 특별한 이유도 있으니, 우리의 데모크리토스⟦1⟧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의 생애를 간략히 정리하여 그 인물을 먼저 밝혀 두기 전에는 그것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을 듯합니다.

히포크라테스⟦15⟧와 라에르티오스⟦16⟧의 묘사에 따르면, 데모크리토스⟦1⟧는 약간 병약해 보이는 노인으로, 본래 성품이 매우 우울했으며 말년에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리고 고독을 몹시 즐겼습니다. 그는 당대에 이름난 철학자로 소크라테스⟦17⟧와 동시대 사람이었습니다. 말년에는 전적으로 학문에 몰두했고 사적인 삶에 전념했습니다. 또한 수많은 뛰어난 저작을 남겼는데 그 시대의 신학에 비추어 보아 위대한 신학자, 숙련된 의사이자 정치가였으며, [디아코스모스]⟦18⟧와 그 밖의 저작들이 증명하듯 탁월한 수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콜루멜라⟦19⟧의 말에 따르면 그는 농업 연구를 매우 즐겼고, 그 주제를 다루는 콘스탄티누스⟦20⟧와 다른 저술가들에게 자주 인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모든 짐승과 식물과 물고기와 새의 본성과 차이를 알고 있었으며, 어떤 이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의 음조와 소리까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그는 모든 방면에 박식한 사람이었고, 보편적 학자이자 열렬한 연구자였습니다. 몇몇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더 깊이 사색하기 위해 스스로 눈을 멀게 하여 노년에 자발적으로 맹인이 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모든 그리스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았고 모든 주제에 관하여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곧, 자연의 온갖 창조물들 가운데 그가 글로 쓰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뛰어난 지성과 깊은 사유를 지닌 사람이었으며, 젊은 시절 더 나은 지식을 얻기 위하여 이집트와 아테네로 여행하여 학식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였습니다. 그는 어떤 이들에게는 경탄의 대상이 되었고 다른 이들에게는 경멸을 받았습니다. 떠돌아다니는 삶을 보낸 뒤 그는 트라키아⟦21⟧의 도시 압데라⟦22⟧에 정착했습니다. 어떤 이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그곳으로 불려 가 입법자이자 기록관, 도시 서기 같은 일을 맡았다고 하며, 또 다른 이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합니다. 어찌 되었든 그는 마침내 도시 교외의 한 정원에 살면서 전적으로 학문과 은거 생활에 몸을 맡겼고, 때로는 항구로 내려가 거기에서 보이는 온갖 우스꽝스러운 광경들을 보고 크게 웃곤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세상과 떨어져 지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데모크리토스⟦1⟧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저와 무슨 관계가 있으며, 어떤 근거로 제가 그를 사칭하고 있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제가 말한 것만으로 저 자신을 그와 비교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무례하고도 오만한 일이 될 것임을 저도 인정합니다. 저는 감히 그와 어떤 비교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보다 삼천 배나 앞선 사람이며, 나는 작은 사람이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 높은 뜻을 품지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에 대하여 이 한 가지만은 말하겠습니다. 이것이 어떤 자만이나 자기 과신으로 의심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조용하고 정적인, 고독하고 은거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대학에서 저는 뮤즈⟦23⟧들과 함께 지내며, 아테네의 크세노크라테스⟦24⟧처럼 거의 노년에 이르기⟦24⟧까지 지혜를 배우고자 하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제 서재에 틀어박혀 지내왔습니다. 저는 유럽에서 가장 번성한 대학, 곧 지극히 존엄한 대학⟦25⟧에서 학자로 지내며 수학하였습니다. 