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물이-4

제4편. 꾀돌이 타잔

by 지형주

“아빠아! 타잔이 누구야?”

작은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여물이가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거실 끝자락에 걸린 저녁 햇볕을 방석삼아 빨래를 개던 아빠는 심드렁하게 아이를 봤다.

유치원 2년 차에 접어들며 여물이는 부쩍 궁금한 것들이 많아졌다. 어지간한 것들은 바로바로 얘기해주고 모르는 것은 책을 찾거나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보여줬다. 그런데 뜬금없이 ‘타잔’이라니. 아빠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뭐부터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렸을 적에 텔레비전으로 봤던 미국 드라마가 맨 먼저 떠올랐지만 tv속 화면들만 겹겹이 겹칠 뿐 말로 맺히질 않았다.

“어디서 봤어?”

아빠가 물었다.

“「콩콩이와 함께 이야기 속으로」에 나왔어.”

여물이가 좋아하는 ebs 프로그램인 것 같다.

“타잔이 사람이야? 근데 왜 원숭이랑 살아? 정글북에 나오는 걔랑 같은 거야?”

질문이 쏟아졌다.

“원숭이? 고릴라 아냐?”

“고릴라 아냐. 고릴라는 어엄청 크잖아.”

“그런가……”

아빠의 말끝이 흐렸다. 이럴 땐 얼른 스마트폰으로 찾아봐야 하는데 전화기는 저기 식탁 위에 있었다. 여물이는 여전히 눈알을 떼굴떼굴 굴리며 아빠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 정글북은 아니지. 정글북에 나오는 애는 어리잖아. 타잔은 어른이고. 안 그래?”

“맞아. 그 애가 커서 타잔이 되는 거야?

“야, 콩콩이 끝나겠다.”

“아차!”

여물이가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그 틈에 아빠는 얼른 식탁으로 가서 검색을 시작했다.

전화기를 탁 하고 내려놓자 여물이가 방에서 나왔다.

“「콩콩이와 함께 이야기 속으로」 끝났어.”

“정글북에 나오는 아이는 모글리잖아. 맞지? 타잔이랑 달라.”

“맞아! 모글리!”

“모글리가 사는 곳은 인도지. 타잔이 사는 곳은 아프리카고.”

여물이는 후다닥 싱크대 아래에 붙여 놓은 세계지도 앞으로 달려가 앉았다.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지도를 훑으며 뭔가를 찾더니 어딘가를 콕 찍으며 외쳤다.

“여기다! 아프리카.”

아빠는 한 눈으로는 여물이를 보고 또 한 눈으로는 스마트폰을 열심히 넘겼다.

“아빠, 근데 아프리카에 나라가 너무 많은데……?”

고개를 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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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 그러니까. 콩고다. 콩고. 찾아봐. 타잔이 사는 곳 이래.”

아이는 아빠를 보다 다시 지도를 보며 ‘콩고’를 찾기 시작했다.

여물이는 아직 한글을 완전히 읽을 줄 모른다. 받침 없는 것은 어느 정도 읽는 듯했으나 받침 있는 것들은 힘들어했다. 조금 있으면 답답한 마음에 얼굴이 울상이 될 것이 뻔했다. 아빠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아이 곁에 앉으며 손가락으로 아프리카 어딘가를 가리켰다.

“여기다. 콩고. 콩고 민주공화국이라고 쓰여 있네.”

여물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찬영이랑 오서원은 한글 다 읽을 줄 알지?

“아니.”

“아니긴 내가 엄마들하고 얘기해봤는데 다 읽을 줄 안다더라.”

“걔들은 학습지 선생님이 맨날 온다 뭐.”

“그래? 너도 학습지 할래?”

“싫어! 공부하기 싫어!”

아빠는 껄껄껄 웃었다.

“알았어. 그럼 아빠가 타잔 이야기해줄게.”

그제야 여물이는 아빠에게 돌아앉으며 고개를 살짝 들었다.

“재미없으면 안들을 거야.”

“당연히 재밌지. 아빠가 어렸을 적에 tv에서 봤던 거야.”


타잔은 늘 침팬지와 함께 다녔다. 이름은 ‘치타’다. 그날도 치타와 함께 한적한 원주민 마을에 들렀다. 여기 마을은 밀림 속 여느 마을과 다르게 외부와 연결된 곳이다. 마을 규모도 컸으며 서양인 의사 부부가 정착해 살았다. 의사 부부 외에도 함께 온 조수들이 있고, 마을의 원주민들 모두 서양식으로 옷을 입고 아이들은 천막 학교에 다녔다. 피부색이 서로 다른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면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며 함께 놀았다. 타잔은 이곳 사람들 모두와 친했다.

