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오글오글 : 9월호 추석>
<월간 오글오글>은 글쓰기 모임 오글오글 작가들이 매 월 같은 주제로 발행하는 매거진입니다. 9월호 주제는 '추석' 입니다.
그해 추석은 매우 긴 연휴였다. 무려 열흘이나 주어진.
추석에 가족을 보기 힘들어진 지 벌써 몇 해가 되었다. 만날 때마다, 전화를 할 때마다 노처녀로 진화하고 있는 나에게 친척들은 한마디씩 했다. 김영민 교수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에서처럼 물어보는 모든 것의 본질을 되물으면 질문자의 입을 막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방법을 써야 했다. '노처녀란 무엇인가', '애인이란 무엇인가', '노산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냉동 난자란 무엇인가'까지. 간도 작고 반항할 의지도 없었던 나는 이런 본질 질문 기법 따위는 쓰지 못하고 그냥 '하하 네네'만 했던 터라 산이든 들이든 바다든 어디든 떠나야 했다.
"내가 아는 여행사에서 몽골 투어 갈 사람 두 명 추가 모집하던데, 거기 가지 그래?" 연휴가 너무 길어 걱정하는 나에게 부장님이 말했다.
그래서 '미혼의 명절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하던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 몽골가자.
몽골은 일교차가 큰 사막이라 밤에는 겨울 날씨여서 패딩과 침낭과 핫팩을 챙겨가야 했고, 이미 들판의 식물들은 다 말라서 기대했던 초록빛의 초원은 볼 수 없었다. 별과 은하수를 보기에 적합한 시즌은 아니었다. 몽골에도 추석이 있었고, 추석에 뜨는 달은 무려 '보름달'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별은 몽골의 쏟아지는 별이 아니라 '그냥 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추석과 가장 먼 날인 첫날과 마지막 날에 별을 봐야 몽골의 별을 감상 할 수 있다고 했다.
몽골 투어의 일행들은 평균 나이가 45세는 훌쩍 넘었다. 중년 여행단에 노산을 걱정하는 젊은(?) 우리가 낀 셈이었다. 나와 친구와 옆 팀의 커트머리 여인이 투어의 평균 나이를 낮춰주었다. 나와 친구는 저 커트머리 여인을 주시했다. 기회가 되면 말을 걸어서 고작 세 명이지만 젊은이들끼리 뭉쳐보자고.
사막 여행 첫날, 새벽 세 시가 되면 보름달이 숨고 별이 가장 잘 보인다고 했다. 알람을 맞춰서 세 시에 일어나 옆 팀의 커트머리 여인을 깨워서 게르 밖으로 나갔다.
숨이 멎는 광경이 펼쳐졌다. 내 눈 바로 앞에 어마어마하게 큰 오리온 자리가 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큰 반짝이는 방패를 들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환한 별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낭떠러지에 서있는 것 같았다. 아니, 낭떠러지가 아니라 지구 끝에 다다른 것 같았다. '경외'라는 말. 그러니까 경탄스럽고 두렵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떨어져 나올 것 같은 감각에 갑자기 무서워져 옆에 있던 친구를 붙잡았다.
"이 별을 본 건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나와 친구와 커트머리 여인은 오리온 자리를 눈에 담고 또 담고 싶었지만 이내 추워서 들어왔다. 몽골의 가을은 겨울이었기 때문에.
자유 시간이었다. 커트머리 여인에게 사막을 한 바퀴 돌자고 했다. 커트머리 여인은 나보다 세 살이 많았고, 여행을 좋아하며 겉보기와 달리 내향적인 성격이었다. 내가 말 걸지 않았으면 중년의 무리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U시에 산다고 했더니 그 여인이 자신도 과거에 그곳에 살았다고 했다. 나는 U시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으나 나의 옛 연인 S가 과거에 이곳에 살아 낯설지는 않다고 했다. 커트머리 여인이 말했다.
"S는 내 직장 동료였어. 같은 부서에 옆자리였는데?"
S는 스물한 살 때부터 6년을 만난 연인이었다. S와 내가 다른 시로 직장을 다니게 되자 S는 주말마다 나를 보러 버스를 두 번씩 타고 왔다. 커트머리 여인은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주말마다 여자친구 만나러 가는 대단한 남자였다고.
S의 이야기가 마중물이 되어 우리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친구의 친구는 나의 친구라고. 우리는 사막을 걸으며 끝도 없이 이야기했다. 삶과 친구와 별과 여행과 좋아하는 간식, 새콤달콤까지.
날이 흘러 몽골을 떠나기 이틀 전, 물이 나오는 좋은 캠프로 숙소를 옮겼다. 매번 물티슈로 닦던 숟가락을 물로 씻을 좋은 기회였다. 커트머리 여인에게 말했다. "이곳은 물건이 귀해서 물건과 노동력의 맞교환이 가능하지요?" 역사를 전공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가능하다고.
나는 새콤달콤을 꺼내며 말했다.
"숟가락을 씻어오는 대가로 새콤달콤은 어떤가요?"
그녀는 "새콤달콤이면 가능"이라며 숟가락을 받아 화장실로 떠났다. 내 친구는 세 살 많은 언니에게 미친짓을 한다며 여인을 따라가서 수저를 같이 씻었고, 나는 새콤달콤을 까서 돌아오던 여인의 입에 집어넣었다.
보름달이 지던 마지막 날, 캠프에 문제가 생겨 화장실의 변기는 막히고 전기는 끊겼다. 저녁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르는 이런 진부한 표현이 생생히 허용되는 그런 어두운 곳에서 밤을 맞았다. 어둡고 어두우니 은하수가 보였다. 은하수를 눈으로 본 옛사람들은 시력이 좋은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눈으로도 은하수가 보였다. 그러다 별똥별이 떨어졌다. 하나 둘 셋. 별이 하늘에 빼곡히 박혀 있었다. 또 이런 진부한 표현이 쓰일 수밖에 없는, 엄청나게 많은 별이 하늘을 수놓은 모습을 보았다.
'밤새 하늘을 보며 서 있었습니다'라는 결말이었으면 좋았으련만, 하늘을 보고 쳐들던 고개가 아프고 날이 너무 추워서 얼른 들어와 우리는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다며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몽골에서 별 보는 모임'
다음 모임은 바다였다. 낙타의 눈을 보며 바다가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양에서, 제주도에서, 서울에서 별을 보며 몽골을 기억했다. 한국의 오리온 자리는 그때보다는 작고 높게 펼쳐져 있었다. 커트머리 여인은 우리가 사온 간식들과 젤리를 보며 그때 얘기를 했다. 새콤달콤에 영혼을 팔게 한 나쁜 사람이 몽골에 있었다고. 나는 커트머리 여인에게 되물었다.
"새콤달콤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