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버턴
( 역자 - 라틴어는 명조체로 진하게 표시합니다. )
여러분의 소란스러운 소동은 나에게 자주 분노와 웃음을 일으킵니다.
가엾은 흉내쟁이들이여, 여러분의 어리석은 열정은
얼마나 빈번히 나의 웃음과 분노의 대상이 되었던가요.
나는 때때로 루키아노스⟦1⟧ 식으로 웃고 비웃기도 했고, 메니포스⟦2⟧처럼 풍자적으로 비난하기도 했으며, 헤라클레이토스⟦3⟧처럼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마구 들뜬 비장 때문에 크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고, 또 때로는 분노가 간을 태우듯 끓어올랐습니다. 나는 내가 바로잡을 수 없는 그 폐단을 보며 크게 마음이 동요되었습니다. 이러한 감정 속에서 내가 그나 그들과 어느 정도 같은 심정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이유 때문에 내가 그의 이름 아래에 몸을 숨기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다만 가명을 써서 조금 더 자유롭고 거리낌 없이 말하기 위함이며, 혹은 굳이 이유를 알고 싶다면 히포크라테스⟦4⟧가 다메게토스⟦5⟧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세히 이야기한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 편지에서 그는 어느 날 데모크리토스⟦6⟧를 찾아갔을 때 아브데라 교외의 정원에서 그를 발견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그늘진 정자 아래에 앉아 무릎 위에 책을 펼쳐 놓고 학문에 몰두해 있었으며, 때로는 글을 쓰고 때로는 걸으며 사색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쓰고 있던 책의 주제는 우울과 광기였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그가 막 해부하여 갈라놓은 여러 짐승들의 사체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느님의 피조물을 업신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히포크라테스⟦4⟧에게 말했듯이 흑담즙, 곧 우울이 어디에 자리하며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또 그것이 사람의 몸 안에서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알아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자신도 그것을 더 잘 치료하고, 자신의 글과 관찰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미리 막고 피할 수 있는지 가르치려는 뜻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좋은 뜻을 히포크라테스⟦4⟧는 크게 칭찬했습니다. 그러므로 데모크리토스 주니어도 감히 그를 본받으려 합니다. 그가 그것을 완전히 끝맺지 못했고 지금은 그 책이 사라졌기 때문에, 데모크리토스⟦6⟧를 보충하는 사람으로서 이 글에서 그것을 다시 되살리고 계속 이어나가 마침내 완성하려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이 이름의 연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 제목과 표제가 당신의 엄숙한 취향에 거슬린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예로 들어 변명하는 것이 충분한 정당화가 될 수 있다면, 나는 표지에 이보다 더 기이한 이름을 달고 있는 많은 진지한 논문들, 심지어 설교문들까지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요즘에는 팔려고 내놓은 책에 기이한 제목을 붙이는 것이 하나의 방책이 되었습니다. 종달새가 낮에 쳐놓은 그물에 내려앉듯이, 허영심 많은 독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화가의 가게에 걸린 괴상한 그림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어리석은 행인들처럼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지만, 정작 제대로 된 작품에는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스칼리게르⟦7⟧가 말했듯이 실제로 “뜻밖의, 미처 생각지 못한 주제만큼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없으며, 상스러운 소책자만큼 잘 팔리는 것도 없습니다." 특히 새로움이 입맛을 자극할 때 더욱 그렇지요. 겔리우스⟦8⟧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책의 표제에 대해 지나치게 자만한다”라고 말했고, 플리니우스⟦9⟧가 세네카⟦10⟧에게서 인용했듯이 “딸의 해산을 도우러 산파를 데려오려고 급히 가던 사람조차 길에서 멈춰 서게 만들 수 있다”라고 합니다. 나로 말하자면 내가 한 일에도 존중할 만한 선례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만 들겠습니다. 교황청 주교 안토니오 자라⟦11⟧의 [재치의 해부]라는 책인데, 네 부분과 여러 장과 절로 나누어져 있으며 도서관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내 주제의 내용이나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그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나는 우울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우울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바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게으름보다 더 큰 우울의 원인은 없으며, “일보다 더 좋은 치료법은 없다”라고 라지스⟦12⟧는 말합니다. 비록 어리석은 일에 바쁘게 매달리는 것은 헛된 수고일 뿐이지만, 그래도 저 위대한 세네카⟦10⟧의 말을 새겨들으십시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이런 놀이 같은 수고로 스스로를 바쁘게 했습니다. 나태로 인한 마비를 피하려고 이렇게 한가함 속에서도 부지런히 시간을 보내며, 또 한가함을 유익한 일로 바꾸려 했습니다.