천막 병원은 오늘도 환자들로 붐볐다. 병원에 오기 위해 삼사일을 걸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의사 부부는 너무 바빠 타잔과 눈인사만 나눴다. 타잔은 뭔가 도울 일이 없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마음을 알았다는 듯 원주민 청년이 웃으며 다가왔다. 오늘 비행기로 의료품이 들어오는 날인데 같이 가줄 수 있는지 물었다. 얼마든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청년이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치타가 자기도 가겠다며 소리를 질렀다. 타잔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돼. 치타. 여기서 기다려.”

시무룩해져 돌아서는 치타를 보며 타잔과 청년은 빙긋이 웃었다. 트럭이 마을을 벗어났다.

밀림 속으로 난 길을 벗어나자 확 트인 초원이 나타났다. 멀리 지평선으로 붉은 해가 떨어졌다. 코뿔소, 기린, 얼룩말 무리가 트럭과 함께 달렸다. 청년이 하늘을 가리켰다. 프로펠러 비행기 한 대가 활주로를 향해 내려왔다. 활주로라고 하지만 뿌연 먼지가 이는 흙길이다. 그나마 이 덕에 귀한 의료품을 받을 수 있었다. 트럭에 가득 물건들을 옮겨 싣자, 한결 가벼워진 비행기가 먼저 하늘로 날았다. 트럭도 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밀림으로 들어설 때는 이미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까악! 까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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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타가 큰 소리를 내며 트럭으로 달려왔다. 조수석에 앉은 타잔의 품으로 훌쩍 뛰어 타더니 마을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러댔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었다. 마을에는 온통 횃불이 일렁였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어떤 남자들이 아이들을 납치해갔어요!”

타잔에게 달려와 소리쳤다.

사람들이 말하길, 주위가 어두워지자 어디선가 차 소리가 났다고 했다. 모두들 타잔이 돌아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뚜껑이 없는 지프차 두 대가 냇가에 나타나 여자아이들만 골라 차에 싣고 가버렸다. 백인 여자아이 두 명과 흑인 여자아이 셋을.

아프리카는 아직도 많은 곳이 유럽 여러 나라의 식민지였다. 유럽에서 온 귀족들은 궁궐 같은 집을 짓고 살며 노예를 부렸다. 어렸을 때부터 노예로 키워야 커서도 주인 말을 잘 듣는다며 어린 여자아이를 비싼 값에 샀다.

사람들이 차가 사라진 쪽을 가리키자 타잔은 주저하지 않고 밀림 속으로 달려갔다. 납치범들이 초원 쪽으로 가지 않고 밀림으로 난 험한 길을 택한 것은 배를 타기 위한 것이다. 그 강에는 작은 부두가 있고 배를 타면 나라와 나라의 경계를 넘나들며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한낮에도 어두운 밀림은 밤이 되자 암흑천지가 되었다. 밤 짐승이 아니라면 아무도 돌아다니지 못하는 곳을 타잔은 거침없이 달렸다. 높다란 나무 위로 올라가 손나팔을 하고 온 밀림의 짐승들이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아아!”

밀림에 사는 고릴라, 원숭이, 아나콘다 그리고 코끼리까지 타잔의 소리를 듣고 같이 울어댔다. 납치범들은 모두 네 명이다. 앞차에 둘, 뒤차에 둘이 탔다. 갑작스러운 동물들의 울음소리에 놀라 하마터면 나무에 부딪힐 뻔했다. 여자아이들은 안경원숭이처럼 커다란 눈을 하고 차 바닥에 웅크린 채 오들오들 떨었다. 납치범들도 타잔의 존재를 알고 있고 분명 자기들을 쫓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조바심이 났다.

타잔은 나무와 나무에 연결된 넝쿨을 잡아타고 날듯이 밀림을 헤쳐 나갔다. 사방이 고요해지자 나뭇가지 위에 멈춰서 어딘가로 귀를 기울였다. 푸드덕 날갯짓 소리와 함께 앵무새 한 마리가 어깨 위에 앉았다. 부리를 귀에 대고 속삭였다. 타잔은 넝쿨을 잡고 즉시 바닥으로 내려갔다. 앵무새가 말한 쪽은 강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납치범들은 길을 잘못 든 것이다. 거기는 더 깊은 밀림 속으로 가는 길이며 차는 말할 것 없고 동물들도 비켜가는 깊은 늪이 곳곳에 있었다. 타잔의 마음이 급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납치범들의 차가 점점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납치범들은 간신히 빠져나와 아이들을 꺼냈다. 마지막 남은 여자아이가 차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꺼내 달라고 손을 내밀지만 닿지 않았다. 그때, 밧줄을 타고 날아온 뭔가가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저만치 늪 너머로 툭 내려앉았다.

차는 완전히 늪에 가라앉아 불빛이 사라졌다. 납치범 한 명이 플래시를 켰다. 타잔이 여자아이를 안고 서 있었다. 놀란 남자들이 서둘러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타잔을 겨눴다. 타잔은 총을 든 사람들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내가 없으면 당신들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총을 버리십시오.”

