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편. 할로윈데이
“trick or treat!”(장난칠까요? 아니면 맛있는 것 줄래요?)
“go away! big green monster.” “go away!”(저리 가! 이 녹색 괴물아. 저리 가!)
“go away! scary witch.” “go away!”(저리 가버려! 몹쓸 마녀야. 저리 가!)
창밖에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컴퓨터 게임을 하던 아빠가 고개를 들어 창문 쪽을 봤다. 일어나 다가갔다. 창문을 열고 보니 놀이터에 갖가지 분장을 한 아이들과 선생님이 기다리던 엄마들에게 몰려들어 사탕을 받았다. 여물이보다 한 살 어린 아이들 같았다.
여물이는 오늘 아침에 마녀 복장을 하고 유치원에 갔다. 고깔모자에 빗자루, 하늘색 망토를 둘렀다. 어제 밤까지만 해도 여물이는 검은색 망토를 둘러야 한다고 떼를 썼다. 미리미리 준비했으면 좋았을 것을. 검은 색을 사려고 대형마트 세 곳과 학교 근처 문방구까지 돌았지만 다 떨어지고 없었다. 어르고 달래서 간신히 유치원에 보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걱정이라 아빠는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지하주차장 쪽으로 걸어 나와 여물이반 아이들이 있을 법한 곳으로 갔다. 상가가 있는 2단지 입구에 여물이와 반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사탕을 나눠주는 엄마들 주위를 동그랗게 에워싸고 아이들은 서로 더 많이 받으려고 소리를 질렀다. 여물이도 고깔모자가 찌그러지는 줄 모르고 신나게 소리 지르며 웃었다.
그때, 아빠의 눈에 이상한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큰 키에, 얼굴을 빼고 온통 검은 옷을 걸친 남자가 아이들 뒤에 서 있는 것이었다. 멀리 있어서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요상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더군다나 아이들과 선생님, 엄마들은 전혀 이 사람을 눈치 채지 못했다.
아빠는 얼른 남자에게 달려가려다 우뚝 멈추고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남자 등 뒤로 기다란 삼지창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니다.’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아빠는 뒷걸음치며 물러나다 냅다 집을 향해 뛰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책장을 뒤졌다. 갖가지 책들이 꽂혀 있는 칸 중간쯤에서 두껍고 낡은 책 한 권을 뺐다.
「세계 괴물 대백과 사전」
정신없이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아까 봤던 검은 옷의 남자와 똑 같은 사진이 있는 곳을 펼쳤다.
‘충치대마왕’
식사 후 이를 닦지 않거나 사탕 등 단 것을 많이 먹는 아이들이 사는 곳에 나타난다. 대게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부하들을 내보내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직접 나타나기도 한다. 평소 관찰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대형마트 과자 진열대나 사탕 가게에서 마주 칠 수도 있다. 그가 직접 나타났다면 주위에 있는 아이들의 이는 24시간 내로 충치가 생길 것이다.
아빠는 빼곡히 적힌 충치대마왕에 대한 설명을 읽었다. 그리고 그에게도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책을 덮고 얼른 창고 겸 보일러실로 뛰어 갔다. 보일러실 선반에는 여름철에 썼던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아빠는 커다란 물총을 내렸다. 먼지를 대충 손으로 닦으며 이번에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변기 위 수납장을 열자 한쪽에 치약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아빠는 치약을 모두 내려 펼쳤다. ‘F-불소함유’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써진 치약을 집어 들었다. 물총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불소치약을 모두 짜 넣은 다음 물을 가득 채웠다. 치약이 잘 섞이게 물총을 힘차게 흔들며 평소 시장 갈 때 쓰는 알록달록한 시장바구니를 내렸다. 그 속에 물총을 넣고 집을 나섰다.
지하주차장을 나오니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2단지 내로 들어갔다. 높은 아파트 건물 사이에 위치한 개미놀이터다. 바닥에 개미가 그려져 있어서 아이들은 자기들 끼리 그렇게 불렀다. 그곳에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다른 엄마들이 모두 있었다. 삼지창을 손에 든 충치대마왕은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주위를 돌았다.
아빠는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택배 트럭이 세워져 있어서 다행히 들키지 않고 가까이 갈 수 있었다. 트럭 뒤에서 본 아이들의 모습은 놀라웠다. 아이들은 입에 가득 사탕을 넣고도 계속해서 호박바구니에서 사탕을 꺼내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주위로 사탕껍질들이 수북했다. 엄마들도 선생님들의 입에도 사탕이 가득 했고, 눈은 초점을 잃어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좀비 같았다.
“깔깔깔깔!”
충치대마왕은 이제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웃으며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마법을 걸었다. 아빠는 더 이상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시장바구니에서 물총을 꺼내 장전손잡이로 공기를 집어넣었다. ‘이제 방아쇠만 당기면 된다.’ 아빠는 물총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뛰어 나갔다.