조비우스⟦26⟧처럼 거의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름난 바티칸 그 거처의 빛 아래에서, 나는 삼십칠 년 동안 많은 것과 유익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저 또한 삼십 년 동안 학자로 지내왔고, 그가 누렸던 것에 못지않은 훌륭한 도서관들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게으른 벌처럼, 이처럼 학식 높고 고귀한 공동체의 쓸모없고 무가치한 구성원이 되기 싫고, 또 이처럼 왕성하고 장대한 학문의 터전에 조금이라도 불명예가 될 만한 글을 쓰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신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지만, 격정에 휩쓸린 재능이라고 그가 말한 것처럼, 넘쳐흐르는 재치와 변덕스럽고 안정되지 못한 마음 때문에 어느 한 분야에서 피상적인 솜씨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면서도 모든 것에 조금씩 손을 대어 보고 싶은 강한 욕망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조금씩 아는 사람이되 어느 하나에도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플라톤⟦27⟧이 칭찬하였고, 그를 따라 립시우스⟦28⟧도 승인하고 장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모든 호기심 많은 정신이 새겨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한 학문에 노예처럼 매이거나 하나의 주제에만 머무르지 말고, 백 가지 재주를 지닌 소년처럼 널리 돌아다니며, 모든 배에 노 하나씩 얹듯이 모든 학문에 손을 대 보고, 모든 음식의 맛을 보고 모든 잔을 한 모금씩 마셔 보십시오.” 몽테뉴⟦29⟧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태도는 아리스토텔레스⟦30⟧와 그의 학식 있는 동향인 아드리안 튀르네부스⟦31⟧에 의해 잘 실천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이렇게 떠돌아다니기 좋아하는 기질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같은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새에게마다 짖지만 정작 사냥감을 놓치고 마는 떠돌이 사냥개처럼, 나는 마땅히 해야 할 것만 빼고는 이것저것을 모두 좇아다녔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당하게 이렇게 불평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게스너⟦32⟧가 겸손하게 말했듯이, 나 또한 많은 책을 읽었지만 체계적인 방법이 부족했기 때문에 큰 성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기예와 질서와 기억과 판단이 부족했기 때문에 우리 도서관에서 여러 저자들의 책을 이것저것 뒤섞어 넘겨 보았을 뿐 큰 이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지도나 해도 속에서만 여행했지만, 그 안에서 나의 자유로운 생각들은 마음껏 넓게 펼쳐졌습니다. 나는 특히 언제나 천문지리학⟦33⟧ 연구가 즐거웠지요. 토성은 나의 출생을 지배하는 별로 정점에 있었고, 화성은 성격을 나타내는 주요 표지로서 나의 상승점과 정확히 합을 이루고 있었으며, 두 행성 모두 각자의 궁에서 길하였습니다⟦34⟧. 나는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나는 가진 것이 적지만 바라는 것도 없습니다. 나의 모든 보물은 미네르바⟦35⟧의 탑에 있습니다. 더 높은 지위는 내가 얻을 수 없었으니 그것 때문에 누구에게 빚진 것도 없습니다. 나는 고귀하고 후한 후원자들로부터 적당한 생활을 유지할 만큼 받았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하라). 나는 여전히 대학에서 학자로 살고 있지만, 정원에서 지내던 데모크리토스⟦1⟧처럼 수도승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하나의 극장입니다. 세상의 소란과 번거로움에서 물러나, 마치 망루에 올라선 사람같이 (그가 말했듯이) 높은 곳에서 여러분 모두를 내려다보며, 스토아⟦36⟧의 현자처럼 지나간 시대와 지금의 시대를 한 번의 시선으로 보듯이 바라봅니다. 나는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듣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궁정과 세상에서 어떻게 달리고, 말에 올라타고, 분주히 움직이며 스스로를 지치게 하는지 말입니다. 그 모든 소송 다툼과 궁정의 허영, 세상의 야심에서 멀리 떨어져서 나는 그것들을 보며 스스로 웃곤 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웃어넘깁니다. 나의 소송이 잘못되지 않을까, 나의 배가 난파하지 않을까, 곡식과 가축이 잘못되지 않을까, 장사가 쇠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양해야 할 아내도 자식도 없습니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의 운명과 모험을 바라보는 관객일 뿐이며 그들이 각자의 역할을 어떻게 연기하는지를 관찰합니다. 