납치범들도 자신들의 처지를 알고 있었다. 길을 잘못 들었고 밀림에는 독충들과 맹수들이 우글거린다는 것을. 타잔 없이는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남자들은 순순히 총을 내려놨다. 타잔이 그제야 밧줄을 타고 늪을 건너왔다. 먼저 아이들을 살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타잔을 포함 어른 다섯에 아이들도 다섯이었다. 모두 한 명씩 아이들을 등에 없고 밀림 속을 걸었다. 혼자 서도 힘든 길을 아이까지 업고 가니 모두 땀에 흠뻑 젖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앞서 가던 타잔이 뒤돌아보면 자꾸 네 사람은 뒤쳐졌다.

“오늘은 이쯤 해서 쉬고 내일 날이 밝으면 출발합시다.”

아이들을 내려놓고 납치범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타잔은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아 나뭇가지를 베었다. 끝을 날카롭게 깎고 개울가로 갔다. 한 손에 플래시를 들고 한 손엔 나무 창을 들고 물속을 뚫어져라 봤다. 한 번 창을 던질 때마다 큼지막한 물고기가 창에 꽂혀 물 밖으로 나왔다. 불을 피우고 구웠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는 물고기를 보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눈. 모두 꼴깍꼴깍 침을 삼켰다. 이윽고 타잔은 다 익은 고기에서 크게 살점을 떼어 바나나 잎에 올렸다.


“자, 여물아. 타잔은 이 고기를 누구한테 먼저 줬을까?”

한참 얘기를 듣던 여물이가 문득 소리쳤다.

“당연히 애들이지. 나쁜 아저씨들한테 왜 줘?”

“정말?”

“응. 타잔 하고 애들만 맛있게 먹으면 돼.”

“그렇지. 아빠도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 타잔은 그 고기를 나쁜 아저씨들한테 먼저 줬어.”

“진짜?”

“그렇다니까.”

여물이의 눈이 동글해졌다.

“더 놀라운 건 뭔지 알아?”

“뭔데?”

“여자아이들한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어. 물도 안 줬어.”

“애들이 배고파서 어떻게 해?”

“타잔은 고기를 모두 나쁜 아저씨들에게 나눠주고 마지막 남은 건 자기가 먹었지.”

여물이는 당체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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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에 아침이 왔다. 알록달록 화려한 깃털을 가진 새들이 숲 속을 날아다니며 울어댔다. 타잔이 눈을 떴다. 아이들은 모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사람들을 깨웠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한 명씩 업었다. 그리고 늦은 오후가 돼서야 마침내 밀림을 빠져나왔다. 마을에 도착하자 키 큰 경찰들이 기다렸다. 아이들은 무사히 엄마 아빠 품속에 안겼다.


“끝이야.”

아빠는 영차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물이는 여전히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얼굴이었다.

“아, 배고프다. 오늘은 뭐 해 먹을까? 생선구이 어때?”

“싫어!”

그 밤, 여물이는 침대에 누웠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엎치락뒤치락하다 베개에 머리를 박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자 이불을 걷고 일어나 방을 나왔다. 엄마 아빠 방은 조용했다. 조심스럽게 tv가 있는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익숙하게 탁자 위 리모컨을 들고 전원을 켰다. 구석에 앉으며 환하게 밝아오는 화면을 봤다.

흑백 화면 속에 아프리카 어디쯤 원주민 마을이 보였다.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사람들이 즐겁게 파티를 하는 장면이다. 백인들과 흑인들이 모두 즐겁게 웃으며 음식을 나눴다. 타잔과 치타가 모닥불가로 와서 앉았다. 사람들이 금세 타잔 주위로 몰려들었다. 한 원주민 남자가 타잔에게 물었다.

“타잔, 우리 아이한테 들었는데 그날 밤에 아무것도 먹질 못했다더군요. 왜 그놈들한테만 먹을 것을 준겁니까? 아이가 타잔이 밉다고 많이 울었어요.”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타잔이 먹던 음식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사람들은 무척 흥분된 상태였습니다. 살기 위해서 아이를 업고 나를 따라오고는 있지만 언제 돌변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내가 자기들 편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줘야 합니다. 배불리 먹여야죠. 그래야 긴장이 풀리고 깊이 잠들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에게는 왜 안 준겁니까?”

“조금이라도 가벼워야 하니까요. 하루 굶는다고 큰일 나는 거 아니잖습니까?”

사람들이 더 크게 웃었다. 모두들 타잔의 지혜에 고개를 끄덕였다.

“치 겨우 그거야.”

가물가물 감겨오는 눈꺼풀을 올리며 여물이는 tv를 껐다. 자리에서 일어나 하품을 하며 방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