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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사이에 바람이 춤추게 하라

Ep 19: 참송이 버섯과 사이의 맛

by SISU
KakaoTalk_Photo_2025-09-28-10-10-31 003.jpeg 제철 자연산 참송이 버섯과 은행을 가득 넣은 솥밥





결론을 내리지 않고 불확실한 상태로 남겨두며, 쉽게 답을 내리지 않는 그 모호한 상태를 견디는 것. 수수께끼를 수수께끼인 채로 간직하는 힘. 다니가와 요시히로는 내 안의 불안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는 그것을 성숙한 태도라고 했다.

하지만 매사에 맺고 끊음을 명확하게 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 불확실성을 그대로 둔다는 것은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질척이고 의미 없는 사이가 싫어 사람을 칼같이 끊어내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어른이 되었다면 관계를 무 자르듯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멀어지도록 두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인생에 절대란 없으니 어떤 관계든 단정 짓지 말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람에 대한 기대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나의 가장 큰 욕심이었다. 이 마음을 어쩌질 못해서 늘 혼자서 마음을 부풀렸다 쪼그라뜨리기를 반복했다.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에는 늘 아무런 바람이 불지 않는 무풍지대만 존재했다.


사람을 뜻하는 인간(人間)이라는 한자에 '사이(間)'가 들어가는 이유도 어쩌면 이 때문일 것이다. 관계는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멀기도, 가깝기도, 팽팽하기도, 느슨하기도 하다. 아무리 지척에 있는 관계라도 나와 그 사람의 '사이'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 상대를 가장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꺼이 정을 내어주고 소중하게 보살핀 관계일수록 마음속 공간의 틈은 좁아진다. 상대방에 대한 나의 기대와 욕심, 사랑은 마치 인력처럼 상대를 자꾸 내 쪽으로 끌어당긴다. 그렇게 빈틈없이 거리를 좁히는 게 내가 소중한 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이라 생각했다.


지척에 있는 사람의 고통 앞에서 나는 종종 무력했다.

위로의 말을 건네도, 곁에 서 있어도 그 힘든 마음을 대신 짊어질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서로의 사이가 모호해지고 기묘한 거리감만이 남는 것 같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가까움이 언제나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구나. 오히려 관계의 틈을 넓혀주는 일이 상대방에게는 숨을 고를 여유가 되고, 나에게는 조급함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지려 하기보다, 이 답답한 시간을 명료하게 정의하고 어떻게든 말과 행동으로 상대를 나아지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제야 안다. 느슨한 관계야말로 오래 함께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서로의 틈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숨을 고를 때,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을. 가을엔 버섯을 넣어 만든 제철 요리를 나누며, 그 사이가 허락한 따뜻한 여유를 함께 맛보고 싶다. 온기 품은 밥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KakaoTalk_Photo_2025-09-28-10-10-31 002.jpeg 은은한 향과 쫄깃한 식감의 참송이 버섯


KakaoTalk_Photo_2025-09-28-10-10-30 001.jpeg 육향 가득한 소고기와 버섯의 진득한 맛이 일품인 소고기 버섯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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