삶에 즐거움을 주고 유익한 말을 하여,
독자를 즐겁게 하면서 동시에 깨우치게 해야 합니다.
시인들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거나 즐거움을 주려 하며,
즐거운 것과 교훈적인 것을 함께 결합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익과 즐거움을 예술과 함께 섞어
깨우치면서도 마음을 거슬리지 않게 한다면
모두의 지지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나도 그들처럼 글을 씁니다. 루키아노스⟦1⟧의 말처럼 “듣는 사람이 없으니 나무에게 낭송하고 기둥을 향해 연설하는 것"과 같은 심정입니다. 파울루스 아이기네타⟦13⟧도 솔직하게 말했듯이 “무엇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스스로 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이런 방식을 따른다면, 그것은 몸에도 좋고 영혼에는 더욱 좋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명성을 얻기 위해서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서 말입니다. (당신이 아는 것도, 다른 사람이 당신이 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투키디데스⟦14⟧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어떤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어떤 타고난 충동에 떠밀려 이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글을 써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무거운 마음과 무엇인가를 잉태한 듯 가득 찬 머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머릿속에 종기가 하나 생긴 것처럼 그것을 몹시 털어내고 싶었고, 그것을 밖으로 풀어내는 데에는 이 방법보다 더 알맞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나는 쉽게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고통이 있는 곳으로 손가락이 갑니다. 사람은 가려운 곳을 긁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이 병을 나의 연인인 우울이라 해야 할지, 나의 에게리아⟦15⟧라 해야 할지, 아니면 나의 사악한 수호령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적지 않게 괴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갈에 쏘인 사람이 그러하듯이 못으로 못을 밀어냅니다. 한 슬픔을 다른 슬픔으로 달래고, 게으름을 게으름으로 타이르며, 독사로부터 해독제를 만듭니다. 나는 내 병의 근본 원인이었던 것에서 해독제를 만들어내고자 하였습니다. 펠릭스 플라테르⟦16⟧가 언급한 어떤 사람은 자기 배 속에 아리스토파네스⟦17⟧의 개구리들이 들어 있어 끊임없이 “브레크, 오케크스, 코악스, 코악스, 오프, 오프⟦18⟧” 하고 운다고 여겼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스스로를 고치려고 7년 동안 의학을 공부하였고 유럽 대부분을 돌아다녔습니다. 나 또한 나 자신을 위해, 우리 도서관이 제공할 수 있는 의사들의 책들이나 또는 내 개인적인 친구들이 준 책들을 뒤져 보며 이러한 수고를 들였습니다. 왜 그러지 못하겠습니까? 카르다노⟦19⟧는 자기 아들이 죽은 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위로에 관하여]를 썼다고 합니다. 툴리⟦20⟧ 또한 자기 딸이 죽은 뒤 같은 주제와 의도로 글을 썼습니다. 그것이 그의 저작이 맞다면 말이지만요. 어떤 사람이 그의 이름으로 내놓은 것일 수도 있으며, 이는 리프시우스⟦21⟧ 역시도 의심한 바입니다.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아마도 살루스티우스⟦22⟧에 나오는 마리우스⟦23⟧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이들이 듣거나 읽는 것을 나는 직접 겪고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책으로 지식을 얻지만 나는 우울 속에서 그것을 얻습니다.” 경험을 통해 배운 저 로베르토⟦24⟧를 믿어 주십시오. 나는 경험에서 말할 수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이 나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시인⟦25⟧의 말처럼, 나는 고통을 모르지 않기에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같은 고통을 느끼는 심정으로 다른 이들을 돕고자 합니다. 