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오글오글>은 글쓰기 모임 오글오글 작가들이 매 월 같은 주제로 발행하는 매거진입니다. 9월호 주제는 '추석'입니다.
명절이면 일가친척들이 큰집에 모이는 시절이었다. 차가 꼼짝도 하지 않는 귀성길을 견디고 푸세식 화장실의 공포를 감내해야 했지만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낸 명절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할아버지는 추석에 돌아가셨다. 안 씨 집안에 시집온 며느리들은 추석 전 날엔 차례를 위한 음식을, 추석 당일엔 밤에 지낼 제사 음식을 했야 했다. 이틀 연속 음식을 만드느라 엄마들은 힘들었겠지만 철없는 우리들은 따뜻한 음식을 옆에서 주워 먹을 기회가 두 번이나 있는 신나는 날이었다.
특히나 추석에는 차례음식은 아니지만 가장 좋아하는 이 전을 먹을 수 있어 더 좋았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준비하는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007 작전이 필요했다. 하나의 음식이 마무리되는 타이밍이어야 한다. 그 음식의 마지막 판을 부칠 때 엄마 옆으로 가 갈망하는 눈빛을 보낸다. 음식을 하느라 힘든데 귀찮으니 인상을 써서 쫒아보내려 하지만 자식이 먹고 싶다고 저리 눈빛을 보내니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가서 따와~
허락이 떨어지면 우리들은 우다다다다 큰 집 앞에 있는 밭으로 달려가 자기가 먹을 만큼 이것을 따다가 드렸다. 만들어 둔 반죽물을 슥슥 입혀 전을 부쳐주면 구워지는 족족 입으로 가져갔다. 가끔 할머니께 혼나기도 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전을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이 전은 바로 깻잎 전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골에 일가친척들이 모이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고 아빠가 돌아가시고 결혼을 한 이후로는 시골에 갈 일은 없었다. 시댁과 친정은 차례와 제사를 지내지 않기 때문에 명절 음식 또한 만들지 않는다.
추석이면 맛보았던 수많은 음식들 중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고 먹고 싶은 것은 깻잎 전이다. 밭에 가서 툭툭 따다가 할머니의 감시를 피해 음식 준비에 바쁜 엄마에게 애교를 부려 겨우 먹을 수 있었던 깻잎 전.
깻잎 속에 만두소 같은 것을 넣어 부친 전을 팔던데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시골표 깻잎 전은 얇은 것은 두장, 두꺼운 건 한 장으로 반죽물을 묻혀서 그대로 부쳐낸다. 깻잎향과 반죽의 바삭한 식감이 기가 막힌다.
시골에 가지 않은 이후 가끔 엄마에게 깻잎 전을 해 달라고 해서 먹었다. 내가 한 것보다 훨씬 맛있다.
아이들에게도 해 주었을 때 엄지 척을 날리며 잘 먹어서 자주 해 주고 싶지만 시골처럼 넓은 팬에 대량으로 부치는 게 아니라, 먹는 속도에 비해 만드는 속도가 따라가질 못하니 잘 안 하게 된다.
글쓰기 주제가 추석인데 온통 깻잎 전 이야기다.
그렇다.
나에게 추석은 깻잎 전이다. 깻잎 전은 많은 친척들이 모여 북적이던 큰 집 마당, 음식을 함께 만들던 마루, 사촌들과 함께 뛰어놀던 논과 밭, 깻잎 전을 먹여주던 엄마의 다정한 얼굴, 젊고 건강했던 아빠를 생각나게 한다.
올해 추석엔 깻잎 전을 부쳐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