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날의 가벼운 사색
몸에 새겨진 도시의 냄새는 변화한 것까지 익숙한 것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강산이 변하는 동안 끈질기게 품고 있던 약속은 마침내 성사됐고, 규와 나는 바기오(Baguio, Philippines)에 와있다. 지연된 슬픔은 수많은 찰나의 아름다움이 되었다. 우리는 숨이 차게 구름 속을 거닐었고, 먹고 자고 싸는 것 말고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으며, 불안이 무색해할 만큼 단조로운 일상을 보냈다.
대부분의 시간은 고독했고 나로 하여금 안전을 느끼고자 했으며, 어김없이 눈을 뜬 아침이면 뒷문을 열어 나무와 교감했다. 차갑고 하얀 타일 바닥에 앉아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면 바닥에 비친 나무와 그 위로 흘러가는 구름이 보였고, 그럼 나는 목우처럼 머리를 바닥에 박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운 채 남겨두기로 한 것과 결코 놓을 수 없는 것들 사이에 있다. 있다.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