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그리는 두 번째
삼촌이 쓰러졌다. 의식 없는 채로 누워있기만 벌써 여덟 달. 말라가는 다리와는 다르게 삼촌의 숨은 여전히 가쁘다. 무슨 싸움을 그리 고되게 하는 걸까, 무슨 잠을 이리도 오래 자는 걸까. 삼촌의 팔, 다리는 떠날 채비라도 하는마냥 짐을 덜어내느라 작대기가 되어가는데 수염만은 다르다. 수염만은 제몸이 어떻게 된지도 모르는지 하염없이 자라기 바쁘다. 아니 오히려 수염이라도 자라면 다행인 건가 싶은 마음이 든다. 덥수룩한 수염을 비누 거품 잔뜩 묻힌 손으로 한 번 쓸고, 날이 잘 선 면도기로 삼촌이 면도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삼촌이 쓰러진 날. 그날이 유독 추웠던 건지 아니면 삼촌에게만 유독 추운날이었던 건지 알 길은 없다. 다만 삼촌이 더 쓸쓸하게 계절을 맞이했을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는 건 알고 있다.
삼촌은 고지식했던 사람이다. 여렸던 사람이다. 표현이 서툴고, 고집이 셌고, 술을 좋아했던 사람이다. 명절날 큰집에 다 같이 모여 형제들끼리 화투를 치다가도 조카가 실수로 집어든 천 원 한 장에 빈정이 상해 밖으로 나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건지 그렇게 매사에 조금의 여백도 없이 진심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하나 뿐인 자식이었던 사촌형에 대한 사랑이야 다른 형제들이 보기에도 지나치다 싶었음이 분명했다. 누구보다 자식을 아끼고, 사랑했다. 그렇더라도 그 방식이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있음을 알았더라면 자신이 아니라 자식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랑을 듬뿍 주는 게 어땠을까 싶다. 큰집에 식구들이 모여도 삼촌에 대한 시선이 다른 식구와는 조금 다름을 사촌형이 누구보다 잘 느끼게 됐을 시기에 상처받는 건 삼촌이 아니라 사촌형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만큼 유별난 사람이었다. 명절날 삼촌한테 지폐로 용돈 받기는 정말 어려웠는데 돈을 절대 허투루 쓰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삼촌은 옷 하나, 신발 하나, 남에게 보이는 것에 결코 사치란 없었던 사람이다.
술이 문제였다. 어떤 팍팍한 사정이 있었기에 술을 그리 좋아했던 걸까 싶다가도 꼭 무슨 이유가 있어서 술에 의존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 삼촌이다. 마시다 보니 적당히를 모르고 마시는, 그런 사람이었다. 기분이 좋아 마시는 술이 아니라 기분이 안 좋아 마시는 술이 대부분이었다고 기억한다. 술로 사건이 많았던 사람은 삼촌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술 때문에 사고를 낸 적 있고, 술 때문에 식구와 다툼이 많았다. 돈만큼 술을 절제하는 사람이었더라면 인생 굴곡의 절반 이상은 평탄히 보냈을 사람이 삼촌이다. 술이 삼촌의 삶을 좀먹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술 없으면 안 되는 인생을 살고 있었던 거다.
결국 삼촌은 가족과 갈라섰다. 그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어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한계는 있나 싶었다. 혼자 남은 삼촌은 아파트에서 나와 혼자 살기엔 충분히 넓은 원룸에서 지냈다. 어떤 일을 하며 지내는 건지 삼촌에게 딱히 묻지는 않았다. 마음으로 무얼 하든 잘 하기만 바랐을 뿐이다. 평생을 잡았던 운전대에서 손을 뗀 삼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던 건 맞지만 막연히 삼촌은 잘 지내왔으니까 잘 지내겠지 내심 그렇게 생각해왔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외로움은 어쩌지 못했을 것 같다. 하나 있는 자식과도 연락을 못 할 정도로 엉망으로 끝난 가정이 삼촌한테 어떤 의미였을지 짐작할 수도 없다. 자식에게만은 진짜였던 삼촌이었으니 떨어져 나간 그 공백을 무얼로도 대신할 수 없었다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술에, 담배에 기댔던 건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즐겨했던 낚시를, 기껍게 한 번 따라가지 못한 게 이제야 후회스럽다. 명절만 되면 입이 닳도록 얘기했던 고기 잡으러 가자는 말이 삼촌이 조카들에게 유일하게 살갑게 할 수 있는 말이었으니 그 말을 덥썩 잡아 얘기라도 시원히 들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모자람을 이제야 깨닫는다. 메기, 미꾸리, 중태미 한 대접을 잡아서 고추장 풀어 끓인 큰엄마표 천렵국에 명절 점심이 늘 북적였다. 삼촌이 그걸 그렇게 좋아했고.