“이 나쁜 충치대마왕아! 그만두지 못해!”
동시에 물총에서 불소치약물이 뿜어져 나왔다. 갑작스런 공격에 충치대마왕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 가까스로 물을 피했지만 불소물이 망토를 적셨다. 망토가 녹아내렸다. 대마왕은 망토를 벗어 던졌다.
“훼방꾼이 나타났군.”
자세를 고쳐 잡고는 삼지창으로 한 아이가 들고 있던 호박바구니를 낚아채 아빠에게 던졌다. 호박바구니는 번쩍번쩍하며 점점 커지더니 팔 다리가 쭉쭉 뻗어 나와 괴물이 되었다. 아가리를 벌리고 아빠를 향해 울부짖었다. 그 사이 대마왕은 웃음소리와 함께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아빠는 괴물을 향해 물총을 발사했다. 그러나 불소치약물은 호박괴물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호박괴물의 주둥이에서 뭔가가 연달아 쏟아져 나왔다. 끈적끈적한 젤리사탕이 날아들었다. 큼지막한 덩어리가 아빠의 팔과 함께 택배 트럭에 붙어 버렸다. 계속해서 날아온 것들이 팔 다리 몸통에 붙으며 아빠는 트럭과 한 몸이 된 것처럼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호박괴물이 집어 삼킬 듯 다가 왔다.
아빠는 여물이를 보았다. 다행히 총을 놓치지 않았다. 한 손으로 힘겹게 총을 들어 여물이를 향해 발사했다. 얼굴에 온통 물을 뒤집어 쓴 여물이가 번득 깨어났다. 입에 가득 찬 사탕을 뱉어냈다.
“여물아!”
아빠의 목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는 여물이. 놀랄 틈도 주지 않고 아빠는 다시 외쳤다.
“네 옆에 은겸이 손에 든 요술지팡이 가져 와!”
은겸이는 오늘 마법사로 분장했다. 여물이는 은겸이 손에 있는 지팡이를 뺏듯 집어 들었다.
“아빠! 여기.”
여물이가 지팡이를 내밀며 아빠에게 달려왔다.
“아빠 말고 괴물을 향해 외쳐!”
여물이가 호박괴물을 봤다. 뭐라고 외쳐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거렸다.
“아빠, 뭐라고 해야 돼?”
“나도 몰라. 네가 생각해야지!”
괴물이 아빠를 덮치려는 순간, 여물이는 호박 괴물을 향해 힘차게 팔을 뻗으며 외쳤다.
“호박에 말뚝 박기!”
퍽- 하는 뚝배기 깨지는 소리와 함께 호박괴물이 휘청거렸다. 호박 머리에 커다란 나무 말뚝이 꽂혔다. 괴물은 걸걸한 소리로 울부짖으며 놀이터 바닥에 쿵 하고 머리를 찍었다.
“잘했어!”
쓰러진 호박괴물은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짧은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여물이는 괴물을 향해 다시 한 번 힘차게 외쳤다.
“곰발바닥 말발바닥!”
엄청나게 큰 발이 호박을 밟아 뭉개듯 괴물을 짓눌렀다. 호박이 산산조각 났다. 여기저기 흩어진 덩어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찢어진 호박바구니로 변했다.
아빠가 여물이를 보며 웃었다. 여물이는 아빠 몸에 붙은 젤리를 떼어냈다. 선생님과 엄마들이 깨어났다. 잔뜩 겁먹은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서 유치원으로 가서 치카 시키세요.”
아빠가 선생님에게 말했다.
“네네.”
선생님과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유치원 쪽으로 우르르 뛰어갔다.
“충치대마왕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 봐.”
“응.”
여물이는 지팡이를 하늘을 향해 흔들며 어딘가로 달려갔다. 아빠와 함께 개미놀이터를 벗어났다.
“아빠, 만물마트 쪽이야!”
만물마트는 3단지 상가에 있다. 3단지는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이웃 주택가와 붙어 있어 그 놀이터는 단지 내에서 가장 붐볐다. 아빠는 물총에 공기를 집어넣으며 불소물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 보았다. 이것으로 안 되면 달리 충치대마왕을 물리칠 방법이 없었다.
3단지 놀이터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대로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대마왕은 삼지창을 휘두르며 마법을 걸었다. 사탕바구니에 든 사탕을 아이들은 마구마구 입에 집어넣었다.
“아빠, 어떡해?”
여물이가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어떡하긴, 하는데 까지 해 봐야지.”
아빠는 자못 비장한 표정이 되었다.
“치과 가기 싫으면 힘껏 싸워. 알았지?”
“응.”