그것들은 나에게 마치 하나의 공공 극장이나 무대에서처럼 여러 모습으로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나는 날마다 새로운 소식을 듣습니다. 전쟁, 역병, 화재, 홍수, 도둑질, 살인, 학살, 유성, 혜성, 유령, 기이한 징조, 환영, 도시의 함락, 프랑스, 독일, 터키, 페르시아, 폴란드 등지에서 벌어지는 포위전 같은 온갖 소문도 듣습니다. 날마다 이루어지는 소집과 군비 준비, 이러한 격동의 시대가 낳는 온갖 일들, 전투가 벌어지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 결투, 난파, 해적 행위와 해전, 평화와 동맹, 계략과 새로운 경보 같은 것들입니다. 맹세와 소원, 행위와 칙령, 청원과 소송, 변론과 법률, 포고와 불만과 억울함이 뒤섞인 거대한 혼란이 날마다 우리의 귀에 들어옵니다. 날마다 새로운 책들이 나오고 소책자와 뉴스 전단, 온갖 이야기들과 온갖 종류의 책 목록들이 쏟아지며 새로운 역설과 의견, 분열과 이단, 철학과 종교 등에 관한 논쟁들이 생겨납니다. 결혼식, 가면 연회, 가장행렬, 잔치와 축제, 사절단, 마상 창시합과 토너먼트, 전리품과 개선식, 향연과 놀이와 연극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다가 다시 장면이 바뀐 것처럼 반역과 사기와 도둑질, 온갖 극악한 범죄, 장례와 매장, 왕들의 죽음, 새로운 발견과 원정 같은 소식이 이어집니다. 때로는 희극 같은 일들이, 때로는 비극 같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오늘은 새로운 귀족과 관리가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일은 어떤 유력 인물이 몰락했다는 소식을 듣다가 또다시 새로운 영예가 내려졌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어떤 이는 풀려나고 다른 이는 감옥에 갇히고, 어떤 이는 재산을 모으고 다른 이는 파산합니다. 어떤 이는 번성하지만 이웃은 파산하고, 때로는 풍요롭다가 다시 기근과 흉년이 닥치고, 어떤 이는 달리고 다른 이는 말에 올라타며, 다투고 웃고 울기도 합니다. 이러한 온갖 소식들을 나는 날마다 듣습니다. 사적인 소식과 공적인 소식이 뒤섞여 세상의 화려함과 비참함 속에서 들려옵니다. 환락과 교만, 곤란과 근심, 순박함과 악행, 교묘함과 사기, 솔직함과 정직이 서로 뒤섞여 나타납니다. 나는 한 개인으로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늘 살아온 그대로 지금도 전과 같은 상태로 지내며, 고독한 삶과 나 자신의 집안일에서 생기는 근심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만 거짓 없이 말하자면, 디오게네스⟦37⟧가 도시로 들어가고 데모크리토스⟦1⟧가 풍속을 보려고 항구로 나갔던 것처럼 나도 때때로 기분 전환 삼아 밖으로 나가 세상을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몇 가지 작은 관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들처럼 예리한 관찰자는 아니고 단지 단순한 서술자일 뿐이며, 모든 것을 비웃거나 조롱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감정이 뒤섞인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1) Democritus - 기원전 5세기말에서 4세기 초에 활동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원자론을 기반으로 한 우주론을 체계화시켰으며 유물론적 철학을 지향했다. 그는 세계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입자, 곧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고, 이 원자들이 텅 빈 공간 속에서 운동하며 결합과 분리를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사유에서 자연은 신의 의도나 목적이 아니라 필연과 우연의 결과로 움직인다. 감각은 원자들의 배열이 우리에게 남기는 인상일 뿐이며, 단맛·쓴맛 같은 성질은 관습적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원자와 공허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웃는 철학자’라는 별칭으로 전해지는데, 인간사와 운명의 어리석음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태도 때문이었다. 윤리에서도 쾌락을 단순한 방종이 아니라 영혼의 평정, 균형 잡힌 기쁨으로 이해했다. 후대의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가 그의 사상을 이어받아 서양 유물론의 한 줄기를 만들었다. 거의 동시대 사람이었던 플라톤의 관념론과 대립했다. (작가는 자신을 데모크리토스의 후계자로 자처하고 있다.)



