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그리는 첫 번째
: 삼촌이 살고 있는 방에 갈 일이 있었다. 삼촌의 깨끗한 방이 서러웠다. 군대 얘기를 할 때면 누구보다 진지하게 힘들었었다고, 건강 잘 챙겨야 한다고 말하는 삼촌이었다. 그래서일까. 내무반 각잡힌 전투복처럼 가지런히 옷걸이에 걸려 있는 외투와 바지들. 삼촌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그 방이 서러웠다. 그런 삼촌이 혼자 사는 그 방이 서러웠다. 찬장을 열어보니 수두룩 쌓여 있는 컵라면 용기. 어느 날 저녁을 컵라면으로 때우며, 그 용기마저 설거지 했을 삼촌의 모습이 서럽다.
삼촌은 사형제 가운데 셋째다.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삼촌은 구두쇠에 무서운 삼촌이었다. 삼촌의 차, 세피아엔 흙 한 톨이 떨어져 있지 않았다. 10년도 더 된 세피아의 광택은 삼촌의 수고로움 덕분에 끝까지 찬란했다. 명절 때 나를 포함한 조카들에게 건네는 용돈은 아예 없거나 오천 원짜리 한 장이었다. 삼촌은 그랬었다. 이런 삼촌도 술 앞에선 무장해제가 되었다. 주사가 잦을 만큼 술을 좋아하셨으니 살가운 남편도, 아빠도 아니었음을 짐작해본다. 작은 엄마도, 사촌 형도 삼촌을 존경하거나 배려하진 않았던 것 같으니까. 그런 삼촌이 혼자 살게 됐다. 이것저것 나누고 나니 널찍한 원룸이 하나 남았다.
그런 삼촌의 방을 갈 일이 있었다. 삼촌의 부탁으로 냄비에 담긴 음식을 비울 일이 있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욕실 슬리퍼, 돌돌 말아놓은 멀티탭, 어디선가 또 얻어왔을 두툼한 바닥매트, 기름 때 하나 없는 개수대, 정돈된 냉장고, 하나 손 댈 곳 없는 서랍장...방 전체가 곧 삼촌 같았다.
요즘 들어 삼촌에 대해 부쩍 생각이 많아졌다. 삼촌의 지금 처지에 이유야 있겠지만 나로서는 그런 삼촌의 모습이 서럽기만 하다. 조금만 더 둥글둥글하게 살아갈 순 없는 걸까. 악착같이 살아온 삼촌이 이런 대접을 받는다니 울컥하다가도 사람들이 밉다.
그런 일이 있었다. 내가 커서 삼촌을 다시 기억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 내가 아홉살 때던가. 병 때문에 엄마의 안색이 점점 나빠지자 어느 날 삼촌의 차가 마당으로 쑥 들어왔다. 삼촌과 작은엄마가 차에서 내리더니 삼촌이 엄마를 차가 있는 쪽으로 잡아 당겼다. “형수, 병원 가요. 병원 가서 검사 좀 받아봐요.”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가 삼촌이 그냥 돌아간 일이 있었다. 난 마당에 서서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삼촌이 '형수, 형수' 하고 있었을 때 삼촌은 분명히 울고 있었다. 엄마는 그날 낮에 있었던 얘기를 아빠에게 꺼냈고, 아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때의 난 엄마를 억지로 병원에 데려가려는 삼촌이 미웠다. 살갑지 않았던 삼촌이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으니 그냥 싫었겠지 싶다. 자줏빛 세피아를 타고 와서는 엄마에게 애원하듯 울었던 삼촌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 누가 그랬을까. 삼촌이니까 가능했던 행동들. 거친 표현 뒤에 숨어 있는 삼촌의 진심은 때론 바보같다고 손가락질 받기도 한다. 가끔 보면 삼촌은 지금 시대보다 3-40년 전 한 시골 마을에 어울리는 사람 같다. 복잡하고 이해타산적인 요즘 사회를 살기엔 삼촌의 행동은 너무나 투박하고, 순진하다. 어쩔땐 이런 생각마저 든다. 삼촌이 군대를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이랑은 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 삼촌의 젊었을 적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은 거다. 그래서 속상하다. 결벽증 같은 삼촌의 깨끗한 성격과 낮밤 없이 일했던 성실함이 사실은 삼촌의 옛모습일리 없다는 내 나름의 책임전가랄까...푸념의 대상이 군대뿐이라니 마냥 속상하다.
삼촌은 이제 혼자 산다. 가족들은 삼촌에 질린 채 곁을 떠났고, 앞으로 삼촌은 홀로 살아야 한다. 그런 삼촌을 옆에서 보자니 속이 쓰리다. 투박함과 순진함으로 치열하게 살아 온 사람의 말로가 초라하니 입이 쓰다. 침이 마른 입 안의 느낌처럼 텁텁하고 찝찝하다. 삼촌의 지금 모습을 삼촌 탓으로만 하는 것도, 오로지 남의 탓만 하는 것도 우습다.
소설 ‘안나 카레리나’에 행복한 가정에 대한 묘사가 있다. 행복한 가정의 이유는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의 이유는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 행복하려면 수많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하나라도 삐끗하면 불행해지고 만다. 행복도 운이 없으면 꿈나라 얘기지 싶다. 삼촌은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사람이었던 거고, 운이 좀 부족했다. 삼촌에게 세상은 손가락질 하겠지만 삼촌만이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위로하고 싶다.
이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오면 삼촌의 마음 한 켠에 꽃 필 수 있는 텃밭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