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모두가 잠든 새벽.
지나가는 차 소리마저 잦아드는 시간. 오가는 사람들의 분주함도 사라진 때 책상 앞에 앉아 생각하길 좋아했다. 뭐라도 끄적일 글감이 있으면 더 좋아했고. 토독토독 가볍게 눌리는 노트북 키 버튼 소리와 깊게 내쉬는 숨소리만 가득한 이 고요함이 쉬우면서도 어려운 그런 상황, 그런 시간이 되었다. 참 아쉽게도.
대학을 졸업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서울 동작구 대방에 원룸을 하나 얻었다. 당산역 인근 7층의 원룸과 대방역 근처 반지하 원룸을 놓고 고민하다 반지하 원룸을 계약했다. 1호선이 지나가니 어디든 가기 편할 듯한 인상이 있었고 뭣보다 신축인 점, 반지하지만 커다란 발코니 창이 있어 이걸 열면 나름 널직한 공간이 나온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서 2년하고 1개월의 시간동안 나름의 서울 라이프를 즐긴 게 문제였다.
서울에서의 삶. 내가 이전에는 감히 경험해보지 못한 혼자만의 생활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는 무질서한 삶에 그렇게 완벽하게 노출된 때가 있었나 싶다. 내 인생 처음으로 그렇게 오랜 시간 혼자 지내면서 서울에 살아야만 하는 이유, 그 목적을 잊게 된 나태함이 두고두고 아쉬워진다. 바라던 언론사 취업의 문은 못 두드리고 카페 알바를 전전하며 커피 머신 포터기만 연신 두들겼다. 공부와 취업, 연애와 취미, 휴식과 친구 중 어느 것 하나 양보하고 싶지 않았던 이 시간들이 결국엔 선택의 폭을 자꾸만 좁혀갔다. 어디든 취업할 수 있었던 스물 여덟의 나는 스물 아홉, 서른이 되어서야 정말 어디라도 가자는 조바심의 아이콘이 되었고, 입으로만 떠들던 구직활동의 결과는 나를 대방에서 혜화동으로 또 한 번 현실도피를 하게 만들었다. 대방은 내게 도전이나 첫 서울 생활이라는 의미를 갖는 공간이었다면 혜화는 지지부진한 삶의 연장일 뿐이었다. 대방에서 혜화가 아니라 용인으로 갔어야 2년의 시간을 다시 허비하지 않았을 텐데 혼자 사는 삶이 그토록 좋았다. 돌아가는 게 겁이 났던 것도 크고.
대방에서의 내가 혜화라고 해서 크게 달랐을까. 결코 아니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한다는 게 시사 이슈를 따라가고 이슈에 대한 내 글을 계속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한데 나는 사실 이조차 쉽지 않았다. 일주일에 글 하나 준비하고, 쓰고, 첨삭하는 게 버거울 만큼 부담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혜화지만 용인 본가에 일주일이 멀다 하고 내려가고 이틀, 사흘씩 일을 돕다 다시 올라오니 사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하루를 참 조마조마하며, 작은 일 하나를 하루의 끝까지 미루다 미루다 결국엔 하는 둥 마는 둥 그렇게 해치우는 날이 잦아졌다. 이런 생활에서 뭐 얼마나 대단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었을까.
