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Self portrait 자화상 / Andy Warhol 앤디 워홀 (1986)
구글에서 작가 이름을 치면
작가의 그림들이 나온다. 그러나
구글에서 [앤디 워홀]을 치면
앤디 워홀 본인의 사진들이 나온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그림은 그의 대단한 인기와 명성에 비해
진부하고 시시하기 때문이다.
잡지마다 나오는 스타들의 색색의 스팩트럼 사진과
동네 슈퍼마켓마다 잔뜩 쌓여 있는 캔 그림 따위가
뭐 그리 대단하고 신기하겠는가.
The 앤디 워홀이라면
The The The 대단한 작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천만해, 라고 앤디 워홀은 말한다. 그리고
[앤디 워홀]이라는 상표가 붙은 [앤디 워홀]을
떡하니 상품으로 내놓는다.
뒤샹이 변기 위에 사인을 했듯이
앤디 워홀은 [앤디 워홀] 위에 [앤디 워홀]이라고 사인을 하고
작품성을 상품성으로 대체하고
스스로 레디메이드가 되고
수없이 카피를 팔아치우고
히트 상품으로 선정되고
쇼윈도에 내걸리고
광고를 쏘아 올리면서
돈을 긁어모으며
자본주의를 미학적으로 빛나게 한다.
이제 그림은 천재가
우리에게 보내는 백화점 상품권에 불과하다. 혹은 이제 그림은
세일 중인 천재를 포장하기 위한 알록달록한 포장지에 불과하다.
그 포장지를 뜯어내면 뭐가 나올까?
아무것도.
그저 포장지에 찍힌 브랜드만이
텅 빈 하늘 위에 뜬 인공위성처럼 빛날 뿐.
우리는 그 인공위성을 보며 기쁘게 소원을 빌기도 할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