또한 옛날 그 덕 있는 여인이 “자신이 나병 환자였으면서도 자신의 전 재산을 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짓는 데 바쳤던 것처럼,” 나 역시 나의 가장 큰 재산인 시간과 지식을 모든 사람의 공동선을 위해 쓰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이미 한 일을 다시 하는 것,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 한 번 익힌 양배추를 다시 내놓는 일처럼 같은 것을 다른 말로 거듭 늘어놓는 일이라고 당신은 여기실 것입니다.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말해질 수 있는 것 가운데 빠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와 같은 주제에서 루키아노스⟦1⟧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주제에 관하여 얼마나 많은 뛰어난 의사들이 이미 방대한 분량의 저술과 정교한 논문들을 써왔습니까? 여기에는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다른 이들에게서 훔쳐온 것입니다. 나의 글이 나를 도둑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죽은 이들의 수고를 훔치는 것은 그들의 옷을 훔치는 것보다 더 큰 죄”라고 한시네시우스⟦26⟧의 엄중한 판단이 참이라면, 대부분의 저술가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 또한 다른 이들과 함께 법정에 서서 손을 들고 이런 종류의 절도에 대해 유죄임을 인정합니다. 자백하는 피고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다른 이들과 함께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는 참으로 사실입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치료할 수 없는 병이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으며, 또 “책을 쓰는 일은 끝이 없다”라고 옛 현자도 말했습니다. 이 글을 마구 끼적이는 시대, 특히 “책의 수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라고 훌륭한 사람이 말하듯이, 인쇄소는 짓눌리고, 또 사람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어떤 가려움 같은 성향 때문에, 명성과 영예를 바라면서, 배우지 못한 사람도 배운 사람도 모두 글을 씁니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쓰며, 어디에서 긁어모았는지는 따지지 않습니다. “명성을 향한 이 욕망에 홀려,” 병중 한가운데에서도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겨우 펜을 쥘 수 있을 정도에도 기어이 무언가를 쓰려합니다. “그것이 몰락과 파멸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명성을 얻으려 한다"라고 스칼리게르⟦7⟧가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저술가로 인정받고자 하고, 저술가라 불리기를 바라며, 박식한 사람, 만물박사로 여겨지기를 바라면서, 배우지 못한 대중 앞에서 허황된 학문의 이름에 기대어 종이 위의 왕국을 얻으려 합니다. 이익을 바라지 않고 오직 지대한 명성만을 바랄 뿐이죠. 곧 지금과 같은 시대, 미성숙한 학문 속에서 야심에 차 있고 성급한 시대라고 스칼리게르⟦7⟧가 평가한 바로 이 성급하고 야심 찬 시대에, 겨우 청취자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조차, 제대로 들을 자격과 준비가 되기도 전에 스승과 교사가 되려 합니다. 그들은 모든 학문에 마구 뛰어듭니다. 문과와 무과를 가리지 않고, 신학과 인문 저작을 가리지 않으며, 온갖 색인과 소책자들을 뒤져가며 자료를 긁어모읍니다. 마치 우리 상인들이 교역을 위해 낯선 항구들을 뒤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방대한 책들을 써내지만, 실제로 더 학식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고 다만 말이 더 많아질 뿐이며, 그 결과 더 나은 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수다스러운 사람이 될 뿐입니다. 그들은 대개 공공의 이익을 내세우지만, 게스너⟦27⟧가 지적하였듯이, 그들을 부추기는 것은 교만과 허영입니다. 새로운 것이나 주목할 만한 것은 없고, 다만 같은 말을 다른 식으로 되풀이할 뿐입니다. 아마도 인쇄업자들을 쉬지 않게 하려는 것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자신이 살아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써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약제사들처럼 날마다 새로운 혼합물을 만들어 내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 붓습니다. 