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5: 바게트와 클램차우더
초, 중, 고를 통틀어 개근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어떤 날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꾀가 나는 것이다. 그러면 슬그머니 엄마를 불러 본다. "오늘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 학교에 못 가겠어." 그럴 때마다 기억 속의 엄마는 단 한 번도 '죽어도 학교에 가서 죽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소위 그 시절 부모님들의 국룰을 말하는 대신, 엄마는 조용히 학교에 전화를 걸어 담임 선생님께 나의 결석예고를 전해주곤 했다. 작은 도망으로부터 얻어낸 해방의 시간에 나는 하루종일 음악을 듣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밴드 앨범커버를 만들었다. 학교를 안 간 것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이나 후회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 도망이 마치 나의 작고 비밀스러운 특권처럼 느껴졌다.
졸업 이후 도망의 형태는 비밀스러운 특권에서 정말 사전적 의미인 '도망' 그 자체로 변했는데 (국어사전에서 도망의 의미는 탈출, 도주, 회피이다.), 그중 마지막 격인 회피에 아주 걸맞았다. 재수 때부터 미술로 전공을 바꾼 나는 갑자기 엄마 곁을 떠나 서울에 혼자 뚝 떨어진 것도 모자라, 나의 형편없는 투시력과 형태력에 진절머리를 치고 있었다. 내 후두엽의 업무태만으로 정상적인 소실점의 기준을 잃어버린 나에게 당시 '발상과 표현'이라는 시험은 끔찍함 그 자체였고 정확히 그날 늦여름의 저녁, 나는 도망을 시전하고 만다. 그 도망이 어찌나 치고 싶었는지 가방이며 집 열쇠며 다 내팽개치고 파스텔과 물감이 잔뜩 묻은 앞치마도 채 벗지 않은 채 나는 슬그머니 그러나 아주 맹렬하게 그곳을 뛰쳐나왔다. 다음 날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와 내 귀에 대고 '한 번만 더 도망가면 죽을 줄 알라.'라고 속삭일 때도 나는 그때의 도망이 간절했다.
도망은 너무 오해를 잔뜩 뒤집어쓴 단어다. 우리 사회는 암묵적으로 도망이 무언가를 책임지지 않고 내빼는 것이거나 힘든 것을 마주하지 않고 외면한다는 죄질을 두 글자 안에 새겨두었다. 특히, 아이는 도망칠 수 있지만 어른은 도망칠 수 없다(요즘은 아이도 도망을 칠 수 없는 것 같다). 대체 내빼는 게 뭐가 그렇게 나쁠 일이란 걸까, 세상은 지치고 멍들더라도 무언가를 마주하고 직면해서 이겨내는 게 성장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런 '성장'과 '도전'의 프레임을 늘 들으며 커왔다. 포기하거나 회피하면 크지 못하는 것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힘든 거라고. '직면'은 내가 사회의 필수적인 기능요소가 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도망'은 그저 나를 숨 쉬게 해 주고 살아가게 해 주었다. 도망은 성장이 될 수 없는 걸까.
회사에 오고 나서는 도망보다 더 큰일이 일어났다. 그나마 알고 있던 도망치는 방법조차 잃어버린 것이다.
세상에 호기심이 없는 어른에게 허락된 유일한 도망은 '감기로 인한 결근'이었다. 무언가를 열망하지도 않으면서 또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내심 불편한 나날들이 이어졌고, 직면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모습들도 마주할 때마다 계속 마음 한구석을 쿡쿡 찔러댔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선 우울증도 번아웃도 아니라는 진단을 내려줬고, 나는 스스로 회복하는 법을 필사적으로 되찾아야 했다. 나는 용기를 내서 스스로의 처방전을 지었다. 처방은 '도망'.
"너는 곧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생길 거야. 그 길이 생기면 곧장 떠나.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말이야. 너는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바로 떠나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야. 나는 그렇게 믿어." -호밀밭의 파수꾼-
스스로 처방전을 내리기까지, 그리고 처방전 실행을 위해서 많은 용기와 시간, 실행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도망이라는 하나의 선택을 위해 다른 나머지를 포기했다. 회사에서 나름의 합법적인 도망으로 한국을 떠난 지 3개월이 훌쩍 넘었다. 도망자의 생활도 순탄치만은 않다. 여기는 여기 나름의 생활이 있고, 새로운 규칙과 문화를 익혀야 하고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읽어내야 한다. 더욱이나 내향형의 도망은 엄청나다. 얼마 전엔 뉴욕에 사는 지인이 이대론 방구석에서 한 발짝도 안 나올 것 같다며 밖으로 끌어내주었다. 덕분에 계속 혼자였다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대형트리와 반짝이는 밤거리를 구경했다. 오늘은 친구의 남편이 갤러리 쇼를 같이 둘러보자고 고맙게도 연락을 주었다. 친구의 남편과는 영어를 쓸 수밖에 없었고 낯가림이 생길 것 같아 만나야 할지 잠시 주저했는데, 나는 오늘 내 도망의 진가를 깨닫게 된 것 같다. 조금 먼저 도착한 약속장소에서 우연히 The hideout이라는 반지하의 차이 바를 들어갔고 거기서 인생 처음 제대로 된 차이를 마시게 됐다. 파워 내향형인 내가 한 모금 마시자마자 카페 주인에게 달려가 여태 스타벅스나 미국 카페에서 마셔온 차이라테는 모두 가짜였다고 잔뜩 상기돼서 목청껏 그의 차이를 칭찬했다. 지인이 소개해준 갤러리는 또 어땠는가. 모마, 구겐하임과 같은 메이저 뮤지엄 외, 소규모 갤러리를 둘러볼 생각도 못했던 나에게 Bill Viola의 The Raft는 전율 그 자체였다. 용기를 냈지만 막상 오고 나서도 3개월 내도록 갈팡질팡하고 허우적댔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오늘 이렇게 나에게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와줬다.
스스로 내리는 처방이었기에 자신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제는 점점 확신한다. 내 처방전이 나를 '살리고' 있다는 것을. 이 도망이 끝나기 전까지 계속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려서, 이곳에서 건네주는 환대와 우연한 마주침과 사람들이 사는 얘기를 힘껏 받아들여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