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거인의 발자국
새벽녘부터 여물이의 잔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엄마는 눈 감은 채 아이를 꼭 안고 등이며 몸뚱이 여기저기를 쓸어 주었다. 기침소리는 조금 잦아드는 듯했지만 여물이는 좀처럼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동틀 무렵, 기어이 일어나 앉았다. 다 못 잔 잠에, 멈추지 않는 기침에 자기도 힘든지 엄마를 부르며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와 아빠는 이때까지도 그저 감기인 줄 알았다.
“엄마, 가려워.”
여물이가 목을 긁었다. 열꽃이 피어났다. 한동안 잠잠해서 음식을 가려 먹이지 못했다. 방심한 틈을 타고 아토피가 재발한 것이다. 기침 같은 건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는 얼른 약상자를 가져왔다. 물뿌리개 통에 약 분말을 넣고 물과 함께 섞었다. 아빠는 아이의 옷을 벗겼다. 벌써 가슴과 등에 붉은 돌기가 섰다. 긁지 못하게 두 손을 꼭 붙잡았다. 엄마는 여물이 몸에 약물을 뿌렸다.
“따가워. 따가워. 엄마. 엄마아!”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그렇다고 멈출 수 없었다. 좋다는 약은 다 써봤지만 지금 쓰는 것이 제일 나았다. 당장은 따가워도 곧 나아질 것이다. 아빠는 한 발로 발버둥 치는 여물이의 다리까지 눌렀다.
피어오르던 돌기가 크기를 멈추고 다소 진정되기 시작했다. 여물이가 으르르 몸을 떨었다. 새 속옷을 가져와 갈아입혔다. 이불로 몸을 두르고 꼭 안아주자 스르르 눈이 감겼다.
여물이가 잠결에 간간이 눈을 뜨면 아파트 지하주차장이고 또 눈을 뜨면 차가 어디를 향해 달려갔다.
“아빠아, 어디 가?”
여물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 옆으로 아름드리나무들이 휙휙 지나쳐갔다.
“네가 좋아하는 데 가잖아. 수목원에 가는 중야.”
차는 수목원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평일 주차장은 한산했다. 아빠는 차 뒷문을 열고 여물이를 안아서 내렸다. 어제 내린 비로 바닥에는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고, 나무와 풀들은 잔뜩 물기를 머금었다. 들이쉬고 내뱉는 숨이 한결 편하고 촉촉했다. 아빠는 여물이의 윗옷 단추를 풀고 목과 가슴께를 살폈다. 여전히 붉었다.
안내소에서 예약한 이름을 대고 입장권을 받았다.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널찍한 다리를 건넜다. 불어 오른 냇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흘렀다. 길 가운데 군데군데 상수리나무가 서 있고, 아빠는 비를 맞고 떨어진 덜 자란 상수리를 주어 여물이에게 건넸다. 여물이는 받기 싫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배고파.”
산림박물관을 지나쳐 개울을 건너고, 유리 온실을 왼쪽에 두고 좀 더 들어가면 부들이 무성한 연못이 나왔다. 그 옆에 탁자와 의자가 있는 쉼터가 있다.
아빠는 여물이가 잠들었을 때 후다닥 만든 도시락을 펼쳤다. 여물이는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많지 않았다. 특히 고기와 계란을 먹을 수 없어 끼니때마다 고민이었다. 오늘은 멸치 볶음과 물에 빤 묵은 김치 그리고 구운 김을 싸왔다. 물릴 만도 한데 밖에 나오니 입맛이 살아난 듯 주는 대로 잘 먹었다.
“아이가 많이 아픈가 보네요.”
아빠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잠깐 고개를 돌리는 가 싶더니 다시 젓가락으로 밥을 떠 여물이 입에 넣어 주었다.
“목이 빨가네.”
아토피로 달아올라 있는 목 언저리를 보는 듯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도 몸을 돌리며 말했다.
“예, 많이 좋아 졌…….”
그러다 하던 말을 멈췄다. 눈앞에 커다란 곰이 서 있었다. 곰은 새끼 곰 손을 잡은 채 여물이와 아빠를 보고 있었다. 새끼 곰은 수줍은 듯 엄마 곰 뒤로 몸을 숨겼다. 계속해서 곰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아빠는 여물이를 둘러업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저 위 숲 속 마을에 유명한 의사 선생님이 계신데 같이 가보실래요? 저희 아이도 감기에 걸려서 지금 가는 길이거든요.”
아빠는 여물이를 봤다. 여물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으로 김을 집어 입에 넣었다. 엄마 곰이 아빠를 재촉했다.
“어서요. 아주 용하다니까요.”