또 옛 로마인들이 형편없는 로마를 꾸미기 위해 온 세상의 도시들을 약탈했듯이, 우리는 다른 이들의 재능에서 정수를 걷어내고 그들이 가꿔 놓은 정원에서 좋은 꽃들만 골라 우리의 메마른 밭을 꾸밉니다. 다른 이들을 거세하여 자기 책을, 본래는 빈약한 것을 남의 기름으로 살찌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비우스⟦28⟧는 비난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빈약한 책을 다른 이들의 저작에서 가져온 것으로 살찌웁니다. 배워먹지 못한 도둑들이죠. 모든 저술가가 이런 잘못을 비난합니다. 지금의 저를 포함해서요. 그러나 그들 자신 역시도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도둑들입니다. 그들은 옛 저술가들로부터 훔쳐와 자신의 새로운 주석을 채우고, 엔니우스⟦29⟧의 거름더미를 긁어 뒤지며, 데모크리토스⟦6⟧의 구덩이에서 끄집어냅니다. 저 역시 그렇게 해왔습니다. 이로 인해 결국 “도서관과 서점뿐 아니라 변기와 화장실까지도 우리의 썩은 종이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배설하면서 읽는 시를 쓴다는 말처럼, 그것들은 파이를 덮는 데 쓰이고, 향신료를 싸는 데 쓰이며, 구운 고기가 타지 않도록 막는 데 쓰입니다. “우리 프랑스에서는,” 스칼리게르⟦7⟧가 말하였듯이, “누구에게나 글을 쓸 자유가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할 능력을 가진 이는 드뭅니다.” “이전에는 학문이 분별력 있는 학자들에 의해 빛났지만, 이제는 고귀한 학문이 천하고 무지한 낙서꾼들에 의해 모욕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허영을 위해, 생계를 위한 돈을 벌려고, 혹은 어떤 권력자들에게 아첨하고 영합하는 기생자로서 글을 쓰며, 쓸모없는 것들, 잡다한 것들, 어리석은 것들만 늘어놓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저술가들 가운데에서도, 그 책을 읽음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훨씬 더 나빠지기 쉽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사람은 완성되기보다는 오히려 오염됩니다.
이런 것들을 읽는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배웠겠습니까,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꿈과 하찮은 것들밖에 없지 않습니까?
1) Lucian - 루키아노스는 2세기 로마 제국 시기의 그리스어 작가다. 시리아 사모사타 출신으로, 철학자라기보다 수사학자이자 풍자 작가에 가깝다. 그는 철학을 신념 체계로 존중하지 않고, 스토아·플라톤·피타고라스 계열의 교리를 신화적 허구처럼 다뤘다. 대화편 형식을 통해 죽은 자들, 신들, 철학자들을 한자리에 세워 말하게 하며, 권위·진지함·고상함을 해체한다. 그의 태도는 “진리를 제시”하는 데 있지 않고, “진리가 말해지는 방식” 자체를 폭로하는 데 있다. 루키아노스는 의미를 세우지 않는다. 의미가 만들어지는 장치, 담론이 신성화되는 순간을 조롱으로 드러낸다. 회의적이되 인식론을 세우지 않고, 냉소적이되 윤리를 설교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언어의 공허와 인간이 그것을 얼마나 쉽게 숭배하는가라는 문제다.
2) Menippus - 메니포스는 기원전 3세기 가다라 출신의 키니코스 학파 인물로, 저술은 전부 소실되었고 전승은 주로 루키아노스를 통해 남아 있다. 그는 철학을 체계로 세우지 않았고, 철학자들의 태도 자체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메니포스의 특징은 사변을 반박하는 논증이 아니라, 형식 파괴다. 진지한 담론을 갑자기 일상어·속어·우스꽝스러운 장면으로 끌어내려 철학의 위엄을 무너뜨린다. 신, 사후 세계, 윤리, 형이상학을 다루되 그 어느 것도 성역으로 두지 않는다.
3) Heraclitus - 헤라클레이토스는 기원전 6–5세기 에페소스 출신 철학자다. 단편만 남아 있으며, 의도적으로 난해하게 썼다. 설명보다 이해의 태도를 요구한다. 그의 사유의 핵심은 변화와 대립이다. 존재는 고정되지 않고 흐르며, 동일성은 안정이 아니라 긴장 속에서 성립한다. 삶과 죽음, 낮과 밤처럼 서로 반대되는 것들은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성립시킨다. 이를 관통하는 개념이 로고스다. 세계에는 질서가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상식적 이성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점을 보지 못하는 다수를 “잠든 자들”이라 불렀다. 우울증에 걸린 악인으로 여겨졌으며 웃는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 반대로 '우는 철학자'로 알려졌다.