2) Plutarch - 플루타르코스는 1세기말에서 2세기 초에 살았던 그리스 출신의 작가이자 도덕철학자다. 로마 제국 시대에 활동했지만 정신적 뿌리는 고전 그리스에 두었고, 델포이의 사제이기도 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업은 [영웅전]이다. 셰익스피어가 이 책에서 많은 소재를 가져갔다. 또 다른 저작 묶음인 [도덕론]에서는 종교, 우정, 교육, 미신, 영혼의 문제까지 폭넓게 다뤘다. 그는 극단보다 절도를 중시했고, 철학을 추상이 아니라 일상의 기술로 보았다. 플루타르코스에게 역사는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 마음의 실험실이었다.



3) Epicurus -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4세기 후반 아테네에서 활동한 철학자다. 그는 인간의 목적을 쾌락이라고 불렀지만, 그 쾌락은 떠들썩한 향락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와 마음의 평정이었다. 가장 큰 행복은 배부른 축제가 아니라 두려움이 사라진 조용한 상태, 아타락시아다. 그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받아들여 세계를 신의 계획이 아닌 원자들의 자연적 운동으로 설명했다. 신들은 존재하더라도 인간 일에 간섭하지 않으며, 죽음은 감각의 소멸일 뿐이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테네의 정원에서 제자들과 함께 살며 우정과 소박한 생활을 강조했고, 정치적 야심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사적인 삶을 중시했다. 후대에는 쾌락주의자로 오해되었지만, 그의 철학의 중심에는 절제와 이성, 그리고 불필요한 욕망을 줄이려는 냉정한 계산이 있었다.



4) Leucippus - 레우키포스는 기원전 5세기 무렵 활동한 그리스 철학자로, 원자론의 최초 제안자로 전해진다. 그의 생애는 거의 안갯속에 가려져 있고, 사상의 대부분은 제자 데모크리토스의 이름으로 전해졌다. 그는 세계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입자와 빈 공간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았고, 모든 변화는 이 입자들의 운동과 배열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신화적 원인이나 목적 대신, 필연적 기계 법칙을 자연의 근본으로 삼은 점에서 이전 사상과 갈라선다. “존재는 공허 없이, 공허는 존재 없이 있을 수 없다”는 그의 사상은 이후 서양 물질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5) Copernicus -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16세기 폴란드의 천문학자이자 성직자다.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오래된 도식을 뒤집고, 태양을 중심에 두는 체계를 제안했다. 행성들은 태양 주위를 원운동으로 돌고, 지구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지구가 왕좌에서 내려오자, 신학과 철학도 함께 흔들렸다. 코페르니쿠스는 혁명을 의도한 예언자가 아니라, 계산을 맞추려던 조용한 수학자였다. 하지만 그의 계산은 세계의 중심을 바꾸어 놓았다.



6) Bruno - 조르다노 브루노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사상가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단순한 천문 가설이 아니라 우주의 형이상학으로 확장했다. 우주는 하나의 닫힌 구가 아니라 무한하며, 별들은 저마다 또 다른 태양이고, 그 주위에 수많은 세계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브루노에게 신은 특정한 장소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 전체에 스며 있는 무한한 생명력이었다. 이런 생각은 교회의 교리와 충돌했고, 결국 베네치아에서 체포되어 사상의 철회를 거부한 끝에 1600년 화형을 당했다. 그는 과학자라기보다 형이상학자였지만, 그의 무한 우주 개념은 근대 세계관의 균열을 미리 보여주었다.