하나 떠오르는 시가 있는데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는 붙잡혀간 소설가들을 위해 싸우는 대신에 기름기만 가득한 갈비탕에 분노하는 필자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서울에서의 내 삶이 딱 그랬다. 중요한 게 뭔지는 알면서 중요하지도 않은 곁가지에 괜히 분노하고, 그리고 그 분노에 만족하는 도돌이표 생활을 했다. 그게 전부였다. 한치의 발전도 수정도 보완도 스스로 용납하지 않은 완전히 정체된 시간. 지금에서야 말하건데 백수의 삶이 지독히도, 정말 지독하게도 편했던지라 취업을 하면 이 편함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란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다. 가만 보니 서울에서의 삶에 공부는 둘째고 쉬는 게 첫째였다. 결국 본가로 돌아가게 될 거란 짐작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어차피 본가에 주기적으로 오가던 상황이어서 취업에 의욕이 없었다. 과거엔 없는 만약을 굳이 붙이자면 공부에 열과 성을 다하던 스물 일곱의 내게 본가로 한 달씩, 삼주씩 불려다닌 일이 없었더라면 지금 어땠을까, 아직 존버하며 바늘 구멍을 통과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하긴 하다. 취업하고자 하는 의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는 더 강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결국 그 고비를 못 넘긴 내가 조건을 달며 상황이 달랐겠거니 하며 아쉬워하는 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 같다. 이러나 저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용인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아버지랑 일을 한 지 8개월이 다 되어 간다. 며칠씩 잠깐 도우며 봤던 일들과 확연하게 달랐다. 어깨너머로 본 건 있어서 대강 알고는 있었지만 동물을 기르는 일이 이토록 예민해져야 하는 일이었던가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아침 6시부터 시작되는 하루 일과가 거침 없이 이어져 8개월이 다 되는 동안 사건도 많았고 사고도 많았다. 미처 몰랐던 걸 알게 된 일도 있었고,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일들을 정확히 알게 된 계기들도 있었다. 하나씩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 가는 시간,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운영해야 되지 않을까 고민하는 시간들이 부담이면서 한편으론 긍정적이었다. 대방과 혜화에서는 불가능 했던 고민의 시간들, 발전의 시간들을 맛본 까닭일까 괜시리 뿌듯하기도 했다.
돼지를 기른다. 정확히는 기르기로 마음먹은 지 8개월차 초보 축산인이다.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어렸을 적의 그 시간부터 함께한 돼지로 결국 돌아왔다. 빙빙 돌다 결국 내가 태어난 이곳 용인으로 돌아온 나는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갖고 어떤 방향으로 우리 농장을 안내할까. 기쁜 일, 슬픈 일이 번갈아 오는 거야 예삿일이니 긴 호흡으로 방향성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내 자신에 대한 작은 바람이 하나 있다. 아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농장에 스며들고 있다. 아버지의 역할이 하루에 아주 조금씩 내게로 옮겨지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의 시작이 타의냐 자의냐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그걸 따지며 불평만 늘어놓기엔 내 나이가 결코 가볍지 않다. 내가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이 아닐까란 한 가닥 희망을 붙들고 8개월이 1년이 되길, 3년이 되길, 5년, 10년이 되길 조심스럽게 기대한다.
아주 고요한 새벽. 남들이 자는 시간에 혼자 책상 머리에 앉아 연필로 서걱서걱 쓸 데 없는 글이나 종이에 끼적이는 그 루틴을 좋아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괜히 글로 적기도 했다. 8개월 동안 본가에서는 단 한 번도 새벽 시간에 글을 쓴 일이 없다. 새벽 시간에 부리는 사치가 다음 날 피로로 몰려오는 게 가장 컸고, 글감은 많았지만 글을 써야겠다는 행동으로 이어지기엔 몸이 피곤했다. 쉬는 주말에나 가끔 짧게 의미 없는 말들이나 적어 놓고 노트북을 닫기 일쑤였는데 8개월 동안 마땅한 글 하나 없다는 게 못내 아쉽기도 하다. 대방과 혜화에서는 내가 그래도 글쓰기는 놓고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해주는 게 새벽 글쓰기였는데 용인에서는 도리어 현실의 삶을 열심히 잘 살고 있습니다 하고 보여주는 증거라는 게 새벽에 글 하나 쓸 틈 없이 자는 데 바빴습니다 하는 푸념이라니 참 웃프다. 일이 좀 고되서 몸이 힘들면 글 쓰는 게 생각나지 않기도, 우선 순위가 밀리기도 하겠지만 글 쓰는 습관은 잊고 싶지 않다. 꼭 새벽이 아니어도 내 마음 속 새벽을찾아 들어 일주일에 하나, 한 달에 하나라도 좋으니 내가 사는 이야기, 신변잡기라도 꾸준히 기록했으면 한다. 4년의 서울생활이 내 눈에 당장 보이는 걸로 남지 않을지는 몰라도 내일의 글로, 여름의 일기로, 겨울의 하소연이라는 형식, 어쨌든 글로 이어지면 뭐가 됐든 난 일관성 있게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걷는 중이 될 테니까 덜 억울한 일, 더 떳떳한 일이 되지 않을까!
다음 글은 내 일과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녹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