4) Hippocrates -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약 460년에 에게해의 코스 섬에서 태어나 기원전 약 370년경에 죽은 고대 그리스의 의사로, 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질병을 신의 벌이 아니라 자연적 원인에서 설명하려 했으며, 의학을 체계적인 관찰과 경험에 기반한 학문으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이름 아래 전해지는 여러 의학 문헌들은 [히포크라테스 전집]으로 묶여 전해지며, 의사의 윤리를 강조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5) Damegetus - 다마게토스는 기원전 6세기말–5세기 초, 에페소스에서 활동한 귀족 가문의 인물이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부친으로, 에페소스의 세습적 권위‧제의적 직위를 지닌 집안에 속해 있었다.
6) Democritus - 기원전 5세기 말에서 4세기 초에 활동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원자론을 기반으로 한 우주론을 체계화시켰으며 유물론적 철학을 지향했다. 그는 세계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입자, 곧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고, 이 원자들이 텅 빈 공간 속에서 운동하며 결합과 분리를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사유에서 자연은 신의 의도나 목적이 아니라 필연과 우연의 결과로 움직인다. 감각은 원자들의 배열이 우리에게 남기는 인상일 뿐이며, 단맛·쓴맛 같은 성질은 관습적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원자와 공허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웃는 철학자’라는 별칭으로 전해지는데, 인간사와 운명의 어리석음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태도 때문이었다. 윤리에서도 쾌락을 단순한 방종이 아니라 영혼의 평정, 균형 잡힌 기쁨으로 이해했다. 후대의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가 그의 사상을 이어 받아 서양 유물론의 한 줄기를 만들었다. 거의 동시대 사람이었던 플라톤의 관념론과 대립했다. (작가는 자신을 데모크리토스의 후계자로 자처하고 있다.)
7) Scaliger - 스칼리게르는 16세기 전반,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전성기에 활동한 학자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으며, 문헌학·문법·자연철학 전반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고전 권위를 절대적으로 신뢰했고,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를 방어하는 데 집요했다. 동시대의 에라스무스적 유연함이나 회의보다는, 체계·위계·정통성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문헌 비평에서도 창조적 해석보다는 규범 설정자에 가까웠다. 그의 이름은 르네상스 학문이 지닌 권위 회복의 욕망과 배타성을 함께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8) Gellius - 겔리우스는 2세기 로마의 학자이자 문필가다. 그는 체계적인 철학자라기보다, 읽고 들은 것을 밤마다 공책에 적어 두는 수집가에 가까웠다. 그 기록이 훗날 '아티카의 밤들'이 되었다. 이 책에는 법률, 문법, 역사, 기이한 일화, 잊힌 시 구절이 뒤섞여 있다. 겔리우스는 옛 문헌의 목소리를 보존하는 일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그의 글 덕분에 사라졌을 수많은 라틴 작가들의 흔적이 오늘까지 남았다.
9) Pliny - 1세기 경 고대 로마 사람으로, 이 시절 두 명의 플리니우스가 있었다. 나이가 많은 쪽은 대(大)플리니우스 나이가 적은 쪽은 소(小)플리니우스로 불렸는데 보통 (대)플리니우스를 지칭하는 듯하다. 플리니우스는 1세기 로마 제국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관료로 [박물지]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연·의학·광물·동식물·기술·예술까지 당시 알려진 거의 모든 지식을 수집해 체계화하려 했다. 독창적 사상가라기보다는 지식의 집적자이자 편찬자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고대 세계가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플리니우스의 자연은 중립적 대상이 아니다. 경이롭고 기이하며, 인간의 도덕과 질서와 끊임없이 연결된다. 그의 글은 과학과 신화, 관찰과 전승이 아직 분리되지 않았던 지식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10) Seneca - 세네카는 1세기 로마 제국의 철학자이자 정치가다. 네로의 스승이었고,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스토아 윤리를 설파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철학은 체계적 이론보다 삶의 훈련에 가깝다. 분노, 두려움, 죽음, 시간, 고통 같은 문제를 추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반복해 다듬는다. 그래서 그의 글은 논증이라기보다 자기 점검과 권고에 가깝다. 세네카의 특징은 모순이다. 금욕을 말하면서 부유했고, 초연함을 말하면서 권력에 깊이 관여했다. 이 긴장은 그의 철학을 위선으로 보이게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 속에서 윤리가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11) Anthony Zara - 안토니오 자라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가톨릭 성직자이자 학자로, 교황청과 관련된 주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간의 재능과 학문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설명하려 한 저술로 이름이 전해지며, 대표적인 저서로는 [재능과 학문의 해부]가 있다. 이 책은 여러 부분과 장, 절로 나누어 인간의 지성과 학문의 종류를 해부학적 구조처럼 배열하여 설명한 작품이다.