7) Gellius - 아울루스 겔리우스는 2세기 로마의 학자이자 문필가다. 그는 체계적인 철학자라기보다, 읽고 들은 것을 밤마다 공책에 적어 두는 수집가에 가까웠다. 그 기록이 훗날 [아티카의 밤들]이 되었다. 이 책에는 법률, 문법, 역사, 기이한 일화, 잊힌 시 구절이 뒤섞여 있다. 겔리우스는 옛 문헌의 목소리를 보존하는 일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그의 글 덕분에 사라졌을 수많은 라틴 작가들의 흔적이 오늘까지 남았다.



8) Praxiteles - 프락시텔레스는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의 조각가다. 고전기의 엄격한 균형에서 벗어나, 인체에 부드러운 곡선과 숨결 같은 온기를 불어넣은 인물로 기억된다. 프락시텔레스의 조각은 정지한 순간보다 움직임의 직전, 무게가 한쪽 발로 기울어지는 찰나를 붙잡는다. 그래서 그의 대리석은 차갑지만, 어딘가 숨을 고르고 있는 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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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Kentauros - 켄타우로스는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마 존재다.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말로 이루어져 있어 이성과 야성이 한 몸에 묶인 형상이다. 전승에서 그들은 대부분 난폭하고 충동적인 종족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케이론 같은 인물은 지혜롭고 온화하여 아킬레우스와 아스클레피오스를 가르친 스승으로 기억된다. 켄타우로스는 인간 안의 두 힘, 절제와 본능의 분열을 눈에 보이게 만든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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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Harpyasque - 하르피이(Harpies)는 그리스 신화에서 사람과 음식 등을 낚아채 가는 약탈자의 성격을 지닌 새-여성형 괴물로, 문학에서는 재난·불결함·폭풍과 같은 공포의 징표를 상징하는 존재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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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Gorgon - 고르곤은 그리스 신화의 괴물 자매들이다. 머리카락 대신 뱀이 꿈틀거리고, 눈을 마주친 사람을 돌로 만든다는 존재로 전해진다. 세 자매 가운데 메두사만이 죽을 수 있는 몸을 가졌고, 나머지 스테노와 에우리알레는 불사의 존재였다. 고르곤의 얼굴은 공포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보호의 문장이다. 사원 문기둥과 방패에 새겨져 악을 물리치는 부적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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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Mercurius Gallobelgicus - 1594년 유럽에서 인쇄 형태로 나온 첫 정기 간행물. '메르쿠리우스'는 그리스의 '헤르메스'에 해당하는 로마의 신으로 여행과, 상업, 거래, 도둑질의 신이다.



13) Mercurius Britannicus - 17세기 영국 내전 시기에 발행된 정치 팸플릿이자 주간지의 이름이다. 왕당파와 의회파가 서로를 향해 종이 위에서 전쟁을 벌이던 시대에, 이 제목은 의회파의 대표적인 선전 매체로 기능했다. ‘브리튼의 메르쿠리우스’라는 이름은 로마 신 머큐리의 전령 역할을 빌려, 자신들이 진실을 전하는 목소리라는 뜻을 내세운 것이다. 지면에는 전투 소식, 소문, 상대 진영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뒤섞였다. 사실 보도라기보다 정치적 무기로서의 글이었고, 당대의 여론을 움직이는 도구였다



