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4: 수제비와 파케리의 그 어디 중간쯤
"누나, 누나가 지금 갈 수 있는 건 설렘이 없기 때문이에요.'
시간을 거슬러 가보면, 작년 5월.
코로나 이후 5년간 닫혀있었던 회사의 해외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크나큰 염원이나 열망은 없었다. 단지 마음속에 변화를 위한 작은 씨앗 하나를 심어 두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싹을 틔울 가능성이 없다시피 했던 씨앗이라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올해 초봄, 씨앗이 느닷없이 고개를 틔우더니 득달같이 내 삶의 공간과 시간을 파고들었다. 물을 달라하면 물을 주고 거름을 달라하면 거름을 줬다. 열망은 없어도 한 단계 한 단계를 허투루 하고 싶진 않았다.
정신없는 몇 개월이 지나고 9월 10일,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184일간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오면서 스스로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건 이 고된 과정에 대한 뚜렷한 목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난 대체 왜 이걸 지원했을까. 잠시나마 외국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던 걸까? 회사와 잠시 멀어지고 싶었나? 그도 아니면 쉼이 필요했었나? 그 어떤 이유도 질문의 답이 되지 못했던 건 마음속에 '설렘'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때 몹시도 이 교환 프로그램을 열망하던 때도 있었다. 당시에도 대단한 계획과 목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순수한 설렘이 있었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몽글해지고, 풍선을 등에 달아놓은 마냥 하늘에 붕붕 뜨는.
"나 그런데 어쩌지. 아무 설렘이 없어. 이래 가지고 가서 뭘 할 수 있긴 할까?"
"누나, 그래서 갈 수 있는 거예요. 설렘이 있을 땐 아무것도 되지 않아. 그제야 자기 모습과 상황이 정확하게 보이거든요."
망망대해에 떠있는 작은 배에 올라탔는데, 당분간 세계 모든 곳을 돌아다닐 수 있어도 집으로는 돌아올 수 없다. 참 한편으론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무풍지대에 갇히든, 순항을 하든, 폭우를 만나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치지 않고 노를 저으며 무탈히 원래 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한국이 당분간 덜 그립도록 김치, 된장찌개를 잔뜩 먹어야 하나 싶었지만 가기 전까지 먹어댄 건 놀랍게도 파케리였다. 파케리를 넓적하고 통통한 수제비가 될 때까지 푹 익혀서 토마토든 크림이든 냉장고를 비워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만들고 먹고 또 만들었다. 외국에 나가서도 파케리를 해 먹으면 집에서 요리하던 생각이 떠올라 작은 위안이 되기를. 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