12) Rhazes - 라제스(아부 바크르 알라지)는 9~10세기 페르시아 출신의 의사이자 철학자로, 이슬람 황금시대의 대표적인 의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임상 관찰과 경험을 중시하는 태도로 기존 의학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했으며, 천연두와 홍역을 구분해 기술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방대한 의학 백과인 [알하위]를 비롯해 여러 저작을 남겼고, 그의 저술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중세 유럽 의학에 장기간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는 연금술과 자연철학에도 관여하며 물질과 질병을 경험적으로 이해하려는 입장을 보였고, 이러한 태도는 후대에서 비교적 실증적인 의학 전통의 한 흐름으로 평가된다
13) Paulus Aegineta - 파울루스 아이기네타는 7세기경 활동한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 의사로, 에게해의 아이기나 섬 출신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의학 전통을 정리한 의학 저술로 유명하며, 그의 대표적인 저서는 일곱 권으로 이루어진 [의학 개요]이다. 이 책은 해부학, 질병, 약물, 외과 수술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의학 백과사전과 같은 저술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널리 읽히며 서양과 아랍 의학 전통에 큰 영향을 주었다.
14) Thucydides -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약 460년에 태어나 기원전 약 400년경에 죽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로,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전쟁을 기록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신화나 전설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적인 관찰과 증언, 정치적 분석을 바탕으로 역사를 서술하려 한 인물로 평가되며, 인간의 권력 욕망과 전쟁의 원인을 냉정하게 분석한 역사 서술 방식으로 후대 역사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15) Aegeria - 에게리아는 고대 로마 전승에 등장하는 님프로, 기원전 8세기경 로마의 제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에게 법과 종교 제도를 가르치고 조언을 주던 신적 존재로 전해진다. 그녀는 숲과 샘에 깃든 존재로 묘사되며, 왕에게 밤마다 나타나 국가 운영과 제의를 일러주는 내면의 조언자이자 영감의 근원으로 기능한다. 이 때문에 후대 라틴 문헌에서는 단순한 신 이름을 넘어, 사유를 이끌고 판단을 보조하는 존재, 곧 개인의 내적 스승이나 영감의 원천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16) Felix Plater - 펠릭스 플라테르는 1536년에 태어나 1614년에 사망한 스위스의 의사로, 바젤에서 활동하며 르네상스 후기 의학의 임상 관찰 전통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환자의 증상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질병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려 했으며, 특히 정신적 증상과 신체적 증상을 구분해 서술한 점에서 초기 정신의학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된다. 주요 저작으로는 질병을 분류하고 임상 사례를 집대성한 [의학 실천]이 있으며, 망상 증상에 대한 구체적 기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7) Aristophanes - 아리스토파네스는 기원전 약 446년에 태어나 기원전 약 386년에 사망한 고대 아테네의 희극 작가로, 고전기 그리스 ‘고희극’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작품을 통해 당대 인물과 제도를 노골적으로 비판했으며, 상상적이고 환상적인 설정과 과장된 언어를 결합한 희극 형식을 발전시켰다. 주요 저작으로는 [개구리], [구름], [새], [리시스트라타] 등이 있으며, 특히 [개구리]의 개구리 합창 장면으로 유명하다.
18) Breec, okex, coax, coax, oop, oop - 이 표현은 아리스토파네스의 [개구리]에 등장하는 개구리 합창의 의성어를 변형하거나 축약한 형태로, 원래는 “브레케케케크스 코악스 코악스”와 같이 반복되는 소리다. 이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흉내 낸 것으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언어라기보다 리듬과 반복을 통해 희극적 효과를 만드는 장치이며, 본문에서는 환자가 자기 몸 안에서 계속 울린다고 느끼는 환청·망상의 내용으로 사용된다.