14) Mercury - 메르쿠리우스는 로마 신화의 신이고, 그리스의 헤르메스와 같은 존재다. 그는 신들의 전령이다. 발에 날개 달린 샌들을 신고, 한 손에는 뱀이 감긴 지팡이 카두케우스를 든 채 세계와 세계 사이를 오간다. 하늘과 땅, 삶과 죽음, 인간과 신을 잇는 통로 역할이 그의 본질이다. 그래서 상인·여행자·도둑·웅변가의 수호자가 동시에 된다. 경계에 서는 자들의 신이다. 그는 질서의 바깥을 미끄러지듯 통과하지만 그 속임수는 파괴보다 중개에 가깝다. 연금술에서는 수은과 동일시되어, 형태를 바꾸며 모든 금속을 잇는 원리로 해석되었다. 메르쿠리우스는 고정되지 않는 운동, 경계 그 자체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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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Hippocrates -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5세기 코스 섬에서 활동한 그리스 의사다. 그는 병을 신의 벌이 아니라 자연의 현상으로 보았고, 관찰과 경험을 치료의 근거로 삼으려 했다. 그 이전의 주술적 의학과 갈라서는 지점이 여기다. 그의 이름 아래 전해지는 '히포크라테스 전집'에는 체액 이론, 예후 판단, 생활 습관의 중요성이 반복된다. 의사는 병과 싸우는 전사가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치유하도록 돕는 조력자라는 태도가 중심에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을 기술이 아니라 윤리와 관찰의 결합으로 만들려 한 첫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우울에 빠진 데모크리토스를 진찰하고는 미친 것이 아니라 모두 이렇게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런데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반대로 데모크리토스가 너무 웃어서 히포크라테스의 진찰을 받았는데 히포크라테스는 데모크리토스가 미친 것이 아니라 지혜로워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16) Laertius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3세기 무렵 활동한 그리스의 전기 작가다. 철학자였다기보다 철학자들의 기록자였다. 그의 책 [유명 철학자들의 생애와 학설]은 고대 철학사를 통째로 보존한 창고와 같다.



17) Socrates -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69년경 아테네에서 태어나 기원전 399년에 사형으로 생을 마친 그리스 철학자이다. 그는 직접 저술을 남기지 않았고, 그의 사상은 플라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과 크세노폰의 [회상록] 등을 통해 전해진다. 그는 문답법을 통해 도덕과 지식의 본질을 탐구하였으며, “너 자신을 알라”는 태도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재판과 죽음은 위의 저작들에 기록되어 있으며, 서양 철학 전통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18) Diacosmus - 데모크리토스의 초기 원자론에서 쓰인 말이다. 원자들이 공허 속에서 무작위로 움직이다가 일정한 결합을 이루면 하나의 코스모스가 생기는데, 그 형성과 구조 전체를 디아코스모스라고 불렀다. 목적이나 신적 설계가 아니라, 충돌과 필연의 결과로 생긴 질서의 우연한 형태라는 점이 핵심이다.



19) Columella - 콜루멜라는 1세기 로마의 농학자다. 히스파니아 출신의 토지 소유자이자 실무 농부였다. 그는 경험을 글로 옮긴 드문 로마인이었다. 대표 저작 '농업에 대하여'에서 포도 재배, 가축 사육, 토양 관리, 노예 감독까지 세세히 다루었다. 단순한 기술서가 아니라, 땅을 돌보는 삶의 윤리를 말하려 했다. 농업이 무너지면 국가의 도덕도 함께 기운다는 믿음이 그의 문장 아래 흐른다. 콜루멜라에게 농사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미래의 질서였다.



20) Constantinus - 콘스탄티누스는 4세기 로마 황제다. 제국을 재통합하고 권력의 중심을 동방으로 옮겨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세웠다. 가장 큰 전환은 기독교에 대한 태도였다. 그는 밀라노 칙령으로 신앙을 합법화하고, 니케아 공의회를 열어 교회의 분열을 정리하려 했다.



21) Thrace - 에게해 북쪽 지방. 발칸 반도의 동쪽, 오늘의 불가리아 남부와 그리스 북부, 튀르키예의 유럽 쪽 일부를 아우르던 고대 지역이다. 하나의 통일 국가라기보다 여러 부족이 흩어져 살던 땅이었다.



22) Abdera - 아브데라는 고대 그리스의 트라키아 지역(오늘날 그리스 북동부)에 있던 항구 도시로, 상업과 교역이 활발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원자론으로 유명한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의 고향으로 자주 언급되며, 고대 문헌에서는 때때로 “아브데라 사람”이 우스꽝스럽거나 어리석은 인물의 상징처럼 풍자적으로 쓰이기도 했다.