어미 곰이 새끼를 데리고 숲 속을 향해 먼저 걸었다. 아빠는 빈 도시락을 쌌다. 그리고 여물이 손을 잡고 곰을 따랐다.
앞서 걷던 새끼 곰이 뒤를 돌아보며 여물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코에서 콧물이 흘러나오더니 세차게 기침을 했다. 엄마 곰은 털이 무성한 손으로 새끼의 코를 닦았다.
좁은 오솔길이 끝나자 넓은 거리가 나왔다. 수목원 여기저기 안 가본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아빠는 처음 보는 곳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숲 속에 마을이 나타났다. 아니 마을이라기보다 지방의 어느 읍내 같았다. 반듯한 길이 있고, 통나무로 만든 2층 집들이 나란히 모여 있다. 갖가지 동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며 바삐 어딘가를 오갔고, 물건을 사는지 가게를 쉴 틈 없이 들락날락거렸다. 쥐, 토끼, 다람쥐 같은 작은 동물에서 멧돼지, 곰, 늑대 같은 큰 동물까지 우리나라 숲에 산다는 동물들은 죄다 이 거리에 있었다. 사람은 여물이와 아빠 둘 뿐이었다. 갑작스럽기는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웬 사람이 나타나자 지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둘을 쳐다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들 가던 길을 갔다.
“이쪽으로 오세요. 저기 2층이에요.”
엄마 곰이 친절하게 병원을 가리켰다. 사람이 사는 곳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간판이 없다는 것이다. 곰을 따라 통나무 건물 계단을 올라 2층으로 들어섰다.
병원 안에는 동물들이 아니 환자들이 가득했다. 여물이와 아빠를 본 반응은 거리에서와 비슷했다. 놀란 눈으로 둘을 보다 이내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엄마 곰은 접수대로 가서 오소리 간호사와 얘기를 나눴다. 간호사는 빈자리를 권하며 기다리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입구에서 쭈뼛거리고 있는 아빠를 향해 말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아빠와 여물이도 접수대 앞으로 갔다.
“누가 아프신 거예요?”
“제 애 가요.”
“어디가 아픈데요?”
아빠는 여물이의 목 부위를 간호사에게 보이며 말했다.
“아토피가 있어서…….”
“알겠습니다. 앉아서 기다리세요.”
오소리 간호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진찰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잠깐 열린 문 사이로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와 진찰을 받고 있는 환자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와 여물이는 엄마 곰과 새끼 곰 옆에 앉았다.
새끼를 데리고 온 동물들이 많았다. 새끼 너구리와 오소리가 대기실 가운데 마루에 앉아 뒹굴뒹굴 놀았다. 새끼 곰도 그 애들과 섞였다. 그러다 여물이를 보고 오라고 손짓을 했다. 여물이는 먼저 아빠를 봤다.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자 빙긋 웃으며 새끼들 사이로 다가갔다. 여물이는 금방 새끼들과 뒹굴뒹굴 어울렸다.
차례대로 환자들이 진찰실로 들어가고 나왔다. 마침내 엄마 곰과 새끼 곰이 들어갔다. 대기실이 텅 비었다. 아빠는 지루한지 하품을 했다.
“환자 분 들어가세요.”
간호사의 말에 아빠와 여물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엄마 곰과 새끼 곰이 진찰실을 나왔다.
“진찰 잘 받고 가세요.”
엄마 곰이 말했다.
“예, 감사합니다.”
아빠가 엄마 곰에게 인사했다.
“잘 가.”
여물이도 새끼 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둘이 진찰실로 들어섰다.
턱에 긴 수염을 단 할아버지 염소는 두 손을 가운 주머니에 찌르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앉으라는 말이 없었다. 피곤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빠는 조심스럽게 여물이를 앞으로 세우며 아픈 곳을 얘기하려 했다. 그러자 염소 할아버지는 손을 들어 아빠를 제지했다. 무겁게 등받이에서 몸을 뗐다.
“병이라야 치료를 하지. 병도 아닌 걸 가지고 어찌 여기까지 왔나.”
혼잣말 같기도 하고 아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아빠가 말했다.
“한 동안 잠잠했는데 오늘 새벽부터 이렇습니다. 어떻게 치료를…….”
“글쎄, 병이 아니라니까. 난 병을 치료하지 병이 아닌 걸 치료할 수 없어.”
“병이 아니라니요. 아이가 이렇게 아프다고 하는데.”
아빠는 조금 화가 난 말투였다. 그런 아빠를 할아버지는 안경 너머로 쳐다봤다.
“그렇게 아프다고 하는데 사람 의사들은 치료할 수 있다고 하던가?”