19) Cardan - 카르다노는 1501년에 태어나 1576년에 사망한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수학자, 철학자로,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다방면 학자다. 그는 3차 방정식 해법 정리에 기여한 수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동시에 의학과 점성술, 철학에도 관여하였다. 주요 저작으로는 개인적 고통과 위로를 다룬 [위로에 관하여]가 있으며, 아들의 죽음 이후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 Tully - 툴리는 기원전 106년에 태어나 기원전 43년에 사망한 로마의 정치가이자 웅변가, 철학자로, 본명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다. 그는 공화정 말기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공화주의를 옹호하며 활동했고, 그리스 철학을 라틴어로 번역하고 해설하는 저술을 남겼다. 주요 저작으로는 [투스쿨룸에서의 담화], [의무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노년에 관하여] 등이 있으며, 딸의 죽음 이후 위로를 주제로 한 글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21) Lipsius - 리프시우스는 1547년에 태어나 1606년에 사망한 플랑드르 출신의 인문주의자이자 고전학자로, 라틴 문헌의 교정과 주석 작업을 통해 르네상스 후기 학문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스토아 철학을 기독교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신스토아주의의 대표자로 평가되며, 주요 저작으로는 [불굴에 관하여]와 [정치학]이 있다. 또한 고전 저작의 진위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22) Sallust - 살루스티우스는 기원전 86년에 태어나 기원전 35년에 사망한 로마의 역사가로, 공화정 말기의 정치적 부패와 권력 투쟁을 비판적으로 기록한 인물이다. 그는 간결하면서도 도덕적 긴장을 담은 문체로 서술했으며, 주요 저작으로는 [카틸리나의 음모]와 [유구르타 전쟁]이 있다.
23) Marius - 마리우스는 기원전 157년에 태어나 기원전 86년에 사망한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로, 평민 출신임에도 집정관을 여러 차례 역임하며 군사적·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는 군제 개혁을 통해 직업 군인을 중심으로 한 군대를 형성하였으며, 살루스티우스의 [유구르타 전쟁]에서는 경험을 통해 배운 인물로 묘사된다.
24) Roberto - 로베르토는 이 책의 저자 로버트 버튼의 라틴식 자기 지칭 이름이다.
25) 여기서 '시인'은 베르길리우스로, 기원전 70년에 태어나 기원전 19년에 사망한 로마의 서사시인이다. 그는 로마 건국 신화를 다룬 [아이네이스]의 저자로, 라틴 문학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인용된 구절 “나는 고통을 모르지 않기에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법을 배웠습니다”는 [아이네이스] 1권에서 디도 여왕이 한 말이다.
26) Synesius - 시네시우스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활동한 키레네 출신의 철학자이자 주교로, 신플라톤주의 전통에 속하면서도 기독교 사상을 결합한 인물이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히파티아에게 수학과 철학을 배웠으며, 이후 프톨레마이스의 주교로 활동하였다. 그의 저작으로는 [디오] [왕권론] [찬가] 등이 있으며, 편지와 철학적 소논문들을 통해 당대의 정치·종교·지적 상황을 보여준다.
27) Gesner - 게스너는 16세기 스위스의 박물학자이자 의사, 서지학자로, 르네상스 인문주의 학문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그는 방대한 독서와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자연사와 문헌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으며, 특히 [동물지]를 통해 동물에 관한 고전적 지식과 동시대 관찰을 종합하였다. 또한 [서지목록을 편찬하여 당시 알려진 모든 저술을 목록화하려 했으며, 이는 근대적 서지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28) Jovius - 요비우스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역사가이자 주교인 파올로 조비오(1483–1552)를 가리킨다. 그는 메디치 가문과 교황청 주변에서 활동하며 당대 유럽의 정치와 전쟁, 인물들을 기록한 역사서들을 남겼고, 대표적으로 [당대사]에서 동시대 사건들을 서술하였다. 또한 [전쟁의 용맹으로 유명한 인물들에 대한 찬사] 등에서 유명 인물들의 전기를 집필하며 르네상스 인문주의적 역사 서술의 전형을 보여준다.
29) Ennius - 엔니우스는 기원전 3세기 말에서 2세기 초에 활동한 로마의 시인으로, 로마 문학의 기초를 확립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라틴어로 서사시를 정립한 최초의 시인 가운데 하나이며, 대표작 [연대기]에서 로마의 건국부터 자신의 시대까지의 역사를 서사적으로 서술하였다. 그의 작품은 후대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베르길리우스 등에게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번역/우울증의 해부/우울의 해부/The Anatomy of Melancholy/Robert Burton/로버트 버턴/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