23) Muses - 뮤즈는 그리스 신화에서 예술과 학문을 관장하는 아홉 여신을 말하며, 문학에서는 “뮤즈”가 곧 학문·시·글쓰기·창작 활동 전체를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으로 쓰인다. 아홉 명의 뮤즈는 ‘칼리오페’가 서사시와 웅변을, ‘클레이오’가 기억과 역사를, ‘에우테르페’가 음악과 서정시를, ‘탈레이아’가 희극을, ‘멜포메네’가 비극을, ‘테르프시코레’가 무용과 합창을, ‘에라토’가 사랑의 노래를, ‘폴리힘니아’가 성가와 침묵의 사유를, ‘우라니아’가 별과 우주의 질서를 관장하여 인간의 예술과 지식이 형식과 방향을 갖추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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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Xenocrates - 크세노크라테스는 기원전 4세기 플라톤 학원의 세 번째 원장이었다. 스페우시포스의 뒤를 이어 아카데미아를 이끌며, 플라톤의 형이상학을 더 엄격한 체계로 굳히려 했다. 그는 존재를 하나와 둘, 정신과 감각의 이원적 구조로 나누고, 수와 기하를 세계의 뼈대로 보았다. 윤리에서는 절제를 중심에 두었고, 철학자는 무엇보다 성품의 안정으로 증명된다고 믿었다. 전해지는 일화에서 그는 말수가 적고 청렴했으며, 아테네 시민들이 세금을 면제해 주려 했을 만큼 신뢰를 받았다.



25) 옥스퍼드 대학을 말한다.



26) Jovius - 조비우스는 1483년에 이탈리아 코모에서 태어나 1552년에 사망한 르네상스 시기의 역사가이자 인문주의자로, 본명은 파올로 조비오(Paolo Giovio)이다. 그는 처음에는 의사로 활동했으나 이후 교황청 주변에서 활동하며 역사 저술로 명성을 얻었고, 특히 동시대 유럽의 정치 사건과 군주·장군들의 행적을 기록한 역사와 전기 저술로 널리 알려졌다. 그의 글은 르네상스 시기의 정치와 인물들을 전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27) Plato - 플라톤은 기원전 427년경 아테네에서 태어난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었다. 그는 서양 형이상학과 인식론의 기초를 세운 인물로, 감각 세계 뒤에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본질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보는 이데아 이론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대화편 형식의 철학 저술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전승했으며, 아테네에 아카데메이아를 세워 후대 철학 전통의 중심이 되는 교육 기관을 만들었다. 그의 주요 저작으로는 [국가], [향연], [파이돈], [테아이테토스], [법률] 등이 있다.



28) Lipsius - 유스투스 립시우스는 16세기 후반의 플랑드르 인문주의자다. 그는 스토아 철학을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불러낸 인물로 기억된다. 종교 전쟁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인간이 붙잡을 수 있는 버팀목을 고대의 절제와 인내에서 찾으려 했다. 그의 글은 금욕적이면서도 현실적이어서, 군주와 학자 모두에게 읽혔다.



29) Montaigne - 몽테뉴는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다. 직업 철학자라기보다 은퇴한 지방 귀족이었고, 성탑 서재에 틀어박혀 자기 생각을 적기 시작했다. 그는 체계를 세우지 않았지만 대신 자기 자신을 실험대에 올렸다. 몽테뉴에게 지혜는 위대한 교리보다 평범한 삶의 균형이었다. 말 타는 법, 몸의 병, 여행의 불편까지 사유의 재료가 된다. 그는 인간을 낮은 자리에서 보려 했고, 그래서 근대적 ‘자아’의 문을 열었다.



30) Aristotle -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 마케도니아의 스타게이라에서 태어난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이었다. 그는 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생물학, 수사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 체계적인 기초를 세운 인물로, 경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철학적 방법을 발전시켰다. 아테네에서 리케이온(Lykeion) 학원을 세워 연구와 교육을 진행했으며, 서양 학문 전통에서 오랫동안 가장 권위 있는 철학자로 간주되었다. 그의 주요 저작으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형이상학], [정치학], [수사학], [시학] 등이 있다.