아직 우리집엔 삼촌의 흔적이 많다. 내가 초등학교 때 삼촌이 가져온 발판이 아직도 우리집 현관문의 발판으로 남아 있다. 맨 바닥에서 현관까지 높이가 조금 있어서 벽돌을 차곡차곡 포개서 발판을 만드는 게 어렸을 적 나의 놀이기도 했다. 어떤 날은 큰 벽돌, 어떤 날은 작은 벽돌을 차례차례 쌓아서 엄마, 아빠가 드나들기 편하라고 이런저런 모양을 냈다. 그러던 어느 날 삼촌이 짙은 녹색의 파레트를 가져와 현관 앞에 발판으로 쓰게 만들었다. 20년이 지났는데 아직 멀쩡하니 튼튼한 파레트를 가져왔던 것 같다. 내가 벽돌 놀이 할 공간이 사라져서 당시 삼촌이 야속하긴 했지만 그런 내가 발판을 잘만 밟고 다니고 있다. 이때가 엄마가 아플 때였던 것 같다. 엄마는 병원에 있으니 아빠도 일이 끝나면 병원에 오다니기 바빴는데 자연스럽게 삼촌이 우리집에 이런저런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던 때였다. 장마철 비가 오니 집 뒤로 물이 고였는데 물길을 내던 기억이 나고, 농장 뒤편 산에서 흙탕물이 쏟아지자 그 물길도 냈던 기억도 또렷하다. 어떤 날은 초등학생 때 내 가슴보다 높은 바퀴달린 노란색 쓰레기통을 가져왔는데 집 모퉁이에 세워 놓고 쓰레기를 버리도록 했던 거 같다. 20년 전 그 위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아직도 그 자리에 그 노란색 쓰레기통을 세워 놓고 쓰레기를 모아 버리고 있다.
불행하게도 삼촌의 기억엔 내가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다. 나의 기억 속엔 삼촌이 분명한데 삼촌의 기억 속엔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무엇이든간에 준 사람은 모르고 받은 사람만 기억하는데 삼촌이 내게서 받은 무언가는 있기나 한 걸까, 생각할 만한 게 있기는 할까 싶었다. 내가 우리 가족 중 제일 막내인 탓도 있거니와 아직 삼촌에 무얼 해줄 상황은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핑계다. 낚시를 따라가도 열 번은 갔을 그 시간 동안 한 번도 가지 않은 것처럼 삼촌에 무엇이든간에 해줄 수 있었음에도 해줄 수 없던 이유만 늘어놓는 건 비겁한 것 같다. 이따금씩 삼촌에게 하던 전화를 조금 더 자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소리만 내놓는다.
엄마 팔을 잡아당겼던 삼촌이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자고. 갑자기 찾아와서는 울면서 엄마한테 애원했었다. 아직도 그때가 생생하다. 그렇게 진심으로 애원하듯 엄마를 병원에 가자는 사람은 삼촌이 유일했던 거 같다. 남들보다 조금 거친 방식으로, 늘 그렇듯 직관적으로 행동했던 삼촌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삼촌을 긍정하는 단 하나의 이유,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 마음이 삼촌을 추억하는 지금으로 이어졌다.
노란 쓰레기통으로, 그리고 엄마에 대한 애원으로 삼촌은 나의 팔마저 잡아당기고 있다. 수많은 날들 가운데서 평소엔 잘 기억도 나지 않던 물건이나 추억들이 한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좁혀질 때 또렷해지는 경우가 있다. 십수 년간 켜켜이 쌓인 삼촌에 대한 기억들, 그 파편들이 채 며칠 되지 않은 것처럼 공허하다. 가쁜 숨만 내쉰 채 얼마나 더 누워있을지 모르는 삼촌이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다. 눈을 감고 잠을 자듯 누워 있는 지금마저도 그저 행복한 꿈이라도 꾸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혹여나 눈을 뜨고 팔을 들게 되면, 조금 더 욕심 내서 허리춤까지 물이 차 있는 하천에 가서 먹지 못할 물고기를 잡을지라도 삼촌 따라 어망 한 번 던지고 오면 좋겠다. 평생을 바쁘게 살았던 삼촌 같은데 왜 핏기 없는 손을 잡아줄 사람이 사촌형이 아니라 조카인 나여야 했을까 야속하다. 삼촌도 마음대로 살아지지 않아 답답했겠지만 그런 삼촌을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을 가족들의 마음도 헤아려줬으면 한다. 그런 눈치로 조금 일찍 눈을 떠 주면 좋겠다. 만약 삼촌에게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지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우선 낚시는 꼭 가보고 싶다. 잡아 온 물고기로 천렵국을 실컷 끓여 식구들 삼삼오오 둘러앉아 얘기나 하며 먹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삼촌 마음에 노란 쓰레기통 같은 연민의 끈이 자리 잡았으면 한다. 삼촌이 밉다가도 그 따뜻한 마음을 떠올리게 하는 노란 쓰레기통처럼 삼촌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나쁜 일들이 생기다가도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틋함,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 그리고 삼촌을 위하는 가족들이 있음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추억 하나를 같이 만들고 싶다. 결국 삼촌이 했던 행동 하나가 나를 삼촌에게 잡아당기듯 삼촌과 함께 만든 시간이 삼촌을 꽉 붙들어 매 더 이상 스스로를 망가뜨리지 않게 하길 기대해 본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삼촌은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그 꿈이 너무 길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삼촌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