염소 의사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아토피는 식단을 조절하고 약을 바르면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불가능했다. 아이가 자라서 간과 콩팥 기능이 활발해지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알려져 있다. 그때까지 견뎌야 한다.
아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날들이 떠오르는 듯 고개를 숙였다. 여물이가 아빠의 손을 꼭 잡았다.
“내가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테니 한 번 해볼 텐가?”
할아버지의 말에 아빠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예, 뭐든지 하겠습니다. 가르쳐만 주십시오!”
큰 소리로 말했다.
여물이와 아빠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여기 올 때는 보이지 않았던 큰 바위 산이 보였다. 둘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그때, 병원 대기실에서 같이 놀았던 새끼 동물들이 다가왔다.
“다 끝났어?”
“염소 할아버지가 뭐래?”
“저기 놀이터 있는데 같이 가서 놀자. 응?”
쉴 틈 없이 여물이에게 말을 걸었다. 여물이가 물었다.
“대장간이 어디야?”
“대장간? 저기 위에 있는데. 거긴 왜?”
“응, 할아버지가 거기로 가보래.”
“따라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새끼 곰과 너구리, 오소리는 윗길을 향해 뛰었다. 여물이와 아빠도 따라 달렸다.
대장간이 가까워지자 깡깡- 망치 소리가 들렸다. 화로에서 시뻘건 불이 일고, 덩치 큰 누군가가 힘차게 망치질을 했다. 언뜻 보면 사람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사람처럼 생긴 고릴라였다. 망치질을 하던 고릴라는 여물이와 아빠를 보고 하던 일을 멈췄다.
“우워, 다신 사람을 못 만날 줄 알았는데.”
고릴라는 여물이와 아빠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콧바람을 식식거렸다.
“아저씨, 저희가 데려왔어요.”
“염소 할아버지가 아저씨한테 가보라고 했데요.”
새끼들은 신이 났다. 곰이 여물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가 많이 아파요.”
고릴라는 갑자기 불끈 쥔 주먹으로 나무 탁자를 내리쳤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탁자는 두 동강이 나고 그 위에 진열해 놓았던 각종 쇠붙이들이 나뒹굴었다. 새끼들은 화난 고릴라를 보자 저만치 도망을 쳤다. 놀란 아빠는 급히 두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왜, 왜 이러는 겁니까?”
고릴라는 두 주먹으로 제 가슴을 세차게 두드리며 괴성을 질렀다. 여물이가 울기 시작했다. 아빠는 도망가지도 못하고 어쩔지 몰라 아이를 꼭 안았다.
얼마 후, 고릴라의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고릴라는 울먹이는 여물이를 가만히 보더니 대장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안하오. 이러면 안 되는데. 동물원에 갇혀 살던 때가 생각나서 그랬소.”
흥분을 가라앉힌 고릴라가 아빠에게 물었다.
“그래, 뭘 구해오라고 했습니까?”
아빠가 말했다.
“거, 거인의 발자국에 고인 물을 떠 오랍니다.”
고릴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제 비가 많이 와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거요.”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거적 데기를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올 때는 한 손에 커다란 대나무통을 들고 나와 아빠에게 던지듯 건넸다. 묵직했다.
“이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큰 바위 산이오.”
고릴라는 다시 화로에 풀무질을 시작했다. 아빠는 한 손에 대통을 안고, 한 손은 여물이 손을 잡고 큰 바위 산을 향해 출발했다.
하늘 높이 뻗은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이 해를 가렸다. 여기 있는 나무들은 수목원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굻고 곧게 자라 있었다. 아빠와 여물이는 숨을 헉헉거리며 산을 올랐다. 거인의 발자국을 찾기는커녕 걸음을 떼기에도 힘이 들었다.
털썩 주저앉았다. 배낭을 내리고 물통을 꺼냈다. 여물이도 온몸이 땀에 젖었다. 여물이에게 물통을 건넸다. 벌컥벌컥 마셨다. 아빠가 받아 마셨다. 간신히 한 모금을 넘기자 물이 바닥났다.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아빠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이런 곳에는 으레 골짜기도 있고 옹달샘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나무뿐이었다. 포기하고 제 자리로 돌아왔다. 배낭이 보이지 않았다.
“여물아. 아빠 배낭 어디 갔어?”
“저기.”
여물이가 나무 사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배낭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 커다란 뭔가가 배낭을 뒤졌다. 산발한 머리에 얼굴과 가슴 언저리를 빼고 온몸이 털로 뒤덮인 사람. 바로 염소 할아버지가 말한 거인이 틀림없었다.