31) Adrian Turnebus - 아드리안 투르네부스는 16세기 프랑스의 인문주의 학자다. 파리 대학과 왕립 학원에서 그리스어를 가르치며, 당대 가장 정밀한 고전 문헌 교정가로 이름을 얻었다. 그의 엄격한 문헌 감각은 프랑스 인문학의 기준이 되었다.



32) Gesner - 콘라트 폰 게스너는 16세기 스위스의 학자이자 의사, 박물학자다. 그는 자연을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처럼 보았고, 흩어진 지식을 분류해 묶는 일에 생을 바쳤다. 가장 유명한 작업은 [동물사]로, 고대 문헌과 여행자의 보고, 자신의 관찰을 뒤섞어 당대 동물 지식을 집대성했다. 실존 생물과 전설의 괴물이 한 책 안에 공존하는 모습이 르네상스 자연학의 경계를 보여 준다. 게스너에게 학문은 발견보다 정리였다. 자연과 책을 같은 방식으로 배열하려 한 사람, 혼란을 표로 바꾸려 한 인물이었다.



33) Cosmography - 세계 전체를 그림으로 그려서 설명하는 학문을 뜻한다. 고대·중세·근세 초기에 쓰인 말로, 오늘날처럼 분야가 분리되기 전의 개념이라 천문학(하늘), 지리학(땅), 지도 제작, 해도, 기후·지역 구분 같은 것들이 함께 들어간다. 즉 우주와 세계의 구조를 지도처럼 한꺼번에 묘사하는 학문에 가깝다.



34) 출생점성술은 사람이 태어난 정확한 시각과 장소에서의 하늘의 상태, 곧 행성들과 별자리의 위치를 기준으로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 삶의 경향을 해석하려는 점성술의 한 분야이다. 이 방법에서는 태어난 순간의 천체 배열을 원형 도표로 나타낸 출생 차트 또는 호로스코프를 만들고, 각 행성이 어느 별자리와 어느 궁에 위치하는지, 서로 어떤 각도를 이루는지를 살펴 그 사람의 성향과 운명을 설명하려 한다.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러한 해석이 천문학과 함께 지식인의 교양으로 널리 받아들여졌으며, 문학과 철학에서도 개인의 기질이나 운명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자주 인용되었다.



35) Minerva - 미네르바는 로마 신화의 지혜와 학문, 기술의 여신으로,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에 해당하는 신이다. 그녀는 특히 지성과 전략적 사고, 예술과 공예의 수호자로 여겨졌으며, 고대 로마에서는 학문과 교육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주 언급되었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전통에서는 학문과 지적 활동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었고, ‘미네르바의 탑’이라는 표현은 학문과 사색의 공간, 곧 서재나 학자의 은거처를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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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Stoicus - 스토이쿠스는 라틴어로 스토아 철학자를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 철학 학파인 스토아학파에 속한 철학자를 가리키며, 기원전 3세기 키티온의 제논이 아테네에서 시작한 철학 전통과 관련된다. 스토아 철학자는 정념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으로 세계를 관조하는 현자의 이상을 강조하는데, 르네상스 인문주의 문헌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지닌 관찰자의 상징으로 자주 언급된다.



37) Diogenes - 디오게네스는 기원전 약 412년경 시노페에서 태어나 기원전 323년경에 죽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견유학파(Cynic)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사회적 관습과 부를 경멸하고 극단적인 검소함과 자족을 강조했으며, 항아리 속에서 살았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디오게네스는 권력과 명예를 조롱하는 직설적인 태도로 알려져 있으며, 인간이 자연에 따라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삶과 발언은 후대에 자유로운 철학적 태도와 사회 비판의 상징으로 자주 인용된다.





/번역/우울증의 해부/우울의 해부/The Anatomy of Melancholy/Robert Burton/로버트 버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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