아빠와 여물이는 충치대마왕을 향해 뛰어 갔다. 대마왕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찢어진 입가를 올리며 음흉하게 웃었다. 순간, 푸쉬- 하는 소리와 함께 대마왕의 몸이 수십 개로 나눠졌다. 수십 개의 작은 대마왕들이 공중에 떠서 깔깔거렸다. 다시 푸쉬- 하는 소리와 함께 수백 아니 수천 개의 더 작은 대마왕들로 변했다. 아빠는 어디에다 총을 쏴야 할지 몰라 고개만 두리번거렸다. 깔깔대는 웃음소리. 아이들 주위를 에워싼 콩알만 한 대마왕들. 이제는 소리는 없어지고 점점 더 작아지는 것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나눠지더니 어느 틈에 아이들의 하얀 이가 모두 새까맣게 변해 버렸다.
“여물아. 입 막아!”
여물이가 제 입을 손으로 막았다. 아빠도 꾹 입을 닫았다. 아이들은 자기들 이가 새까매진 줄 모르고 사탕을 씹느라 연신 입을 오물거렸다. 입에서 줄줄 사탕 물이 흘러 내렸다.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었다.
“여물 아빠. 여기서 뭐해?”
아빠가 뒤돌아보면, 요구르트 아줌마가 카트를 타고 오고 있었다. 물총을 든 아빠를 보더니 아줌마는 피식 웃었다.
“아니, 이렇게 추운 날 애랑 물놀이해요?”
그러더니 놀이터 안 광경을 보고는 눈이 커졌다.
“에구머니나!”
카트를 멈추고 내려선 아주머니. 아빠는 다짜고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드라이아이스 있어요?”
“아니 요즘에 어떤 야쿠르트 아줌마가 드라이아이스를 갖고 다녀요.”
전동 카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전기 배터리로 움직이는 거라서 자체가 냉장고에요,”
아빠는 뭔가 생각이 있었으나 드라이아이스가 없다는 말에 급히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갖고 다니지. 보조가방에.”
의미 있게 웃는 아주머니.
“내가 판매왕이거든. 카트 냉장고론 부족해서…….”
아빠는 아주머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뛰었다. 깨진 플라스틱 양동이를 집어 들고 다시 왔다. 아주머니는 아이스백 안에서 큼지막한 드라이아이스 덩이를 꺼내 양동이 속에 넣었다. 아빠는 물총 뚜껑을 열고 안에 남은 불소 물을 몽땅 양동이에 쏟았다. 금세 하얀 연기가 세차게 피어올랐다. 양동이를 들고 최대한 아이들 가까이 가서 내려놓았다. 아이들의 눈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양동이에 쏠렸다.
“여물아. 네 차례다.”
“응, 아빠.”
여물이는 기다렸다는 듯 양동이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며 외쳤다.
“연기는 안개가 되어라. 얍!”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드라이아이스 안개가 금세 놀이터 주위를 휩싸고 돌았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도 못 알아볼 정도의 짙은 안개였다.
안개 속에서 아빠와 여물이는 어떤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그것은 비명소리 같기도 하고 마치 무슨 병든 짐승의 죽어가는 신음 소리 같기도 했다. 그 소리가 잦아들자 안개도 거짓말처럼 걷혔다.
아이들과 선생님, 엄마들이 충치대마왕의 마법에서 모두 깨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지만 입에 가득 찬 사탕들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컥컥 거리며 입에 것들을 뱉어 냈다. 아빠가 다가갔다.
“얼른 아이들 이 닦아주세요. 빨리 닦지 않으면 큰일 나요.”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엄마들도 자기 아이를 데리고 제각기 집으로 향했다. 아빠는 여물이를 보며 말했다.
“너도 얼른 선생님 따라 가.”
“알겠어.”
여물이는 선생님을 따라 뛰다 멈춰서더니 뒤돌아 아빠를 봤다.
“아빠, 다섯 시에 데리러 와야 해!”
“으응.”
아파트 단지를 돌아 여물이는 사라졌다.
왠지 몸에 힘이 빠져 아빠는 화단 돌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주머니가 불쑥 요구르트를 건넸다.
“무설탕.”
빨대가 꽂혀있었다. 아빠는 고맙다는 말도 잊은 채 쪽쪽 맛있게 빨아 먹었다.
“아니, 왜 할로윈 데이엔 사탕만 주나 몰라. 과자도 있고, 떡도 있고, 야쿠르트도 있잖아. 안 그래요 여물 아빠?”
“그러게요.”
아주머니는 호호호 웃으며 카트에 올라탔다.
“아주머니 지갑을 안가지고 왔는데 요구르트 값 낼 드릴게요.”
“서비스.”
아주머니는 손을 흔들며 카트를 되돌려 놀이터를 벗어났다. 아빠도 물총을 들고 일어섰다.