거인은 배낭 속에서 대나무통을 꺼냈다. 킁킁 냄새를 맡더니 커다랗고 누런 이로 마개를 물어 뺐다. 그러고는 통 채 벌컥벌컥 마셨다. 대통이 마치 여물이가 마시는 요구르트 병 같았다. 다 비우고 나자 커억- 하고 우렁찬 트림을 했다. 아빠 발아래로 배낭이 툭 떨어졌다. 거인이 허리를 숙이고 아빠와 여물이를 살피기 시작했다. 코를 벌름거리며 뭐가 더 없나 찾는 모양이다. 그러다 허리를 펴고는 기분이 좋은 듯 기괴한 소리로 껄껄껄 웃어댔다.
온 숲을 울리는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거인은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고 어딘가로 사라져 갔다. 아빠와 여물이는 그제야 서로 마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움푹 팬 거인의 발자국 안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물은 이끼와 나무들 틈에서 나와 금세 가득 찼다.
“아빠, 물이야.”
아빠는 들고 있던 물통에 한가득 물을 채웠다. 배낭 속에 물통을 넣고 여물이의 손을 잡았다. 이제 산을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데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쪽에서 올라온 건지 방향을 알 수 없었다. 두리번거리는 아빠를 올려다보던 여물이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빠, 이거 따라가면 안 돼?”
거인의 발자국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빠와 여물이는 발자국을 따라 산을 내려갔다. 갈수록 어두워졌다. 선명했던 발자국도 차츰 수풀에 가려 찾기가 어려웠다. 아빠는 배낭을 앞으로 메고 여물이를 업었다. 그저 산 아래를 보고 내려갈 뿐이었다. 그러다 발을 헛디뎌 데굴데굴 굴렀다. 아빠와 여물이가 따로 굴렀다. 한참을 구르다 숲에서 튕겨져 나왔다.
“여물아. 괜찮아?”
“응, 괜찮아.”
아빠가 여물이를 일으켜 세웠다. 해가 서산에 지고 있었다.
“아니, 당신들 아직도 안 나가고 여기서 뭐 하는 거요?”
제복을 입은 관리인 아저씨가 전동 카트에 앉은 채 두 사람을 바라봤다.
“아, 산에서 길을 잃어서 잠시 헤맸습니다.”
“산책로가 다 돼 있는데 길을 잃을 게 뭐 있다고.”
아빠는 저만치 나뒹굴고 있는 배낭을 찾아들었다.
“얼른 타요. 입구까지 데려다 드릴게.”
수목원 정문을 나와 주차장에 오니 아빠 차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아름드리나무가 있는 길을 따라 차가 달렸다. 수목원 경내를 벗어나자 길 양옆으로 즐비한 식당과 카페가 늘어섰다. 그리고 그 너머로는 뭔가를 또 짓는지 여기저기 파헤쳐져 누런 속살을 드러낸 산들이 보였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아빠는 잠든 여물이를 깨워 차에서 내렸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욕실로 데리고 갔다. 땀에 전 옷을 벗겼다. 목과 몸통 여기저기에 아직도 붉은 것들이 가시지 않았다. 머리를 감기고 몸을 씻겼다.
“아빠, 오늘 가져온 물로 목욕해야 한다고 했잖아.”
“아참, 그렇지.”
아빠는 배낭 속에서 물통을 꺼내 왔다. 뚜껑을 열고, 조금씩 물을 흘려 여물이의 목과 몸통을 적셨다.
“어때?”
“시원해.”
물 한 통이 금세 동났다.
수건으로 머리와 몸을 닦아주고 잠옷을 입혔다.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눕히자 여물이는 바로 잠이 들었다. 아빠도 젖은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가만히 떠올려 봤다. 왠지 몇 년 전 기억처럼 가물가물했다.
잠든 여물이 곁에 앉았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는 잰걸음으로 달려왔다.
“좀 어때?”
“많이 좋아진 거 같아.”
엄마가 가방에서 새 약을 꺼내며 말했다.
“잠들었을 때 발라주자.”
“쓰라려서 깨어나면 어쩌려고.”
“이건 괜찮은 약이야. 어서 옷 좀 벗겨 봐아.”
아빠는 할 수 없이 여물이의 잠옷 단추를 풀었다. 드러난 여물이의 몸을 보자, 엄마와 아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좀 전까지만 해도 선명했던 붉은 것들이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희고 매끄러운 피부가 믿기지 않은 듯 엄마는 바지까지 벗겨 봤다. 거기도 말끔했다.
“오늘 애 데리고 어디 병원 갔었어?”
그제야 아빠는 환하게 웃었다.
“응, 아주 용한 델 갔다 왔지.”
아빠는 옷을 다시 입히고 단추를 채웠다. 그러고는 여물이 곁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